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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마음의 글

아프다는 고통에 대하여<펌)

by 올곧이 2008. 6. 12.

웰빙 바람이 불면서, 방송에서도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는가 하는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건강에 좋다는 음식, 약물, 운동요법 등 온갖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출연자들을 직접 병원에 데려가 건강검진까지 시켜주고, 그들의 내장 속까지 TV화면으로 공개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것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이 아프다는 것, 질병에 걸린다는 것은 참으로 심신을 불편하게 합니다.

특히 자기애가 강한 현대인들은 항상 자기 자신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자신이 벌어들이는 돈으로 판단하는 현대사회의 가치관 때문 입니다.

 

 생산성이 없는 인간,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은 무능하고 무용한 존재라는 생각이  더 건강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합니다. 이런 사회분위기에서  질병에 걸린다는 것은 사실 치명적입니다.

어쩌면 병에 걸린 사람은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나락으로 떨어질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자신의 몸을 돌보고, 질병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에 과거 어느 시대 보다 더 매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이용해서 매스컴은 의학정보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쏟아내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목적아래 방송되는 내용들은 사실은 현대인들에게 건강염려증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방송에서 쏟아내는 의학정보로 인해 현대인들은 건강염려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떤 증세가 있으면 어떤 병을 의심해야 하고, 어떤 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어떤 병에 걸리며, 어떤 음식을 먹으면 어떤 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를 거의 매일  어디선가 보고 듣게 됩니다.

이런 지식은 잠재의식 속에 숨어있다가  친구나 친척, 직장동료가 어떤 질병에 걸렸다거나, 아니면 질병으로 죽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면 건강 염려증이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나도 저런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내가 이런 병에 걸리면 가족의 생계는 누가 책임지나, 그 병으로 인해 나는 모든 것을 잃고 말거야, 그렇다면 나는 인생의 패배자가 될거고, 가장으로서 역할도 하지 못할뿐 아니라 가족들이 나를 더 이상 존중해 주지 않을지도 몰라“ 등등, 온갖 상념이 들게 됩니다.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이제 조금씩 몸이 아픈 것 같습니다. 골치도 아픈 것 같고, 소화도 안되는 것 같으며, 현기증도 나고, 약간 어지러움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 닦을 때 구역질도 나는 것 같고, 왠지 아무문제가 없는데도 피로한 느낌이 듭니다.

 

의기소침해지면 기분이 좋을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몸의 기능은 원활치 못하고 여기저기 불편한데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질병의 전조증세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더 진행되면 자신이 질병에 걸렸다는 확신을 합니다. 다음 단계는 이제 병원쇼핑을 하기 시작합니다. 어느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도 이상이 없음에도, 분명 오진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병원에 가서 다시 검진을 받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방송매체에서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의학정보는 무차별적으로 공급하고 있으면서, 정작 질병에 걸렸을 때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보를 전달했으니까, 이제 너희들이 알아서 진단하고, 질병을 발견하든 예방하든 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을 숙명적으로 안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섭생을 잘하고, 운동을 하고, 조심한다고 해도 인간은 언젠가는 질병에 걸릴 운명입니다. 어떤 사람은 젊은 나이에,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고혈압, 당뇨는 아주 흔한 질환에 해당됩니다.

 

진료실에서 많은 환자분들을 보게 됩니다.

어떤 분은 자주 질병이 재발 되서 의기소침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건강을 자신했다가 갑작스럽게 자신이 고혈압이 있다는 진단을 받고, 우울증에 걸려서 오는 분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데 느닷없이 암선고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이라 그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아프게 되면 어떤 분들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동안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는데, 내가 이런 힘든 고통을 당해야 하나? 내가 그동안 열심히 살았는데, 어떻게 나에게 이런 질병이 생길 수 있나? 나는 정말 재수 없는 사람인가보다, 나에게만 안 좋은 일이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열심히 치료했고, 이제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증세가 재발되어 너무나 속상하다”등등 반응은 다양합니다.

공통적인 면은 누구나 자신의 질병에 대해 한탄 하는것부터 시작합니다.

너무 당연한 반응입니다. 누가 고통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시기를 겪고 나서 질병이 빨리 회복되거나 질병상태에서도 행복감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특징은 질병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질병을 빨리 인정하는 분은 치료도 열심히 받습니다. 약도 꼬박 꼬박 먹고, 치료를 잘 따라 줍니다.

하지만 자신이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분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으려 합니다. 당장 시급하게 치료해야 하는데, 자신이 아프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또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받느라 시간을 허비합니다.

 

사실 질병은 자신이 패배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실패자라는 낙인도 아닙니다.

그냥 인간은 태어나고 자라고 소멸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소멸과정에서 질병은 항상 끼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듯이, 질병도 우리 삶의 한 부분입니다.

물론 어떤 질병에 걸렸다고 해서 넋을 놓고 그냥 바라보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질병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면, 도리어 자신의 신세한탄이나 세상이나 운명에 대한 원망이 줄어들어, 스트레스가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빨리 마음을 추스릴수 있어, 마음이 더 편안해 집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다면 질병의 회복에 도움이 되면 됐지, 절대 나쁠 것은 없습니다.

 

 내 인생에 질병이란 없다 라고 철석같이 믿는 분들은, 자기애의 손상으로 인해 ,질병 자체가 아니라, 질병에 걸렸다는 절망감으로  인해 더 빨리 병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가 말했듯이 질병은 좋은 동반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와 함께 동행해야 할 동반자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그리고 아프다는 것은 우리에게 꼭 불행한 일만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그러다가 병이 생기자, 그제서야 자신이 가지고자 했던 것이 그렇게 소중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병에 걸리면 귀한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돈도 명예도 지위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게 아니라 한 조각 기쁜 추억들이 소중해지고, 돈 버느라 등한시 했던 자녀나 아내에 대한 사랑이 다시 생기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질병으로 인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기도 하고, 실제로 사망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과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신의 고통을 안겨줍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정말 소중한 인생의 가치를 느낄 수 도 있습니다.

죽음과 질병은 인간의 성숙을 촉진시켜 줍니다. 그동안 우리가 추구했던 쓸데없는 군더더기 들을 다 제거해 버리고, 정말 중요한 인간의 가치를 우리에게 들이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죽음 직전이라도 그 사람은 인생의 진리를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하는 슬픔은 어떤 것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말입니다.

사실 아프다는 것은 유전적인 질병을 제외하고는, 그동안 쌓였던 어떤 습관이나 행태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어떤 병에 걸렸을 때 치료만 할 것이 아니라, 왜 내게 이런 병이 생겼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병을 회복하고 나서 예전보다 더 건강해진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전보다 더 행복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예방하고 주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맞아야 할 것이라면, 그런 주의에도 불구하고 질병이 내게 찾아왔다면 결국 나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이기도 합니다.

출처: 불교동아리 이경세코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