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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마음의 글

상실

by 올곧이 2008. 6. 17.

우리네 인생은 많은 것을 잃어가는 여정입니다.

가장 쉬운 예가 우리의 수명입니다. 생명을 받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명은 점점 줄어들어 죽음을 향해 앞으로만 달려갑니다. 

 

물론 우리가 잃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얻는 것도 사실입니다. 

태어나자 마자 부모를 얻고, 형제나 자매를 얻기도 하고, 자라서는 친구를 만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의 직업을 얻고, 배우자를 얻고, 자식을 얻기도 합니다.

그 외에 많은 친척들이 주변에 있게 되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동료를 만나기도 합니다.

또한 재산을 모으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명예나 타이틀 뿐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신망을 얻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도 영원히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부모는 내 곁을 떠나가고, 형제나 자매도 그 길을 밟습니다. 재산도 힘들게 모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명예나 타이틀도 영원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세월 속에 스러져 갑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재산이나 명예, 건강을 잘도 지켜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어떤 것도 지켜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두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모든 것은 상실되고 없어지고, 망가지고, 스러지고 맙니다.

 

우리네 인생은 그래서 상실의 연속입니다.

어떤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순식간에 자신의 손아귀에서 하나 둘 빠져나가게 마련입니다.

영원히 자신의 건강을, 젊음을, 생명을, 재산을 지켜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항상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지냅니다.

 

앞으로 내가 계속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서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내 재산이 줄어들지 않고

죽을 때 까지 이렇게 여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우리 부모님이 몹쓸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오래 사실 수 있을까?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회사에서의 좋은 위치를 계속 유지 할 수 있는 걸까?

이런 걱정들이 사실 우리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고 잠들 때까지 우리는 위와 같은 생각에 파묻혀 지냅니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문득 문 득 떠오르는 이런 상념들은 계속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번뇌라고 합니다. 분명 없어지고, 스러지고, 상실되어야 할 것을 알지만 손에 움켜쥐고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는

집착으로 인해 우리는 괴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자신만은 이런 변화의 법칙에서 예외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 만 같고, 우리 부모님은 영원히 내 곁에 머물 것만 같습니다. 지금까지 힘들게 모은 재산도 죽을 때까지 갖고

가리라 생각하며, 내 자식들도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금 가진 타이틀과 지위, 명예도 영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에게는 변화의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는 자기최면을 걸고 살아갑니다. 물론 마음 밑바닥에는 언제 내가 가진 것이 없어지지 않을까

안절부절 하지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에서는 자신만은 이런 상실의 법칙에서 예외라고 확신합니다. 아니 확신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가진 어떤 것을

잃거나 없어지는 것은 남의 일 일뿐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막상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치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상실의 경험을 갖게 되면 “나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 날줄 몰랐다” 라거나 “TV에서나 나올법한 일이 나에게

생겼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고 얘기합니다.

 

특히 자신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법칙에서 예외라고 믿는 사람일수록 뭔가를 잃게 되면 상처는 크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상실의 법칙은 도처에서 벌어집니다.

건강을 자부하던 사람이 느닷없이 암 선고를 받거나, 어떤 이는 갑작스레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30대에 점차

시력을 잃어 나중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불치의 병을 앓기도 합니다.

자신의 건강을 잃었다는 상실감 앞에서 특히 이렇게 자신만만했던 사람은  마음의 상처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의사들이 병을

얻게 되면 이런 상실감은 일반인 보다 서너 배는 더 클 겁니다.

항상 남의 질병을 치료하면서, 은연중에 질병을 자신이 마음껏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모든 질병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론 섭생을 잘하고 생활습관을 잘 유지하면 많은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영원히 질병의 덫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영원히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돌봐줄 것만 같은 부모님을 떠나 보내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월 앞에서 부모님은 점차 노쇠해집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질병으로 인해 병원을 드나드는 횟수가 늘어나게 되고,

결국 부모님도 자신의 수명을 다하고 우리 곁을 떠나갑니다.

 

운이 아주 나쁜 경우는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야 하는 경우입니다.

얼마 전에 납골당에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아야 했던 많은 젊은 남녀의 유골 함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그 납골함 마다 절절한 부모의 사연이 놓여져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납골함의 주인공은  20살을 갓 넘긴 경우도 있었고,

갓 결혼한 신부도 있었습니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한 청소년도 있었습니다.

어느 부모도 자신의 자식이 자신보다 앞서가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들은 이 커다란 상실감 앞에서 아마 망연자실, 커다란 절망감에 휩싸였을 겁니다. 그리고 그 상실감은 죽을 때까지 자식을

잃은 부모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커다란 재산을 모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가 망해서 거리에 나 앉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많은 사람들의 신망과 존경을 받고 살았지만 느닷없는 추문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이제 그는 신망 받는 사람이

아니라 대중의 미움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이렇든 우리는 갑작스럽게 아니면 서서히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을 하나 둘씩 잃어만 갑니다.

왜 우리는 많은 상실 앞에서 무기력하게 당하거나 그 상실감의 무게 때문에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기도 하는 걸까요?

물론 어떤 것을 잃게 되면 커다란 슬픔과 절망감에 휩싸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실 앞에서도

어떤 사람은 슬픔을 빨리 털어버리기도 합니다. 반면 어떤 이는 평생 그 상실감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이는 상실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것을 움켜쥐기만 하고 절대 내 인생에서는 어떤 것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느닷없이 또는 서서히 자신이 가진 어떤 것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상실감은 덜합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인 사람인 것이죠.

 “모든 것은 변한다” 어느 것 하나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없으며 자꾸 자꾸 소멸해 간다는 진리를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이 변하며, 모든 것은 없어지고 사라지고, 상실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너무 염세적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건 우리가 진리를 외면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세상만사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진리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자신만이 특별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착각이 더욱 큰 상실감을 낳는 것입니다.

인생의 이법 앞에서 우리가 겸손해질 때, 나도 자연의 법칙, 상실의 법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자각을 하게 될 때

우리는 도리어 상실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이 항상 고민하고 걱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항상 자기 손안에 움켜쥐고 아무것도 잃지 않으려 하다 보니 힘든 겁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시간이 흐르면, 느닷없이 자기가

가진 어떤 것도 소멸될 수 있다는 진리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상실을 자신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면 오고 가는 것, 없어지고 생기는 것, 만들어지고 파괴되는 것, 일어났다가 스러지는 모든 변화들이 슬픔이 아니라 인생에서

겪어야 하는 변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죽음도 좀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이 없어지고 사라지고, 죽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거기에서 자신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야 말로, 우리 인간이 가장 두려워 하는 죽음과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런 상실의 법칙 앞에서 우리는 자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통해, 한 순간 한 순간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그런

변화가 얼마나 경이로운지, 내 인생의 변화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은 잃는 것을 통해 우리는 도리어 자신을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상실은 채움의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출처 : 오토웨이 이경세-좋은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