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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마음의 글

[윤장현 칼럼]실업자 생각하는 노동절을

by 올곧이 2008. 5. 2.

2008-05-01 오후 3:15:19 게재

윤장현 (우리민족서로돕기 공동대표 아시아인권위원회 이사)

 

5월1일 ‘메이데이’다. 노동절이라 부르는지 근로자의 날이라 부르는지 어느 것이 정확한지 필자는 짚어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군부독재 하에서는 노동절이라 부르지 못하고 근로자의 날이라고 애써 확인하려 했던 기억이 있다. 민주화가 되면서 노동절이라 편하게 부를 수 있었지 않나 생각된다.

인류 역사의 발전과정은 자유 민주 인권 평등과 같은 단어 하나를 우리들의 삶 속에 천착시키기 위해서 피흘려 싸웠던 역사의 연속이였다. 농경시대의 노동, 그리고 산업화시대의 공장 노동자로서의 노동, 지식정보화시대의 노동에 이르기까지 노동의 조건과 상황도 시대에 따라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서나 분명한 것은 노동의 신성일 것이다. 더 말할 것 없이 일하지 않고서는 먹을 수 없었고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한마디로 인간의 삶을 규정해왔다. 생존을 넘어 삶의 질을 향유하기 위해서 또 다른 노동의 강도를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니 일과 삶의 순환의 고리는 곧 인간 사회의 핵심일 것이다.

 

어느 병사를 먼저 살릴 것인가

노동절을 맞아 가장 가슴아픈 일은 더 말할 것 없이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니 이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 열심히 일을 해도 신분을 보장받지 못하고 생계비를 얻지 못하는 이들도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필자에겐 결코 잊지 못할 뼈아픈 기억이 있다. 70년대 중반 군의관으로 전방에 근무할 때 겪었던 일이다. 3월 초 꽃샘추위로 갑자기 눈이 내린 작전도로를 달리던 트럭이 7~8m 높이의 계곡으로 굴러버렸다.

차량 전복사고가 났다는 전통을 받고 출동해보니 이미 두명의 병사는 숨이 멎은 상태였고 네명의 병사가 전복된 차량 밑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촌각을 다투고 있었다. “군의관님! 살려주세요!” 소리소리 질러대는 출혈이 심한 병사와 가벼운 신음소리를 내면서 안색이 창백한 병사들 속에서 어느 병사를 우선 응급처치를 해야 할지 선택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야전 경험이 많은 선임하사가 다리 개방골절로 피범벅이된 병사를 우선 끌어냈다. 이 병사를 응급조치하고 나서 신음소리만 내는 두번째 병사를 보니 이미 혈압이 잡히지 않고 동공이 풀려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환자의 우선순위를 잘못잡은 것이다. 의사로서 내내 부끄럽고 죄지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여년이 훨씬 더 지나 IMF 외환위기로 대량의 실직사태가 생겼을 때 필자는 그때 상황을 되새기게 되었다.

그렇다. 그나마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은 피투성이가 되었던 병사처럼 노동 조건과 임금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일자리가 없는 사람은 아예 조직 자체가 없으니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다. 마치 조용히 신음하다가 세상을 떠나버린 병사의 모습처럼.

그후로 필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노동 문제에 있어서 우선순위는 일자리 없는 사람들이고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사람은 두 번째라고 판단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사용자와 협상할 일이지만 일자리가 없어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의 대책은 당연히 정부가 우선 책임을 지고 나서야 될 일이다.

물론 기업과 사회도 일자리가 없는 이들의 문제를 끌어안고 가야 한다.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내용적으로 붕괴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완전고용의 유토피아는 인류의 꿈일지 모르지만 고용의 극대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세상이야말로 인간이 만들어가는 참 아름다운 세상인 것이다 .

장애인이 정신과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위대하듯이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회도 아름다운 사회이며 위대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만능의 사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당연히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가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더구나 다국적 자본과 다국적 문화의 두 수레바퀴로 온 지구촌을 갈아엎고 있는 세계화의 그늘 속에서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 이들에 대해 배려하는 것은 국정의 제1순위이다. 더 잘 살아보려는 민생 안정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살아갈 수 있는 생존의 기본을 마련해주는 일은 더 시급하다.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이 노동현장의 목표라면 누구나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은 그보다도 더 절박하고 숭고한 가치다. 노동절을 맞아 고단한 일터에서 해방되어 가족과 동료들과 신록의 자연을 찾는 오늘,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365일 쉬고 있는 이들을 기억하는 일이 또 다른 노동절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리는 일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