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해운회사인 M사는 지난 10월 초, 직원들에게 휴가 일수가 남아 있는 직원들은 연말까지 모두 휴가를 쓰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 이후 두 달이 지나 회사 내부적으로 휴가사용실태를 파악한 결과 연·월차 휴가는 전 직원 80여 명이 모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정작 직원들은 휴가 보상비도 못 받은 채 아무도 휴가를 가지 못했다고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직원 전체가 자발적으로 휴가를 반납한 것으로 처리된 것이다. M사만이 아니라, 이처럼 올해 극심한 불경기 속에서 법적으로 보장된 연·월차 휴가를 쓰지 못하는 '탈법 상황'이 중소기업 중심으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불황에 휴가도 없고, 보상비도 없고
회사가 직원들의 휴가를 막으면서 보상도 해주지 않을 경우 근로기준법 위반이지만 문제는 회사가 휴가를 막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이다.
근로기준법에 '연차 유급휴가의 사용 촉진'제도(61조)가 도입된 것은 2003년이다. 사용자가 휴가 사용기간이 끝나기 3개월 전에 써야 할 휴가 일수를 근로자에게 알려주고, 2개월 전에는 휴가를 쓸 시기까지 통보하도록 한 제도다. 올해부터는 근로자 수 20인 이상 사업장까지 이 제도가 적용된다.
노동부 관계자는 "세계 최장 수준인 근로 시간을 줄여 근로자에게는 충분한 휴식을 보장해 주고, 회사 측에는 고정 급여처럼 지출되고 있는 휴가 보상비를 줄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마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휴가를 포기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회사 측이 이를 위반한다고 해서 처벌하기는 어렵다. 결국 강압적인 회사 분위기로 인해 휴가를 가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근로자가 노동부에 진정을 하거나, 소송을 제기해 확인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이런 유형의 민원은 제기된 적이 없다는 것이 노동부 측의 설명이다. 휴가 며칠 가려고 회사로부터 '눈 밖에 나는' 일을 벌일 강심장 회사원은 없다는 얘기다.
공무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 초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 부처와 공기업의 경비를 10% 줄이라고 지시한 이후 휴가 보상비 지급이 각 기관별로 중단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경찰서에 근무하고 있는 박모(36)씨는 올해 휴가를 단 하루밖에 사용하지 않았지만 휴가 보상비는 포기했다. 정씨는 "작년에는 휴가 보상비로 연말에 100만원 정도 받았는데 올해는 경비 절감 차원에서 휴가 보상비는 거의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며 "그렇다고 경찰이 가장 바쁜 연말에 며칠씩 휴가를 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경우에는 인건비 절약 차원에서 '반강제적으로' 휴가를 독려하고 있다. LG화학은 30일 종무식을 하고 휴가에 들어가 다음 달 5일에 시무식을 하고 출근한다. 그 사이 근무일(1월 2일)에는 전 직원이 의무적으로 연·월차를 내도록 할 방침이다. 또 성탄절 다음 날인 26일(금요일)과 29일(월요일)에도 연·월차를 낼 수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총 11일 동안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직원도 있다.
직원 수가 1만 여명인 LG화학이 하루를 쉬면 휴가 보상비로 나가는 비용 10억원가량을 절약할 수 있다.
삼성전자 역시 LG 화학과 비슷한 방식으로 연말 집단 휴가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에 근무하고 있는 이모(37)씨는 "어차피 연말엔 업무 효율도 떨어지는데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떠날 수 있다면 돈을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자동차 업계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집단 휴가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GM대우 자동차의 부평 2공장 생산직 근로자(1500여 명)는 월 평균 임금의 70%를 받는 조건으로 임시 휴직에 들어 갔고, 22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는 전 직원 집단 휴가에 들어갈 예정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사측이 경기 불황을 이유로 합법적인 휴가 사용을 제한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근로 감독하겠다"고 말했다.
입력 : 2008.12.04 03:22 / 수정 : 2008.12.0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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