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은

문득 세월이 보인다 250324

by 올곧이 2025. 3. 24.

3월24일 월요일

 

 휴일을 이용해서 힐링을 한 사람들은 힘차게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이다.

그런 반면에 내가 근무하는 운동장은 제일 한산한 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학생들도 한 주를 시작하니 운동장에 나오는 것 보다 학원으로 가야하는 경우가 많고, 학부형들도 애들 뒷바라지를 한다고 집에 있거나 대부분의 직장인들도 주말에 못했던 일들을 이번 주로 연결하기 위해 운동장에 나올 여건이 되지 못하는게 아닐까 싶다.

 

 오후에 운동장으로 올라오면서 보니 여기저기에 어제까지 보지 못했던 개나리들이 샛노랗게 피어서 "우와!"하는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 어쩜 저렇게 약속이나 한듯 한꺼번에 필 수 있을까 싶어 신기했다.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내려가면서 봤는데 하얀목련이 핀 주위로 매화꽃과 앵두꽃도 피었는데 흰목련 뒤에 자목련이 있었던지 보라색 꽃이 하얀 목련꽃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봄은 역시나 꽃의 계절이다.

 

 친구들의 단톡(단체카톡)방에도 연일 꽃소식이다.

서울사는 친구가 자기 친구에게 받은 들꽃사진이라며 단톡으로 전해왔다. 내가 산에 가지 못하는 사이 친구의 친구는 산에 다니면서 야생화에 흠뻑 젖어 있었는 듯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꽃까지 찾아서 사진으로 보냈는가 보다. 그리고, 며칠 전 신문에서 본 신달자 시인의 "눈을 녹이며 스스로 피는 꽃, 복수초를 보며 떠올린 한 여인" 이란 컬럼이 덧붙여져 있어서 다시 읽어보는 행운도 받았다. '왠 행운?'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내 생각엔 유명인의 글을 접하는 것도 행운이지만 흐릿한 눈을 씻어 내는 천연처방을 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조명탑이 있지만 주민들의 빛공해 민원으로 반만 켜다 보니 운동장은 조금 어둑하다.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지 아무 생각없이 멍때리는 중이었는데 불현 듯 마음 한켠에서는 방금까지 멍 때린 시간이 내 인생에서 몇 프로나 손실이 났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 다른 생각들과 엉켜버린다. 그러다가 제정신이 드는가 싶었는데 그 때는 또 외로움이 모여드는 것 같고...

 

 봄은 꽃도 잔치지만 나에겐 쓸데없는 생각도 잔치가 되고 있다.

이 봄이 얼마나 갈까? 나는 올 봄을 제대로 즐기기나 할까? 내년에도 이 봄을 맞을 수 있을까? 등등...

조금 전에 봤던 신달자 시인의 컬럼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뭍어서 울컥했지만 내 어머니의 입장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 ...

그러다가 어머니가 생전에 꽃을 보고 혼잣말로 "너는 내년에도 피겠지만..."이란 체념하는 듯한 말씀이 생각났다. 내가 군대에 갈 때도 아들이 하나였으니 울고불고 까지는 않았더라도 걱정을 내비치는 말씀이라도 하셨을테지만 장군같은 자세로 "잘마치고 오너라"라며 악수로 보낼 정도로 강단있는 엄마였는데, 그 말씀을 마지막으로 그 해 여름에 세상을 달리 하셨으니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어머님의 진심이었지 않았을까? 분명 아들의 성공한 모습도 보고 싶었을 것이고 그럴려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안타까움과 조바심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 나는 그런 어머니의 바램도 이뤄드리지 못하고 여기에 있다.

나도 내 아이를 가진 부모가 되다보니 어머니가 내게 가졌던 그런 기대도 있고 세월이 흐르는 것에 조바심도 생긴다.

그래서, 이 봄 날, 하루하루가 예사롭지가 않다. 그렇다고 세상이 달라질 것은 없는데도 말이다. ㅎㅎ

한참동안 생각을 멈추어 본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점점 꼬이기만 할 뿐이라서 오히려 조명이 미치지 않는 구역으로 눈을 돌린 후 멍때리기를 해도 갈증만 날 뿐이어서...

그러다 문득 '나만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어 공감되는 글을 찾아 봤더니 제법 많은 글이 발견된다. 아하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하며 스스로 위로를 받는다. 혹시 나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면 서로 위로 받읍시다. ㅎㅎ

 

《낙성문을 지나며》(過洛城) / 유장경(劉長卿) 
風景依稀似去年, 풍경은 어렴풋이 작년과 같건만,
落花人獨立斜暉。지는 꽃 아래 홀로 서니 석양이 기우네.
只有江流無限意, 오직 강물만이 한없이 흐를 뿐,
年年猶自向東飛。해마다 여전히 동쪽으로 흘러가네.
느낌 : 봄은 여전한데 세월은 흘러 지난 청춘이 아쉽다는...

《춘사》(春思) / 백거이(白居易) 
綠窗紅淚漏聲長,   푸른 창가에 붉은 눈물 흐르고,
春去春來似有傷.  봄이 가고 다시 와도 왠지 서글프네.
不是傷春悲往事,  지난 일을 슬퍼하는 게 아니라,
只緣年歲鬢毛霜.  다만 나이 들어 귀밑머리가 희어질 뿐.
느낌 : 봄이 다시 왔지만 젊음이 사라졌다는 씁쓸함?

《재유오강산》(再遊吳江山) / 유우석(劉禹錫) 
來時舊路似無違,   다시 와 보니 길은 예전과 다름없건만,
去歲年華已不歸。지난해의 젊음은 돌아오지 않네.
莫道春風無限好,   봄바람이 한없이 좋다 하여도,
與君俱是兩衰微。그대와 나는 이미 늙어버렸구나.
느낌 : 아름다운 봄날도 청춘이 사라지면 예전만큼 반갑지 않다는 표현일 듯.

《춘야》(春夜) / 소식(蘇軾) 
花落花開年復年,  꽃이 피고 지기를 해마다 반복하건만,
春來春去不相關。봄이 오고 가도 이제는 상관없네.
少年看花多爛漫,  젊어서는 꽃을 보며 한껏 기뻤지만,
老去逢春不似歡。늙어서는 봄이 와도 그리 반갑지 않구나.
느낌 : 젊을 때는 봄이 설렜지만, 나이가 들면 봄도 예전만큼 그렇지 않다는 감성.

《춘일》(春日)  / 두목(杜牧)
自是年年去復來,   해마다 봄은 어김없이 오고 가지만,
如今不似舊時懷。지금은 옛날처럼 설레지 않네.
青春幾許隨流水,  청춘은 얼마나 물처럼 흘러가 버렸나,
只見桃花照水開。그저 복사꽃이 물에 비쳐 필 뿐이네.
느낌 : 봄은 돌아왔지만, 청춘은 흘러가버렸다는 씁쓸함과 무덤덤함?

 

청춘은 누구에게나 있고 나이듦도 누구나가 겪어야할 일입니다.

다만 하루하루가 진실되고 성실하다면 세월이 가서 늙으면 어떻습니까?

"잘 늙었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나쁘지는 않잖아요?

누구의 노래처럼 '아프지 말고' 잘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