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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달래장의 기억 250323

by 올곧이 2025. 3. 23.

3월23일 일요일

 

오늘 오전에는 이끼가 낀 수족관을 청소한 뒤, 물을 갈아주기 위해 어제 받아 놓은 물의 수온을 체크해 봤다. 수족관 속 물은 21도, 새로 준비한 물은 20도에 조금 못 미친다. 이대로 물을 넣으면 열대어가 온도 차 때문에 감기 증상을 일으킬 수 있어 기존 물온도와 맞추기 위해 따뜻한 물로 희석해야 했다.

스테인리스 주전자에 찬물을 받아 가스렌지에 올리려다 싱크대 위에 놓인 달래 한 묶음이 곁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아내가 나를 위해 제철 음식을 맛보이려는 마음에서 준비한 듯했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성격상 다이렉트로 말하기가 쑥스러워 슬쩍 "달래 사왔네!" 하고 말했더니 "달래장 만들어 보려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달래장이라면 내 기억 속에는 두세 가지 유형이 떠오른다. 

하나는 달래장인데, 간장에 다진 달래, 고춧가루, 다진 마늘, 참기름, 깨를 넣어 만든 양념장이다. 달래의 알싸한 향과 간장의 감칠맛이 어우러져 밥을 비비거나 두부에 곁들이면 찰떡궁합이다. 

또 하나는 달래무침인데, 달래를 고추장, 식초, 설탕, 참기름으로 조물조물 무쳐 반찬으로 곁들이는데, 새콤달콤한 양념 속에 달래 향이 퍼지며 입맛을 돋운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 많이 먹었던 달래 된장찌개가 있다. 된장찌개에 무와 양파를 넣고 끓이다가 마지막에 달래를 넣어 향을 더하는데, 구수한 된장 국물 속에서 달래 특유의 알싸함이 살아나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요즘은 신선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 달래 양념장이나 달래무침으로 즐기지만, 예전에는 달래 된장찌개가 더 선호되지 않았나 싶다. 바쁜 어머니가 일터에 나가시면 조리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데워 먹어도 향이 살아나니,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을 때 한쪽에 달래 된장찌개 그릇을 올려 데우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참 그립다. 그런데 오늘 점심은 외식을 하기로 했으니, 달래장은 저녁이 되어야 맛볼 수 있으려나?

오늘 점심은 파트너에게 대접받기로 했다. 이달 말이면 내 기간제 계약이 만료되는데, 그동안 한 번도 함께 식사한 적이 없어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하기에 며칠 고민 끝에 승낙했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아래지만 이미 같이 나이 들어가는 마당에 무슨 대접이냐며 사양했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 보니, 먹는 것으로 정을 나누는 문화가 있는 나라일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하지 않는가?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의 영향도 있겠지만, 인생에서 음식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예로부터 "음식 끝에 정 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릴 적 우리 집은 살림이 어려웠지만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동네 이웃은 물론이고 객지에서 온 손님, 일가친척들이 수시로 찾아왔다. 그중에서도 기억나는 건 ‘강원도 할머니’라 불리던 분이다. 곡물을 판다며 서너 달씩 묵고 가길 몇 해나 반복했다. 어린 나는 그분이 친척인 줄 알았을 정도다. 돌이켜 보면, 그렇게 숙식을 나누는 것이 우리네 정이자 풍속이 아니었을까?

오늘 점심 대접을 받기로 한 것도 그런 취지에서 결심한 듯하다. 이야기가 자꾸 옆으로 새지만, 어쨌든 점심을 대접해 준다는 마음에 감사하고, 저녁이면 맛볼 달래장을 생각하니 작은 기대가 생겨 시간이 금방 갈 것 같다.

오늘은 일요일. 휴일이라 그런지 도시락을 싸 온 가족들도 보이고 운동장도 모처럼 활기차다. 

모두가 행복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