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5일 화요일
아침 일찍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출근을 하려는 열시가 가까웠으니 일찍이라기엔 좀 그렇지만 마음 씀씀이가 첫새벽에 신선한 느낌으로 만난 그런 느낌의 정성이 담긴 전화였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군대후배의 전화였다. 오랜만의 반가운 전화라서 안부를 물으려고 했는데 그는 다짜고짜 일자리가 생겼다며 관심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놀라면서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요즘 일자리가 하늘의 별을 딸 정도로 힘들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던 참이었으니...
사실, 나는 정년퇴직을 한 지 10년이 다 돼 가고 그만큼 나이도 많아졌기에 기대를 하는 대신 혹시라도 쥐구멍에 볕 뜰 날이 오면 행운이라고 생각하면서 몇 차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맨날 백수로 지내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것도 아쉽고, 아직은 집에서 빈둥거리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아서 부탁하는데, 혹시 주변에 일자리 나면 연락줘봐라" 라고...
그러고 나서도 '이렇게 취지하기가 어려운데 설마 내 얘기를 귀담아 듣겠나?' 하는 의구심으로 솔직히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던 참이었는데 그 동생은 내 말을 기억하고 있었는가 보다. 그리고, 마침 자신이 아는 곳에서 일자리가 생기자 마자 가장 먼저 내게 연락을 한 것이고...그러니까 이 꼭두새벽(?) 같은 시간에 안부보다 더 급한 말로 ... ㅎㅎ
얼마 전에도 시청소속 관리공단에서 청소인원 1명을 뽑는다는 모집이 있어서 이메일로 응시를 한 뒤 서류합격자 (즉 면접대상자)를 보니 서류심사 탈락을 시키고도 13명이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공고를 봤을 정도로 요즘 취업 시장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 젊은 사람들도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대다. 그런 와중에 나처럼 한참 나이를 먹은 사람에게 먼저 연락을 주었다는 사실이 너무 감동적으로 다가왔고 그만큼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담아들은 뒤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는 진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랴? 아쉽게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일정계획과는 맞지 않아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지금 하던 기간제 계약이 만료되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가족과의 만남도 횟수를 늘려야 하고, 가능하면 고생한 아내와 함께 해외는 아니더라도 국내여행이라도 하고 싶은 계획을 갖고 있었다. 누님들이나 자형들의 연세가 보통이 아니라서 시간을 천금으로 여길 정도로 귀한 입장이고 나 또한 이 나이를 먹도록 아내에게 해 준 것이 너무 없다보니 그동안 내내 미안했던 터라서 직장은 그 다음 순서로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햐!~ 어쩜 일이 이렇게 이뤄지나?
사람의 일이란게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내놔야 하는 것이 진리인가 보다. '한 두달만 틈을 줘도 어쩌면 연결지을 수 있는 일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내 입장에서만 생각할 그 무엇도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을 내 위주로 생각할 것은 아니다는 생각을 겹쳐 본다. 한참 동안을 생각한 끝에 후배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내 계획을 추진키로 마음을 먹었다.
"윤호야! 참 미안한데, 피치 못하게 내가 계획하던 일정과 겹쳐서 이번에는 내가 포기할 수 밖에 없는데 우짜겠노? 어렵게 어렵게 알아봐 준 니(너) 성의를 이렇게 망쳐서 거듭 미안하다" 라며 미안한 마음을 전하면서도, 그의 진심어린 배려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 일자리 자체도 귀한 것이지만, 그보다도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 주고, 내 사정을 생각하며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다는 것이 더 값진 일인데 말이다. 이런 따뜻한 마음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속에는 깊은 고마움이 남았다.
살면서 우리는 많은 인연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어떤 인연은 그냥 의미없이 스쳐 지나가고, 어떤 인연은 오래도록 남아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준다. 오늘 받은 이 전화 한 통이야말로, 서로의 마음을 이어주는 소중한 연결고리 같은 것이었다. 언젠가 나도 후배에게 이 고마움을 꼭 다시 돌려줄 기회가 있기를 바라면서 가슴 깊숙이 그의 배려를 새겨둔다.
오늘은 아파트 뒷산에도 불긋불긋한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으니 봄은 겉잡을 수 없이 진격한다.
그리고, 세상은 봄처럼 따뜻하고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봄보다 더 따뜻함을 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