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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봄을 또 본다 250216

by 올곧이 2025. 2. 16.

2월16일 일요일

 

 일곱시 출근이라 간식을 먹기 바쁘게 집을 나섰다.

달은 서쪽 하늘로 기울었고 모양도 한쪽이 줄어 들었지만 맑은 하늘에 떠 있어서 보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

이예로 오르막을 오르는데 차는 힘들었지만 불이 꺼진 가로등이 줄지어서 기지개를 켜는 듯 두팔로 하늘을 안고있는 모습이 힘차다. 이예로를 벗어나니 한쪽으로만 뻗은 가로등은 마치 결혼식장에서 보던 학군병(ROTC)들이 칼을 치켜올리고 신랑 신부가 지나가는 길을 안내하듯 히틀러식 인사를 한다. 

 

 언덕배기로 올라서니 동쪽하는엔 해가 올라오려고 아침노을이 절정이고, 그 노을 빛은 서쪽하늘에 떠있는 구름까지 옅은 파스텔로 채색을 한듯 아름답다. 일요일에는 휴일답게 가족과 즐겁게 쉬어야 제 맛이지만 이런 풍경에 이런 기분이라면 쉬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것도 기분이 그저 그만이다. 더구나 오늘은 혼자서 근무를 하기 때문에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내 맘대로 일에 집중할 수 있어 더 그렇다.ㅎㅎ

 

 예전 성남둔치에서 일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일을 하면 손이 두번 가지 않게 좀 꼼꼼하게 집중해서 하는 편인데 내가 만난 기간제 동료들은 거의 모두가 대충 하고서 민원이 들어 오면 그 때 다시 하는 버릇들을 갖고 있었다. 모든 식물들이 왕성하게 자랄 여름 날이었다. 주차장에 잡초들이 겉자라서 보기도 좋지 않고 야간주차시 시야에도 방해가 될 것 같아 그걸 제거하러 나가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가 "시키지도 않는 일을 왜 하냐?"는 타박을 했다. 나는 내 생각을 말하고는 그대로 실행에 옮기려고 하는데 "문제가 되면 연락이 올 텐데 왜 하는데? 하지마!"라며 짜증까지 내는 것이었다. 비록 같이 입사(?)한 동료지만 얘는 이미 기간제 분야에는 수년간의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라서 뭔가 특별한 사정이 있는가 보다 하고 기분을 가라앉히게 한 뒤 왜 하지 말라는 것인지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의외의 황당한 사례를 말해 줬다. 말인 즉, 지난 어느 날 사무실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관리자가 내려와서 대뜸 한다는 얘기가 "00씨는 지금 일하고 있는데 당신은 뭐하느냐?"고 힐란을 받았다는 경험담이었다. 결국 동료가 너무 부지런해서 자기가 욕을 먹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짜증까지 내면서 말리는 그가 이해가 되긴 했지만 ...? 한참이 지난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여러 사람으로 부터 들은 얘기를 종합해 보니 관리자가 왜 그에게 힐란을 했는지도 알만 했다. 그래서 오늘은 나 혼자 일을 하는게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걱정거리가 생겼다.

어제 오후에는 성남둔치에서 탄핵반대 집회가 있어서 아내와 같이 운동삼아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20여분 걸리는 거리라서 가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한 보름정도 전부터 눈에 이상이 있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가 괜히 또 걱정을 전염시키는 것 같아서 흘리는 투로 "안과에 다녀온 지 한참 되었지?"라고만 던졌다. 몇년 전에 시력이 달려서 안경을 맞추려고 시력검사차 안과에 갔다가 백내장의 조짐은 나타났고 녹내장도 관리해야 된다면서 6개월 주기로 들리라고 했는데 미적대면서 작년에야 다시 찾았더니 다행히 변동은 없다면서도 6개월 마다 검진 받는 것을 권유 받았었다. 그런데, 보름 정도 전 부터 오른쪽 눈에서 비문증이 나타났는데 비문의 모양도 벌레모양이 아니고 검은 점 세개가 모인 듯 보이고 시선에 따라 없어지지 않고 잔상으로 나믄 것이 예전에 겪어 알고 있는 비문증과는 다르기 때문에 혹시 질환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내 몸이 천냥이면 눈은 구백냥"이라는 말을 새겨 본다.

그 만큼 몸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있는 눈인데 이걸 비문증이겠거니 하고 그냥 지나치려니 혹시나 비문증이 아니고 진행되는 질병이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된다. 아직은 밝혀지지도 않은 일이라 무작정 근심하기는 이른 것은 틀림없다. 이라다가도 진짜 비문증이면 그걸로서 이해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왠지 기분이 찝찝하니 아무래도 다음 쉬는 날은 안과에 다녀오는 것이 옳겠다 싶다.  

 

 즐거운 맘으로 일을 하면서 땀나는 줄도 몰랐다.

쓸고, 딲고, 광내고를 하고 나서 운동기구 있는데로 가서 몸도 풀었더니 기분은 그대로 좋다.

운동장 주변을 돌면서 바람에 날린 비닐 과자봉지를 줍고 고개를 드니 오리나무에 봄이 나오는게 보였다. 비교적 양지바른 곳이라서 지난해 잎들이 비록 마르긴 했지만 떨어지지는 않고 달려있는데 그 사이로 초록색 열매가 제법 굵다.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히 봤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자연은 역시 어김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봄을 보게 되었다.

 

 아무나 볼 수 없고 누구나 볼 수 없는 봄을 또 보는 것은 행운이다.

나는 오늘 그 행운을 새벽에 올라오면서 봤던 그 가로등보다 더 크게 팔을 펼쳐 잡아 본다.

즐거움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