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5일 토요일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 일어 나서 볼 일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3시45분이다.
보통 5시에 눈을 뜨는데 오늘은 왜 이 시간에 신호가 왔지 하며 생각을 해보니 어젯 밤에 아내가 배를 깎아 준 기억이 났다. 요즘은 알게 모르게 몸에 이상이 있으면 원인을 추적하는 버릇이 생겼다. 휴대폰으로 전해지는 안부도 그렇지만 친구를 만나는 경우에도 건강을 염려하는 것이 상례가 되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버릇이 생긴 것 같다.
평소 잠이 부족하 이 시각에 잠자리를 접을 시간은 아니다 싶어 다시 누워 잠을 청했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아마 그렇게 씨름하다 잠이 들었는지 6시20분에 맞춰 둔 알람이 울었다. 오늘은 7시 출근이기 때문에 혹시나 늦잠을 잘까봐 알람을 맞춰 뒀는데 아주 잘한 것 같다. 아니었으면 새벽잠에 골아 떨어졌을지도 모르고 그랬다면 출근에 문제가 있었겠다 싶다.
날씨가 흐린지 아직은 방안이 컴컴하다.
아내가 깨지 않도록 살그머니 세면하러 나가다 보니 부엌에는 불이 켜져 있고 아내가 언제 일어났는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먼저 일어 났네?"하며 아침 인사를 건네자 아내는 자기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 곳을 보니 잠자리에 눌렸는지 이마에는 주름처럼 자국이 패여 있었다. 복원이 안된걸 감안할 때 방금 일어 났음을 감지하고 서로의 일로 다시 돌아갔다.
오늘은 어제일을 생각하면서 조금 일찍 출근을 했다.
일찍이라고 해봐야 여기서 일터까지는 10분도 안되는 거리라서 5분 정도쯤 될까? ㅎㅎ
사무실 가까운데 주차를 하고 사무실로 가다 보니 사무실엔 벌써 불이 켜져 있었다. 시니어가 먼저 나왔다는 것이다. 날씨는 바람도 없고 구름은 끼었지만 영상 1도 정도되니 춥지는 않다. 사무실로 들어가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먼저 나왔네?" "나오십니까?" 라며 교차된 인사를 건냈다.
어제의 무거운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가져간 신문을 컴퓨터 앞에 놓으면서 보니 이미 컴퓨터가 켜져있는 것을 보니 나온지 제법 된 모양이다. 이 참에 어제의 어색했던 듯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말을 더 시켰다. "오늘 게임이 있습디까?" 하고 질문을 던졌더니 "예, 조회해 보니 종일 잡힌 것 같은데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몇 시 부터 잡혔습디까?" "8시 부터 잡혀 있던데요!" 대답소리가 이제 완전하게 자연스러웠다.
어제의 일은 어쩌면 잘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자기도 어색한 분위기를 깰려고 많은 고민을 했을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7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이제부터는 업무와 관련한 것도 부담없이 얘기해도 이해가 되는 소통이 이뤄졌다고 생각되었다. "게임이 8시 부터면 게임 전에 운동장 상태를 봐야하니 지금 시작합시다" 며 장갑을 끼고 문을 나서니 자기가 먼저 쓰레받기와 집게를 들고 앞장을 선다. 속으로 은근 놀라면서 오늘의 과업을 시작한다.
아직 해빛이 밝지 않아서 그런지 조명탑 위로 둥근 달이 활짝 웃고 있다.
사진을 한 장 찍었더니 실제로 보이는 달은 황금색인데 하얗게 나왔다. 이건 분명히 내 사진실력이 꽝이라는 얘기지만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저렇게 누런 달인데 사진에는 왜 이렇게 하얗게 나오지?" 라면서 사진을 그에게 보여 줬다. 그는 "잘 찍었네요! 잘나왔는데요?!" ㅎㅎ 그의 사진실력도 나와 비슷한 걸까? 아니면 나를 동료라고 인정한다는 의미의 표현일까?
인조잔듸 위에는 하얗게 서리가 앉아 있고 그 위로 네 줄기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혀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즐거운 주말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