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4일 금요일
아침 해가 찬란한 금요일이다.
어제 종일을 아무 것도 안하고 쉬어서 그런지 정신도 맑고 기분도 좋다.
아홉시 출근시간이 가까운 시각인데 기온은 벌써 0도를 넘어서고 있고 오늘 최고 온도는 11도라고 하니 가히 봄 날씨나 다름 없다. 아침에 오는 안부에도 벌써 꽃이 그려진 그림들이 자주 보이는 것으로 봐서 봄을 기다리는 것은 모두가 같은 마음인 듯 생각된다.
일터 가까이 함월 만등이에 올랐는데 곁눈으로 언듯 보이는 영남알프스는 눈이 제법 왔는지 골마다 허옇게 보이는게 마치 조명 꺼진 정육점 쑈윈도에 걸린 소갈비를 보는 듯 하다. 산은 언제나 그립지만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 지금은 마음으로 만족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마음 같아서는 눈밭에 텐트를 치고 찹찹한 공기를 맘껏 마시면서 오로지 귀에 들리는 텐트밖의 소리로 주변을 상상해 보다 때론 텐트를 열고 그걸 확인하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주를 날아보는 그 기분을 다시 느껴 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일을 하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지만 체력도 이제 힘이 부친다.
잠깐 동안이지만 이런 상상을 하는 중 일터가 시야에 들어 왔다.
평소엔 일 터 가까이 갓길에 주차를 했지만 오늘은 지난 번에 시니어에게 알려줬던 대로 청소가 되었는지 확인하고 잘된 점을 찾아 격려를 보태면 처음 접하는 시니어라는 일도 보람있다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화장실 건물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청소상태를 돌아 보았다. 그런데, "아~! 이건 아니다!"는 것이 바로 보였다. 청소도구 정리상태 부터 쓸고, 딲고의 기본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순간 어떻게 말할까 고민을 하고는 휴대폰을 들고 사진들을 찍었다.
직접 현장교육을 다시 시키고 싶었지만 이미 지난 번에 한번 시범을 보여줬기 때문에 또 다시 반복하면서 가르키기엔 나도 말이 많아질 것 같고, 시니어 쪽에서도 잔소리로 들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체크 포인트는 알고 있는지 확인을 하고 모르면 사진을 보여주며 하나하나 다시 알려 주려고 생각했다.
시니어도 이미 환갑을 지낸 나이여서 말이 조심스럽다.
사무실로 들어서니 컴퓨터 앞에서 유튜브를 보다가 인사를 한다. 같이 인사를 하면서 아직은 서로가 서먹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청소를 해보니 별 어려움은 없습디까?" 하고 넌지시 말문을 열었다. 아직은 서먹함이 배인 소리로 "별 어려움은 없던데요...?"라며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라는 반문을 기대하 듯 말했다. "해보지 않은 일을 했으니 혹시나 애로는 없었는지?" 라며 한번 더 분위기를 누그러 뜨리며 "청소시간은 대략 몇 분이나 걸리던가요?"하고 물었더니 "대략 40여분 걸린 것 같습니다"는 대답이 돌아 왔다.
대충 들어보니 정답이 나왔다.
그나마 경력자인 내가 바쁘게 움직이더라도 2시간 정도 걸리는 것을 경험도 없는 신입이 40분이라니...?
이제부터 본론을 얘기해야 하는데 "이런 얘기를 해야만 할까?'하고 자꾸 망설여 지기도 했지만 모른체 두기란 하루 이틀만 참으면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번에도 동천강 수영장이 조기에 문을 닫는 바람에 이곳으로 임시 배치된 사람이 있었을 때도 내가 더 열심히 하자고 마음을 먹고 그냥 참고 지냈지만 근 3개월 정도는 같이 욕을 먹어야 했던 기억이 ...
결국 망설임 끝에 입을 떼고 말았다.
"00씨! 오늘 아침이 추웠을 텐데도 잘해줘서 고마운데, 아마도 지난 번에 한꺼번에 얘길해서 이해가 안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다시 얘길 할 테니 다음부터 내 말을 참고하여 해줬으면 싶다. 왜냐하면 저녁 청소는 퇴근 무렵에 하는 것이니 오늘 아침 근무자를 생각하여 한다고 보면 되고, 오늘 아침 청소는 운동장을 사용하는 이용자를 위한 것이므로 이용자가 편하고 깨끗한 기분을 가지도록 하는 목적이다. 그래서, 저녁 보다는 아침이 훨씬 시간과 공을 들여야 ..."
환갑이 지난 사람한테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받아 들이는 시니어 입장을 생각하기 전에 내 자신이 왠지 싫어 졌다. '꼭 이렇게 해야만 하나?' 하는 생각이 내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 마다 가로 막는 듯 했다. 그렇다고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잘 할거야!"는 믿음만 가지다가는 지난 번 처럼 자꾸 민원만 늘어 나서 여러 사람에게 피곤을 준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고, 다른 한편으로 이 분에게 기분 나쁠지도 모르는 말을 하느니 그냥 그대로 보고를 하고 인적조치를 바라는 것 또한 이 분의 가능성을 짓밟는 비인간적인 행위 같고... 이럴 때가 제일 난감스럽다. 해도 탈이고 안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비인간적인 방법보다는 이해해 주면 다행이 아니겠냐는 마음으로 일단 말이라도 해주고 그 다음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그 때 가서 또 고민하기로 하고 ...
그래서, 시작한 이야기였는데 역시나 이 분도 생각이 복잡한 것 같은 표정이다.
어쩌겠나?! 내가 생각해도 이 나이에 굳이 말을 해야 하는가를 놓고도 내 스스로가 싫어지는 마당에...?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를 끝내고 시간을 보니 아직 9시 20여분 밖에 되지 않아서 "아직 퇴근시간이 40여분 남았으니 잠깐 화장실 둘러보고 퇴근하라"고 말을 건내고 머쓱한 마음에 등돌린 의자에 앉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다.
한참 시간이 흘렀는가 싶은데도 움직이는 기척이 없다.
몹씨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왜냐하면 이 분의 살아 온 환경이 그랬고 지금도 혼자 살면서 남의 간섭을 받지 않았던 자신의 얘기를 일전에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어쩌겠나? 본인이 무료봉사를 하러 온 것도 아니고 엄연히 세금으로 녹봉을 받으면서 이걸 감내하지 못한다면 이 직업이 본인에게도 또, 일을 준 기관에게도 맞지 않는 것일 뿐인거지?!
열시가 다 될 시간에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아마도 퇴근시간은 지키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수고하세요"라는 말을 뒤로 하고 문을 열고 나간다.
나도 답례인사를 한 뒤 뒤 장갑을 끼고 그가 못다한 청소를 마무리 하려고 나가다 보니 그가 화장실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서야 조금은 무거웠던 내 마음도 조금 덜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가 내 말을 대꾸없이 들으면서 스스로의 자아와 수많은 질문과 답을 했을 것이고 그 결과 내린 것이 행동으로 나왔을 것이기에 ...다행일까?
나는 화장실로 가려다가 그가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혼자 있도록 해주고 싶어서 도로 사무실로 들어왔다.
지금 내가 그가 있는 곳으로 가면 그가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가 간 뒤 다시 가보기로 하고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좋은 일도 그렇지만 싫은 일을 만났을 때도 사람이 관계되는 일은 정말 싫다. 회사에 다닐 때는 젊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남들에 비해서는 사람과의 문제가 흥미롭기도 했는데...이제 늙어서 그렇겠지?! ㅎㅎ
햇살은 점점 운동장을 데우는지 따스해 지고 오늘은 초컬릿을 받는 발렌타인데이다.
무거웠던 아침보다는 저녁이 더 기다려진다. 좋은 하루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