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수요일
성탄절인 오늘 아침은 축복이 내려서 그런지 평상시 날씨보다 휠씬 따스하다.
기온은 0도라고 표시되지만 높은 게양대에 걸린 깃발들이 조금의 요동도 없을 정도로 바람도 없고...
아홉시에 운동장을 사용하는 학생들의 반바지 차림도 보일 정도이니 얼마나 좋은 날씨인지는 사무실에 앉아서도 느낄 수 있다. 이럴 때 눈이라도 내린다면 그야말로 축복의 절정일 텐데...
하늘을 보니 흰구름으로 덮혀 있지만 군데군데 파란 하늘이 나온 것을 보면 거기까지는 실현되지 않을 것 같다. ㅎㅎ
자리에 앉을 여유가 없이 장갑을 끼고 일과를 시작하러 나간다.
호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에는 '까똑!' '까똑!' 연방 울리는 알람소리로 바쁘다. 단톡방은 알람을 죽여 놓았으니 아마도 그동안 소식이 없었던 지인들이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면서 보내는 안부일거라 생각되지만, 청소를 한답시고 두겹의 장갑을 꼈기 때문에 아무래도 청소를 끝내 놓고서야 확인을 해야할 것 같다. 보낸 사람도 안부를 기다릴 테지만 울릴 때 마다 장갑을 벗고 끼고를 하기가 상당히 번거롭기도 하고, 또 청소도 그만큼 늦어질 것이기에 그냥 마음속으로 '기다려주세요'만 외치면서 "누굴까?" 하는 궁금함과 기대만 키우고 있다.
어제는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다들 집에서만 보냈는지 청소할 꺼리가 없다.
운동장 주변도 그렇고 화장실, 기타 시설물도 깨끗해서 특별히 힘이 들거나 시간이 많이 소비되는 일은 없었다. 덕분에 아홉시 부터 게임이 있었지만 별 문제도 없었고 그만큼 나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어서 좋다. 안부로 들어 온 카톡에 일일이 답장을 보내고 커피 한 잔을 타서 책상 위에 올려 놓고 크리스마스에 맞는 분위기 있는 노래를 선곡했다. 들국화 2집에 수록된 " 또 다시 크리스마스"가 생각났다.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설레는 마음과 함께
언제나 크리스마스 돌아오면 지난 추억을 생각해.
크리스마스 또 돌아왔네. 사랑의 느낌과 함께
누구나 크리스마스 돌아오면 따스한 사랑을 찾지.
거리에는 캐롤송이 울리고 괜스레 바빠지는 발걸음
이름 모를 골목에선 슬픔도 많지만 어디에나 소리 없이 사랑은 내리네』
노래 가사를 듣지 않고서도 크리스마스만 되면 이 기분을 느꼈었는데 어찌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싶다. 그러니까 아무나 가수를 하는게 아니지!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아무나 히트를 치는게 아니지?!' ㅎㅎ
무심결에 마시는 커피는 맛이 어땠는지도 모르게 잔이 비었다.
대신 나는 지나간 크리스마스 기억을 더듬어 봤다. 그런데, 우리 애들(자식)과 연관된 기억 보다 그 전 아주 오래된 기억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조금 오래되긴 했지만 우리 애들에게는 요즘과 마찬가지로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한 것 처럼 연극 아닌 연극을 한 기억만 난다. 애들도 어려서 요구하는 선물도 없었지만 그 때는 아내와 내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선물을 줬던 것 같다. 그래도, 싫다는 소리를 듣진 않았으니 산타가 왔다는 사기극을 빼면 무난했지 싶은데 애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나중에 물어 봐야지! ㅎㅎ
그런 반면 내가 어렸을 적에는 크리스마스가 무슨 의미를 담았는지도 몰랐다.
그냥 그 날은 교회에 가면 사탕과 먹을거리를 준다고 해서 교회에 우루루 몰려갔던 기억이 난다. 교회는 우리집과 거리가 제법 있는 병영교회(초등학교 인근)였지만 물욕(?)에 빠져서 행여나 먹을거리가 동이 나기 전에 가야한다는 일념으로 뛰어갔다. 교회에 도착하면 도착 순서대로 줄을 선 뒤 안내하는 교회누나의 말에 따라 신발을 벗고 회당으로 들어가서 기도가 뭔지도 모르면서 기도랍시고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이며 소원을 빌었던 일. 지금 생각해도 우습지만 아마 그 때의 소원은 아마도 먹을 것을 많이 달라는 소원을 했을 것 같다. ㅋㅋ
그런데, 그것도 한 두해 갔었나 모르겠다.
누군가 교회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는데 요즘말로 가짜뉴스가 돌았다.
"교회에 가면 기도하라면서 눈을 감기고는 신발을 훔쳐 간다"는... ㅋㅋ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그걸 실제로 믿었다. 기껏해야 '기차표' 아니면 '말표'의 검정고무신이었지만 그 시대에는 신발조차도 귀한 자산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런 신발조차도 혹시나 닳을까봐 들고 다녔다면 아마도 거짓말이라고 할걸? ㅎㅎㅎ
암튼 그 때부터 교회에 가지 않았는데 그 이후에도 심심찮게 가짜뉴스는 돌았다."새 신(발)을 거둬가고 대신 헌 신을 놓아 둔다"고 했던가? 참! 그때나 지금이나 가짜가 판치는 ...
암튼, 크리스마스에 대해서는 요즘보다는 옛날 기억이 더 생생하고 재미있었다는 생각이다.
점점 철이 들면서 예수의 탄생일인 성탄절이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라던가, 각종 이벤트로 '서로 사랑하자'는 의미들이 가슴에 와닿지만 그 때는 우선 배고픔을 해결하기 바빴으니 작은 것들 조차도 '내 것 찾기' 아니면 '내 것 지키기'로 일관하지 않았었나 생각되어 조금 죄송한 마음도 든다.
또,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씰(Christmas Seal)도 팔았지만 그 때는 의미도 확실히 몰랐지만 우선 부모님께 부담을 끼치는게 분명해서 많이 고민했던 생각도 난다. 어쩔 수 없이 사야되는 것이었지만 ...
지금 우리는 얼마짜리, 어떤 것을 선물할까로 고민하는 너무나 풍족한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는 또 다른 슬픈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