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목요일
햇살은 태화사 뒷 산봉우리 양지바른 곳에서 해맑게 웃고 있지만 바람은 바늘같은 솔잎까지도 흔들어 댑니다.
베란다로 나가니 냉장고를 열고 얼굴을 디밀던 한여름이 생각날 정도로 냉기가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하늘엔 얇은 구름사이로 파란 면적이 점차 넓어지고 있으니 화창한 날이 될 것이라는 것을 감지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창밖에 떨고 있는 온도계 눈금은 영하 2도인지? 1도인지? 바라보는 눈이 가늠을 못합니다. 떨어서...ㅋㅋ
드디어 올 해도 마지막 달인 12월을 맞았습니다.
달랑 한 장 밖에 남지않은 달력은 어제 보았던 가지 끝에 달랑거리는 나무잎처럼 간절하네요.
처음이 어디고? 끝이 어디인지? 정의를 내릴 사람이 많지 않듯이 나 또한 그 부류에 해당되는가 싶습니다.
분명 달력은 한 해의 끝자락을 알리고 있는데도 끝이라 생각하지 못하면서 그냥 멍멍한 기분만 있으니까요!
살다보면 차츰차츰 익숙해 질지? 그대로 일지? 다 살아보고 난 다음에 말하겠습니다. ㅎㅎ
오늘은 오랜만에 영남알프스 산행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있습니다.
서로가 사는 곳도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다 보니 영알(영남알프스) 완등을 하고서도 기념식을 못했는데...
그동안 얼마나 늙었는지? 아니면 익었는지? (ㅋㅋ) 빨리 보고 싶네요.
왜냐하면 어제도 초등학교 동기(정명규) 하나가 저 세상으로 갔다는 부고를 받았거든요!
벌써 이 달에만 3명째 동갑들이 떠나 갔으니 그런가 봅니다.
어제 본 마지막 잎새도, 책장 앞에 달린 한 장의 달력도 예사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길 가에 떨어져 뒹구는 나무닢들이 내 마음으로 들어와 쌓일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여기서 분위기를 바꿔야 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우울증에 빠졌는지 잠깐 스치는 센치한 생각에도 자꾸만 깊이 빠져드는 경향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이럴 때 마다 치료약 먹듯이 詩를 찾는 습관이 붙었습니다.
좋은 처방을 스스로 내린 것인데 어떻게 봅니까? ㅎㅎ
12월의 독백 / 오광수 (1960~ )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 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
그렇지요? "맞습니다. 맞고요..."(괜히 노무현대통령 흉내를... ㅋㅋ)
희망이란 이래서 가슴 깊숙히 심어 두는 것 아니겠습니까?
천종산삼처럼 고이고이 숨었다가 끊어 질듯한 생명에게 자신을 버리고 내어 주는 그 것.
오늘은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그러나, 너무 움추리기 보다는 활기차게 대응을 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리고, 12월의 시작인 오늘은 분명 어제보다 뜻깊은 날이 되기를...
태화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