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선진화'에 데이고 '비즈니스 프렌들리'에 차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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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이 10만 명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조합원이 모인 가운데 29일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으로도 4만 명이었다.
지난 1997년 노동법 개악 규탄을 위한 양대 노총의 공동 집회에서 모인 숫자가 10만 명이었다. 한국노총 혼자 주최한 노동자대회로는 유례를 찾기 힘든 숫자다.
이들은 왜, 거리로 나온 것일까?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서 대회사를 통해 "지금 우리는 매우 중차대한 시기에 놓여 있다"고 했다. '중차대한 시기'인 첫 번째 이유는 구조조정에 대한 현장의 불안감이다. 민간 기업이냐 공기업이냐는 이미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공기업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공기업 선진화'라는 명목 아래 위기 의식을 느껴 왔다. 민영화 계획에서 다행히 제외된 곳도 최근 떠도는 '15% 정원 감축' 소문에 긴장감이 팽배하다.
특히 민간 기업의 경우 금융 위기에 이은 실물 경제 위기로 벌써부터 98년의 대규모 구조조정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현장 조합원들로서는 "경제 위기를 빌미로 한 일방적 구조조정을 전 조직의 총력 투쟁으로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지도부에게라도 희망을 걸어봐야 하는 상황이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법으로 명시하는 나라 어디도 없다"
최근의 경제 위기를 감안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비록 한 달 여 전이긴 하지만, 지난 9일 열린 민주노총의 노동자대회 참석자는 2만5000여 명, 경찰 추산 1만7000명에 불과했다.
상대적으로 '투쟁'과는 거리가 먼 한국노총이 대규모 인원 동원이 가능했던 이유는 또 하나의 위기감 때문이다. 바로 2010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가 그것이다.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지난 2006년 3년 유예를 합의한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는 한국노총 현장의 최대 현안이다. 비록 지도부는 "비정규직법 개악 저지"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현장 간부들은 전임자 문제가 더 "피가 마른다."
이런 위기감을 다독이듯 장석춘 위원장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반노동자적 작태"라고 정부를 향해 경고했고, 이날 참석한
여기에 거침없는 노동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행보는 한국노총 지도부의 자존심을 계속 건드리고 있다.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맺었지만, 한나라당은 한국노총이 반대하는 각종 노동 관련 규제 완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법도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통해 추진해야 한다"며 "일방적인 기간 연장 강행은 안 된다"고 계속 목소리를 내지만,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부의 뜻대로 이미 개정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법도 한국노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도 마찬가지다. 노동부의 거침없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행보는 오히려 한국노총의 노동자대회 조직화에 한 몫을 했다.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우리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위기감이 원동력이 된 것이다.
장석춘 위원장은 "만일 우리 경고를 무시하고 노동부가 일방적으로 법개정을 강행한다면 이후 노정관계 파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장관 스스로가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총은 정책협약 체결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약속한 △비정규직의 편법적 남용 규제와 차별 철폐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노사 자율 보장 △사회적 대화 기구의 전면 확대 개편 △연금 제도 개혁 △실노동시간 단축 △공기업 경영 자율성 보장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 및 원하청 공정 거래 질서 확립 등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10만 명이 모여 외친 '약속 이행' 요구를 과연 이명박 정부가 귀담아 들을까?
/여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