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7일 금요일
9시 출근이지만 몸이 잠자리를 거부한다.
그래도, 누울 자리가 있음에 감사하고 잠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시계를 보니 일곱시가 가깝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아내도 덩달아 일어나 아침 간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내는 잠이 많은 편이라 늦잠을 자도 될 텐데 나 때문에 일어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게 하루 이틀도 아니었지만...
이럴 때마다 썰렁한 말로 아내를 허탈하게 만드는 것도 나의 임무다.
오늘은 금요일(Friday)이라 후라이를 주제로 썰렁한 화두를 꺼냈다.
"여보! 혹시 후라이 보이 곽규석이라고 들어 봤지?" "그 사람 예명이 왜 후라이 보이였는지 모르지?"...
아마도 우리가 자란 시대가 조금 차이나다 보니 아내는 후라이 보이를 잘 모르는지 묻는 말 마다 "글쎄요?"가 답이다.
썰렁한 이야기로 아내를 썰렁하게 만들려고 했는데 이제는 나 스스로가 썰렁하게 되었고 결국 나는 일방적인 해설자 처럼 아내가 듣건 말건 말 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ㅋㅋ
"예전에 곽규석이란 TV MC가 있었는데 그 사람의 말은 좀 뻥튀긴 듯 해서 후라이 보이(fried boy)라고 사람들이 불렀거든? 그랬는데, 어느 날 그를 놀리려고 그의 예명이 어떻게 해서 생겼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뭐랬는지 알아?"
나도 잘 모르고 있었던 내용을 아내가 알 리가 없는 줄 알면서도 물었던 나는 무슨 생각을 했으며 무슨 고집을 그렇게 부렸던지? 출근을 하고 한참이 지난 지금에도 도무지 나란 놈은 뭐라고 표현해야 적당할지 모르겠다. ㅋㅋ
암튼 정답은 가르쳐 줘야만 될 것 같아서 썰렁하게 "후라이 보이는 거짓말의 후라이가 아니고 자기가 공군을 제대했기 때문에 fly boy라고 자신이 지었다고 했단다"라고 정답을 말하고 나서 "그 거짓말도 귀엽지?"라며...썰렁을 한번 더 곁들였다. 아내가 듣고 있는지 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쓸데없이 뭔소리?"라는 핀잔이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을까?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거짓말도 순진하게 튀김 껍데기 정도였다면 요즘엔 뭐라고 해야 하나? 거품(bubble)이랄까?
.... 물방울 만한 것을 몇 백배로 부풀리는 것도 부족한지 이제 대 놓고 거짓말을 해대니..." ...
하면서 혼자서 독백을 하고 있는데 쓸데없는 얘기를 끊고자 했는지 아내의 바쁜 손은 맛난 간식을 뚝딱 내어 놓았다.
일터에 나오니 이미 시니어는 청소를 끝내 놓고 히터 앞에 앉아서 언 손을 녹이고 있다.
잠깐 인사를 나누면서 청소일이 어떤지 소감을 물어 봤더니 "그런대로 할만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마음이 좀 놓였다. 왜냐하면 이런 "청소같은 것을 시킬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다"는 첫 대면의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 갖고 있으면 아무래도 제 역할에 충실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열시가 되어 시니어를 퇴근시키고 어제 일을 반추해 본다.
지난 화요일에는 쉬어야 했지만 시니어 교육상 쉬지를 못해서 그런지 어제 쉬는 날은 조금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런 생각은 나만 가진게 아니었는지 아내가 운동을 나가면서 오늘 점심엔 쭈꾸미가 어떻겠냐고 바람을 잡길래 점심은 덕분에 성안동에 있는 종로 주꾸미에서 오랜만에 땀을 흘리면서 맛나게 즐겼다.
잠시 여유를 가지는 날이라서 식곤증을 핑계로 의자에 앉아 잠깐 졸았다 싶었는데 눈을 떠 보니 세시가 넘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몇 걸음이나 걸었는지 확인을 하니 300보 정도 밖에 걷지 않았다. 이대로 하루를 보내기엔 운동량이 너무 부족하다고 싶어서 강변으로 나갔다. 날씨는 차가워도 그럭저럭 걸을만 했는데 바람이 조금 세다. 7천보 정도 걸으니 체온이 올라가고 추위는 가셨지만 여전히 바람은 세고 차다.
추위에 질린 강물은 추위를 피해 도망을 가는 듯 물결은 일제히 출렁인다.
건넜던 강을 넘어와서 바람을 피하기 위해 강둑 아랫길로 걸으니 햇살은 따스했지만 강변에서 찬바람과 싸우는 갈대가 맘에 걸렸다. 아직은 마른꽃이지만 뺐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바람과 싸우는 갈대도 많았지만 그 중 몇몇은 이미 꽃들을 빼앗겼는지 아니면 떠나 보냈는지 줄기만 남은 갈대가 있었고, 한참을 더 걸으니 목이 꺾여 머리도 남지 않은 갈대도 보여서 몹씨 안쓰럽게 보였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나이 탓인지 모르겠지만 생물이 생명을 다하는 모습이 좀 그렇고 그랬다.
그래도, 노을이 진다면 덩달아 화려함에 묻히지는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노을을 볼 시간은 한참 남아서 그 마음으로 그냥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오는 내내 꽃대가 꺾인 빈 갈대가 눈에 아른거렸다. 나를 보는 듯...
지금 운동장에는 눈이 내린다.
베트남에서 이민 온 다문화 가족들 이십여명 정도가 애들을 데리고 운동을 나왔다.
마침 내리는 눈을 맞으며 좋아라 하는 모습에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바람이 세서 비껴 맞는 눈이지만 여기서는 보기드문 눈이라서 그런지 신기함도 있고 기분이 좋아졌다. 유튜브로 이문세의 "옛사랑"을 찾아서 듣는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텅빈 하늘 밑 불 빛들 켜져 가면 옛사랑 그이름 아껴 불러보네
찬바람 불어와 옷깃을 여미우다 후회가 또 화가 난 눈물이 흐르네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 온 내모습 모두 거짓인가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맘에 둘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 대로 내버려 두듯이
흰눈 나리면 들판에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길 찾아가지
광화문 거리 흰눈에 덮여가고 하얀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
그리고, 어떤 그런 날이 올 때도 눈이 내려 준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오늘은 후라이 데이(friday)지만 마음은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