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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느 겨울 밤에 250130

by 올곧이 2025. 1. 30.

1월30일 목요일

 

 오늘은 아침부터 부산했다.

쉬는 날이라서 느긋하고도 싶었는데 그 보다는 피붙이인 가족들과 설 인사를 나누는게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피곤을 억지로 누르며 서둘렀다. 점심 약속이지만 늦게 일어난 덕분에 조금 바쁘게 설쳐야 했다. 설친다고 해봐야 고기 밥주고, 화초 살피고, 샤워하고 옷을 갈아 입는게 다였지만....ㅋㅋ

 

 이제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옛 것이 그립다.

그래서 설 날인 어제는 한복이 그리웠는데 ...ㅎㅎ

한복을 얘기했더니 아내가 황당한 얼굴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는 내 맘을 이해했는지 몇 해가 지난 초 여름(초파일)에 딸래미가 마련해 준 퓨전한복을 꺼내 줬다. 그래서, 설 날에는 아들 내외와 큰처남 내외와 조카들이 왔을 때도 전통 한복이 아니라서 조금 아쉬웠지만 이 퓨전 한복으로 세배를 받았다. 퓨전 한복의 내가 좀 이상하게 보였는지 다들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나는 그걸 깨트리기라도 하듯 덧붙여 한마디 했다. "갓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오늘은 내 역할이 중요하다.

같은 동네(울산)지만 이집 저집 다니면서 식구들을 내 차에 동승시켜야 한다. 울산 식구라고 해봐야 태화동 누님과 야음동 누님이고 자형들은 수술을 한 지가 얼마되지 않기 때문에 오늘은 빠지기로 했다. 물론 몸이 제대로 완성된 상태도 아니었지만 날 것은 삼가하라는 의사의 조언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부산 누님은 거제에 살고 있는 작은 딸내(조카)에 간다고 못 오시고, 창녕누님은 교통편이 불편해서 참가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해서 나중에 우리가 창녕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모인 식구는 막내 여동생 포함 6가구 중 4가구가 참석 했다.

 

 얼마 만에 맛보는 생선회인지?

두 자형이 참석을 한다고 가정하고 대짜, 중짜를 시켰는데 자형들이 빠졌는데도 회가 부족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지 오늘따라 회맛이 더욱 특별난 것 같았다. 입에 착착 붙듯이 쫀쫀하고 설탕물에 헹군 것 처럼 회가 달았다. 어지간히 먹었지만 자꾸 아쉬운 생각이 들어선지 막내가 작은 것 한 접시를 더 시켰다. 그랬더니 횟집 사장님은 우리의 식성을 간파(?)했는지 원없이 드시라며 큰 접시에 듬뿍 담아 주셨다. 그런데, 그것 마저도 게눈 감추듯 사라지고 ...ㅋㅋ 결국 매운탕으로 입가심을 하고 2차로 어물동에 있는 카페로 갔다.

 

 해도 해도 이야기는 끝이 없다. 이게 피붙이들의 정이려나? 

어릴 때의 추억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아버지, 어머니, 먼저 가신 언양누님도 떠 올려 보고...

 

 집집마다 내려다 주고 집에 왔더니 벌써 저녁이 어스럼 내려왔다.

창 밖을 내다보니 지나다니는 차들의 불빛이 가득하고 아직도 손님들이 남아 있는지 아파트 주차장에는 자동차들이 그대로 가득하다.

 

 하루를 정리하려고 책상에 앉아서 멍 때리다 박노해의 시를 읽자니 마음이 헤엄을 치고 세상으로 나가고 있다.

한 번 읽고 또 다시 읽어 본다.

 

그 겨울의 시  / 박노해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그래! 자자!

ㄴㅏ의 눈꺼풀도 자꾸만 서로를 끌어 당기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