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3일 토요일
오늘은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외출을 한 사람들은 조금 긴장했을 것 같네요.
이른 아침에는 주말답게 쾌청해서 출근이 가벼웠지만 운동장 청소를 끝내고 휴대폰을 열고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 한 시엔 한차례 비가 올 것 같다는 예보가 있어서, 점심을 먹고 집에서 나올 때는 혹시 몰라 우산을 챙겨들고 왔는데 비는 점점 멀어지더니 저녁이 되니 비 예보는 사라지고 없다. 역시 자연을 알아내기는 기상 전문가들도 어려운가 보다. ㅎㅎ
오늘은 주말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운동장으로 쏟아질 줄 알았는데 오전, FC클럽 한 게임만 하고는 게임도 없었을 뿐더러 운동하는 사람들도 그다지 많지 않다. 다들 어디로 갔을까? 단풍구경? 아니면 다른 곳에 더 재미있는 이벤트라도 있는가? 궁금해서 인터넷 서핑을 해도 그런 정보는 없다. 날씨도 그렇게 차지는 않는데 사람이 없으니 뭔가 적적한 기분이 든다.
엊저녁에 있었던 군우회(軍友會) 모임을 생각하다가 반짝 머리에 튕기는 것이 있었다.
운동장 주변 풀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예초기를 돌릴 때 집에서 가지고 온 군화를 신었었는데 아직 청소를 안하고 캐비닛에 넣어 뒀다는 생각이 스쳤다. "맞다! 이젠 예초기를 돌리지 않아도 되니까 군화를 씼어서 정리하자!" 고 중얼거리며 캐비닛에서 군화를 꺼집어 내보니 그야말로 가관이다.
군화는 그야말로 씩씩하고 늠름한 군인의 얼굴 같은 모습이어야 하는데 어쩌면 쓰레기 통에 버려진 신발보다 더 더럽고 초췌한 모양이다. 예초를 할 때 예초기 칼날에 잘린 풀 티끌들이 군화에 엉겨 붙어서 말랐으니 그 모양이 흡사 소 여물통의 모습이랄까 싶다. 일단 늦었지만 꺼내 봤으니 망정이지 조금 더 늦었더라면 군화의 재질조차 상할 뻔 했지 않은가? 그런 것도 모르고 여태 무관심하게 쳐박아 두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니 군화에게 대단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에이고 주인을 원망해라)
사실 이 군화도 처음부터 내 것은 아니었다.
아들 녀석이 제대하면서 신고 왔던 것인데 '이제는 신을 일이 없다'고 해서 내 것으로 삼았던 물건이다.
그것도 아주 요긴한 때, 봄에 나물이나 약초를 뜯으러 산에 갈 때 뱀이나 해충에게 변을 안당하기 위해서는 장화를 신어야 했지만 발등이 다른 사람 보다 높은 나는 어지간히 큰장화도 신고, 벗기가 너무 어려웠던 차에 이게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화를 신으면 옛날 군대 생각이 나고, 조금 젊어지는 듯한 기분도 들어서...(착각이지만 ㅎㅎ)
그런데, 군대 기억은 참 오래가는가 보다!
내가 군대를 제대한 것이 78년 11월이었으니 지금으로 부터 4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은 생생한 걸 보면...
우스개 아니면 조롱삼아 "남자들이라면 군대 얘기만 하면 밤을 세워도 피곤하지 않다"고들 하지 않던가? 그게 남자들에게는 군대가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생사의 기로에 놓인 적이 몇 번이나 있었겠나? 이건 남자를 떠나서 여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되는게 그런 것이다. '생사의 기로...
군대는 그런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만 되는 것이고 또, 그 무엇보다 보람된 일이니까...
"인생을 살면서 군대가 아니라면 자기 목숨을 걸만한 일이 있을까? 군대가 아니라면 내가 조국을 지킬 일이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어깨에 짊어 질 일이 있냐는 말이지? 그것도, 최악의 조건에서, 한 두시간도 아니고 무려 3년도 넘게 견디며 참아 내면서...?"
암튼, 천일야화는 아니지만 군대 추억은 너무 너무 많아서 아예 꺼내기가...
하긴 이 울산 촌놈이 서울을 본 것도 아니고 서울에서 장장 35개월 20여일을 살았으니 출세(?)도 했지머?! ㅋㅋ
제목이 아리송송 하지만 귓가에는 아직도 생생하게 노래가 들린다. "보람 찬 하루 해를 끝 마치고서 ~..."
오늘도 어림잡아 20년은 더 젊어졌으려나? ㅋㅋ
감기 조심하고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