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8일 월요일
아침 일찍 본 하늘은 마알간했다. 이곳 저곳을 살펴봐도 구름 한 점 없었다.
따스할 것 같은 아침 햇살을 보면서 환기를 시키려고 베란다로 나가려던 나는 흠칫 놀라서 다시 거실로 들어와야만 했다. 추웠다. 속옷바람이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바깥 창을 연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추위가 온몸을 휘감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몸은 바깥 창을 여는 것을 포기하고 거실로 들어왔지만 그 찰라의 순간에도 창에는 이미 김이 번지고 있었다. 그만큼 안과 밖의 온도차가 컸다는 증거였다.
"으~ ~" 자동적으로 떨리는 어금니를 진정시키면서 방으로 들어와서 휴대폰을 열어보니 기온이 2도로 찍혔다. 아직은 환기를 위해 문을 열어서는 안되겠다는 판단을 했다. 왜냐하면 아직도 식구들은 늦잠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오후근무라서 아내가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고 딸래미도 오늘은 휴일이기 때문이다. 곧바로 옷가지를 주섬주섬 걸치고 세수를 한 뒤 신문을 들고 왔는데 이미 서울발 "갑자기 겨울 … 오늘 서울 출근길 영하권" 이라며 추위기사가 실려있는 것을 보니 추위는 어제부터 우리나라를 덥친 모양이다.
오전에는 아무것도 못했다.
기껏 안부로 들어오는 카톡 소리만 나를 움직이게 했을 뿐 방해하는 그 무엇도 없었으므로 그냥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순간적으로 느껴버린 추위로 뇌가 얼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참이나 그냥 앉아 있는 중에 조금 열린 문틈으로 "일어났어요?" 하며 아내가 세수한 얼굴로 기상점호를 요청한다. 어제는 오랜만에 힘겹게 뒷산을 등산해서 피곤할만도 한데 상태가 더 좋아 보여서 반가웠다.
컴퓨터를 켜고 오늘의 일정을 살펴보니 특별한 오늘의 기념일은 없고 어제가 "순국선열의 날"이었음을 늦게서야 알았다. 대한민국의 국권회복과 조국독립을 위해 희생하거나 헌신한 애국자 및 독립운동가 등의 순국선열들에 대한 추모와 존경을 표하는 날이자 그들의 독립정신 및 호국정신을 기리는 법정 기념일이었는데 나는 그런 기념일도 못 챙겼다. 죄송스럽다.
그럭 저럭 오전을 그렇게 보내다가 오후 일찍 일터로 나섰다.
추위 때문인지 운동장에는 이미 경기가 끝나고 돌아가는 클럽팀 선수들이 보였고 일반 마니아들은 서너명만 트렉을 돌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걸 잠깐 깜박했다. 집에서 나올 때는 그걸 염두에 뒀는데 일터로 올라오는 그 10여분 사이에 그걸 깜빡하다니? ㅎㅎ
주변의 너무들 중 내가 좋아했던 나무는 잎들을 거의 다 떨궜고 빈가지만이 맑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한바퀴 돌아보며 청소거리가 있나 찾으려고 나무 밑으로 갔다. 떨어진 낙엽들만 수북하게 쌓였고 나무에 달린 잎들은 셀 수 있을 정도로 몇 남지 않았다. 오후의 햇살에 비치는 거미줄도 주인은 없고 혼자라도 뭔가 잡아보려 전을 펼치고 있지만 ㅜ떨어지는 낙엽 하나 조차도 잡지 못한체 개점 휴업이다. 방금 또 몇 개가 떨어지지만 용케도 거미줄은 피하면서 빙글빙글 돌면서 형제들 틈으로 섞인다.
한줄기 세찬 바람이 운동장을 건너오자 모였던 낙엽들이 도망을 가는지 바람 따라 가는지 우루루 달려 간다. 그런 가운데 벤치에 앉은 검정색 패딩을 입은 두 노인은 팔을 들어 얼굴만 가릴 뿐 그대로 앉아 계신다. 저 연세면 추위를 많이 탈 텐데 몸이라도 상할까봐 뭔가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그들도 이런 날씨엔 말을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싫을 것이란 짐작으로 그냥 사무실로 돌아와 염려만 한다. 가을이 사라질 때의 추위는 그냥 쓸쓸한 느낌이다. 모두가 떠나 갈 것 처럼 허전하고...
이런 날은 용기있게 모든 일을 중단하고 따스한 마실거리로 몸의 체온부터 올리는게 상수라 생각된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일지라도...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