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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눈 오고 싶은 날 241110

by 올곧이 2024. 11. 10.

11월10일 일요일

 

 오늘은 아침 근무라서 일찍 일어났다.

여름에는 아침근무가 맞았는데 아직도 날이 밝지 않고 어두컴컴한 것을 감안하면 새벽근무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설득력 있게 들리겠다. 암튼 일곱시까지 일터에 가야 하므로 간식으로 목구멍을 대충 간지린 다음에 겉옷을 하나 더 걸치고 집을 나선다. 일터는 해발 150미터 정도 되지만 울산 중심부에서는 제일 높은 곳이라서 아침과 저녁에는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한기를 느낄 정도다.

 

 차를 타고 이예로를 빠져나와 교육청 뒷길 연결도로를 지나니 길옆으로 샛노란 감국들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고 덩달아 사릿잎들도 노랑색 힘을 보태고 있다. 동쪽이 보이는 정상부근으로 막 해가 뜨기 시작한다. 구름이 많이 끼었지만 해가 나오는 그곳에만 비었는지 광채가 눈이 부신다. 그러고 보니 새해 일출을 볼 시기가 다가오고 한 해가 거의 다 갔다는 느낌이 몸을 감싼다. 세월 참 빠르다!

 

 벌써 운동장 스탠드에는 일곱시 부터 예약한 FC(축구클럽) 선수들이 신발을 고쳐 신고 있고 워킹족들은 트렉을 돌고 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운동장에 버려진 음료수 캔이나 과자 봉지들을 치워야 한다. 평소에는 FC 선수들이 도와주기도 하지만 해가 짧아서 그런지 아직 선수들도 다 나오지 않은 것 같아 내가 먼저 움직였다.

 

 게임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주변 시설물들을 점검했다.

이 곳에는 토요일 저녁만 되면 학생들이 축제를 하듯 많이 나오는데 학생들이 나오는 숫자만큼 운동장 주변도 쓰레기들이 많아지는데 역시나 어제도 예외는 없었다. 청소를 하면서도 요즘 학생들이 공중도덕을 어떻게 배우는지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내가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닌 다음에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나나 내 파트너가 바른 소리를 냈다간 오히려 쓰레기 폭탄을 맞는다는 것을 전임 근무자들에게 경고처럼 들은 터라 감히 입단속을 하는 수 밖에...

생각할수록 이 나라의 앞 날이 걱정되면서 한편으로는 명세기 외국인들에게서 선진국에 사는 우수하고 양심바른 민족이라는 소리를 부끄러워서 어떻게 듣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제발 잘 자라 줬음 좋겠는데...

 

 청소를 마치고 장비들을 갈무리 한 뒤 모닝커피를 탔다.

이제부터는 사고만 없으면 책을 읽거나 유투브를 보거나 나만의 여유를 즐기면 되니까 마음이 한결 가볍다. 커피잔을 들고 옥상에 올라가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축구게임을 보면서 하늘을 봤다. 가을 하늘이지만 회색구름만 잔뜩 끼어 파란 구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희뿌연 하늘이다. 때가 가을이고 또, 여기는 눈이 내리지 않는 동네이기에 망정이지 이런 날은 꼭 눈이 내릴 것만 같은 날이다. 그렇지만 눈이 안 올 확률은 2천%. ㅎㅎ

 

 눈을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겨울도 연상되면서 일터로 올라올 때 가졌던 느낌이 다시 온 몸을 휘감는다. 뭔가는 허전하고 센치멘탈한 기분에다 청소를 하면서 올랐던 체온이 식으면서 약간은 쌀쌀한 한기까지 몰려왔다.

빈 커피잔을 들고 사무실로 내려와 컴퓨터로 오늘의 기분을 옮겨 적으면서 내 맘에 드는 시를 한편 찾아봤더니 역시나 감성의 시인 김용택 시인의 작품이 찡하게 뇌리를 튕기기에 옮겨 적는다.

 

초겨울 편지 / 김용택

앞 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 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 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어쩜 내 맘을 이렇게 잘 표현해 주셨는지요? 감사드립니다.ㅎㅎ

오늘은 이런 감정으로 하루를 잇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