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9일 토요일
일곱시 정도에 잠이 깨서 밖을 보니 어두컴컴했지만 쾌청한 날씨가 될 것 같더니 진짜로 따스한 가을 날씨다. 직장인들은 휴일을 즐기는 그런 날이지만 나는 붉나무가 빨갛고 노란 잎을 살랑이는 이예로를 따라 출근을 했다. 일터에 도착을 하고 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트렉을 돌고 있고, 운동장에는 이미 축구시합이 시작되었는지 선수들끼리 싸인을 주고 받느라고 고함소리가 제법 시끄럽다.
어제는 내가 쉬는 날이라서 그동안 혹시나 훼손된 곳이나 변형된 것은 없는지 돌아보다 운동기구가 설치된 곳에 갔더니 운동기구는 그대론데 그 앞에 심어진 큰 나무들이 많이 변해 있었다. 수북이 쌓인 낙엽 위로 단풍든 잎들이 거의 떨어져 버린 앙상한 가지들만 하늘이 부끄러운 듯 가리고 있다. 땡여름이면 운동을 마친 마니아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비가 내리면 우산같은 역할을 해 주던 당당한 나무가 잎이 다 떨어지고 나니 왜 이렇게 초라해 보이는지? 세그루의 나무들이 하나는 연노랑, 하나는 주황, 나머지 하나는 빨강색의 단풍을 자랑했었는데 지금은 뒷 배경색이 보일 정도로 잎이 다 떨어지고 노랑색은 2/3, 주황색은 1/3, 빨강색 단풍은 이제 1/4 정도만 남았다. 사무실에서 보면 전면에 위치해 있어서 책상에 앉으면 제일 먼저 보이는 애처로운 풍경이라 이제는 보는 것 조차 미안할 지경이다. 하지만 세월따라 가는 것은 나만도 저만도 아니고 마찬가지 아니겠나! ㅎㅎ
단풍이 얼마나 내려왔는지 사무실 오른 쪽 산을 봤더니 산 풍경이 제법 아름답다.
운동장에 있는 나무들은 너무 자세히 보여서 단풍이 떨어져 버린 나뭇가지가 허전하지만 산은 좀 다르게 보인다. 풍성하기도 하지만 밝은 가을 해빛을 받은 단풍들이 여기저기 노랗게 또는 붉게 물든 것이 초록의 소나무들을 배경 삼아 아주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린 듯 눈을 호강시킨다. 오늘은 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수고에 대한 보상이 될 듯...ㅎㅎ
하지만 오늘은 휴일이기 때문에 운동 마니아들이 오기 전에 청소를 마쳐야 한다.
평상시 같았으면 청소를 마치고 모닝 커피를 즐겼지만 오늘은 커피를 한모금 하고 일을 시작하려고 커피를 탔다. 모락모락 오르는 김과 커피향을 즐기며 오늘의 경기 스케쥴을 점검하며 일정을 보니 오늘은 "소방의 날"이다.
소방의 날은 『국민들에게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이해를 높이고 화재를 사전에 예방하게 하여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화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고 소방은 화재를 예방하고 경계하며 진압하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소방과 관련한 기억이 별로 없다는게 어쩌면 다행이기도 한데, 그래도, 혹시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랬더니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긴 하다. 불을 낼뻔한 기억도 있고 불을 내어 곤란한 적도 있고 불을 끄려 다녔던 기억도 있긴하다. ㅋㅋ
불을 낼 뻔한 기억은 코흘리게 시절, 친구집 타작마당에서 형들과 불붙인 깡통을 돌리며 쥐불놀이를 하며 노는데 친구아버지가 마당을 살피러 나오시다 불장난을 하는 우리를 야단치시려고 잡으려는 바람에 안잡히려고 불붙은 깡통을 들고 숨은 곳이 짚단을 묶어 만들어 놓은 짚동 사이였으니... 다시 강조하지만 앞뒤 못가린 철없던 시절이었다...ㅋㅋ
그리고, 불을 낸 기억을 떠올려 보니 ...(이건 참 위험했네)
그 때도 어린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가을 걷이가 끝나고 지붕을 이으려고(그 때 우리집은 초가집이라 매년 지붕갈이를 했슴) 동네 어르신들은 지붕위로 올라 가시고 어머니는 점심을 준비하느라 바빠서 국 끓이는 불감시를 나한테 맡겼는데 그 때도 감시라는 것이 그렇게 심심하더만! 요즘 같으면 불멍이라는 것도 해 봄직했으련만 그 때는 그런 낭만도 없어서 부지깽이를 가지고 탁탁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던가?! 그 때 "불이야!" 라는 소리와 함께 지붕위의 어르신들이 숨가쁘게 내려 오시더니 나를 냉큼 낚아 채시고는 마당에 던지듯이 ㅋㅋㅋ 그래서, 본 것이 내가 있었던 곳 뒤의 짚(땔감)에 불이 붙어 지붕으로 번지고 있는 장면이었다. 아마도 내가 불감시를 하다 심심해서 두드린 부지깽이가 부러지면서 끝에 붙은 불똥이 튀어서 내 뒤에 쌓아 둔 짚(땔감)에 불이 붙었나 싶다! ㅋㅋㅋ
지금 다시 생각해도 별 탈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끔직할 뻔 한 사건이 될 뻔했다. ("불조심" "불조심" 백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불을 끄려는 이야기는 한참 철이 든 청년 때였나? ㅎㅎ
회사에서 일을 하던 중이었는데 인근 산(양정 뒷산)에서 불이 났는데 소방인력으론 부족했는지 회사 간부들을 동원하는 바람에 나도 끼었지! 허겁지겁 산으로 올라가기 바쁘게 생나무를 꺾어 불을 두드리며 열심히 끄고 있는데 난데없는 돌풍이 불고, 불을 끄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불에 쫓겨서 대피를 해야 하는 입장이 돼버렸다. 열기는 다가오고 연기는 앞을 가려서 방향조차 모르겠고 무조건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따라가라는 고함소리에 어딘지도 모르고 허둥대며 대피해야 했던 기억이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고 살벌했었네. 우짜던동 살아보겠다고...ㅎㅎ
요즘이야 소방기구나 장비들이 좋아져서 어지간 하면 일반인들이 직접 불을 끄는 일은 없어졌지만 우리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조선시대 쓰는 소방리어카(불통이 있고 간이 수동펌프가 달린) 외에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나마 중학교 2학년 때 방어진 학생수련장에 갔을 때는 누군가 실수를 해서 분말 소화기를 터뜨려 온 복도에 눈이 오듯 분말이 쌓인 것을 생각하니 그 때는 분말소화기가 나왔나 싶다.
하긴 지금도 불이나면 제일 급하게 써먹는 방법이 바가지에 물을 담아 불에 끼얹는 것이지만 이 마저도 이젠 통하지 않는 것이 화학 재료가 많고 불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조건이라서 불은 안내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세계인들이 우리가수가 부른 "아파트"에 열광하고 있다는데 우리는 '아파트' 리듬으로 "불조심"을 넣어 개사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든다. "불조심 불조심" "불조심 불조심 아하! 아하!" ㅎㅎ
남은 시간도 즐겁게 즐겁게 아하 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