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2일 목요일
이른 아침, 희뿌연 안개가 오늘의 일기는 어제와 같이 땡볕이 될 것 같은 예감을 불러옵니다.
하늘은 온통 허연 구름으로 덮혀 있지만 작열하는 태양이 곧 점령을 시작할 것 같습니가. 그런데, 좀 특이한 것은 가을치고는 습기가 장난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제도 아침의 예상과는 달리 연세가 있으신 분들도 덥고 짜증난다는 표현했을 정도이니...
어제는 가족모임을 했습니다.
비록 몸이 불편하고 교통사정이 어려운 창녕 누님과 요즘 한창 직장생활이 바쁜 여동생이 참석을 못했지만 더 이상 미루기에는 하루가 귀한 부산 큰 누님의 연세가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실은 막내자형의 암수술 때문에 그동안 모임을 한번 정도 건너 뛰었는데 도 그 위의 자형이 암진단을 받았기에 가능한 한 자주 모이는 것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형제간의 우애를 다질 기회가 아닌가 싶어서 몇몇에 구애 받으면서 모임을 미룰 수는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어제도 우스개 소리를 하면서 "나중에 값 비싼 킹크랩을 사주겠다느니 한우을 사 주겠다는 소리를 하는 것 보다 건강이 남아 있고 살아있을 때 할 수 있는 칼국수라도 먹는 것이 현명하지 않냐?"고들 얘기하면서 억지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였지만서도...ㅎㅎ
오랜만이라고 해봐야 두달이 조금 넘었을 뿐이지만 부산 누님의 얼굴은 많이 수척해 보였습니다. 얘기를 해보면 아직도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총기는 있는데 얼굴에 살이 많이 빠져서 주름살이 훨씬 많아 보였고 피부에도 기름기가 없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이제 저점 삶의 내리막 속도가 가속되고 있다는 생각이...연세가 89이니 엄마가 돌아가신 나이와 비교를 하니 기껏 두 살 차이? 참 세월이 빨리 갑니다.
부산누님은 생선회와 한우를 좋아하시는데 반해 가족 대부분은 회는 좋아 하지만 고기류는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공교롭게도 약속을 잡은 어제가 자주가는 횟집이 생뚱맞게 휴무라고 합니다. 우리가 횟집사장님에게 들은바로는 한달에 월요일 한번만 쉰다고 했는데 어제는 수요일 인데 왜 쉬느냐고 뒤늦게 섭섭한 투로 물었더니 지난 달에 바빠서 쉬지 못하고 이번 달은 추석이 있어서 대목 전에 하루 쉬는 날로 정했다며 아쉬움을 표현하네요....
우리도 이미 약속한 날짜라서 어쩔 수 없는 터라 '오랜만에 오리고기가 어떻겠냐?"고 긴급 상의를 한 끝에 병영에 있는 오리고기집으로 장소를 정하고 갔습니다. 일전에도 한 번 갔었는데 모두들 "한방오리탕이 참 좋더라"는 후기를 상기 시키면서...
역시나 어제도 만장일치로 대만족이었다는 평가로 식당과 멀리 떨어진 범서면 바오밥 카페로 가는 동안에도 내내 만족스런 얘기들이 있어서 장소를 추천한 아내의 속마음은 흐뭇했을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어제는 그렇게 즐거운 날을 보냈고 오늘은 종일 단독 근무라서 일터를 향해 올라오면서 "오늘은 별난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는데 오호! 뭔가 평상시와 조금 다른 운동장 풍경입니다. 평상시 이 시간대에는 대여섯 정도의 아침운동을 하는 사람이 보였을 뿐인데 오늘은 제복같이 하얀 짧은 상의와 까만 반바지 차림의 많은 젊은 사람들이 스탠드에 앉아 있고 그들 앞에는 긴바지 차림의 한 사람이 강의하듯 그 사람들을 향해 서 있었습니다.
청소를 나가려고 복장을 갖추면서도 이 사람들은 뭣 때문에 이렇게 모였는가 궁금해서 컴퓨터를 켰습니다. 혹시 운동장 예약을 보면 해답이 나올 것이란 예감으로...
으음! 역시! 오늘 09시~ 18시 까지 울산광역시경찰청이 사용한다고 예약이 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네요. 그런데 경찰이 여기서 뭣하러? 라는 의문과 동시에 검정색 T셔츠에 POLICE라고 새겨진 옷을 입은 젊은 사람이 내게로 오더니 전기 콘센트를 좀 빌려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뭣 때문에? 뭘하려고? 등등 이유를 묻고 답하고를 하다보니 오늘이 경찰수험생들이 체력시험을 치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침근무 순서는 운동장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필드를 돌아보며 눈에 띄는 오물을 먼저 치워준 뒤 여자화장실과 남자화장실 청소를 한 다음에 주차장과 운동장 외곽지역의 쓰레기를 줍고 마지막으로 분리수거장을 정리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래서, 우선 필드를 한바퀴 돌고 나서 화장실 청소를 시작하려는데 수험생들이 긴장한 탓인지 자주 들락거려서 평소와 같이 전체를 물청소로 하긴 곤란할 것 같아서 간이 청소만 하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간이 청소라고 하더라도 전체를 물로 씻어내는 대청소만 아닐 뿐이지 청결을 위해 하는 기본적인 청소는 안할 수가 없습니다. 가령 변기에 묻은 오물을 솔로 문질어 씻어 내리고 걸레로 마감질을 한다던가 빗자루로 바닥을 쓸어 내고 물걸레로 딲고 다시 마른걸레로 마감을 한다던가 쓰레기 통을 비우고 새 휴지로 갈아 놓는다던가 이런 것은 똑 같습니다.
어쨋거나 청소를 하는 와중에도 수험생들이 들락거려서 간이 청소를 하면서도 신경이 많이 쓰이더군요!
딲고 돌아서면 그대로고, 또 다시 쓸고 딲아 놓으면 다시 더렵혀져 있고...ㅎㅎㅎ
내심으론 아직 안된 곳을 사용했으면 싶지만 사람이 어디 그렇습니까? 기왕이면 깨끗한 곳을 찾는게 본능일 텐데...
하여튼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면서 마음을 추스리고 하던 일에 열중인 와중에 뜻 밖의 예의를 갖춘 "수고 많으십니다" 라는 인사에 바닥을 향하고 있었던 고개를 번쩍 들고는 "고마워요!"라고 대답을 하였네요.
솔직히 적잖이 놀랐습니다. 온통 머릿속에는 시험에 대해서만 고민을 하고, 작정을 하고, 정신이 없을 텐데도 상대를 의식하고 배려의 인사를 했다는 것! 나는 속으로 이 수험생이야 말로 진짜 민생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되겠구나! 다른 곳에서도 성공을 하리란 믿음도 있지만 가능하면 이번 시험에 꼭 합격하여 민생을 돌보는 경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인사한 수험생은 얼굴만 보고 말았는데 두번째 수험생은 미래에 어떤 성공자로 나타날 지 이상렬이라는 이름표 까지 봐 뒀습니다. 그리고, 내가 청소를 끝내고 그들이 시험을 마치고 운동장을 빠져나가는 그 순간에도 두 사람에게 성원을 보냈습니다. 운동장 예약 인원 60명 중에 청소부에게 수고한다고 인사한 두 사람은 "꼭꼭 합격해서 원하는 바 이루거라"고...
시험은 오후 18시 까지 예약돼 있었지만 12시가 되기 전에 끝이 났습니다.
오늘 일기예보에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해서 진행이 더딜 줄 알았는데 다행히 일기가 좋아서 일찍 끝내게 되었다며 철수하는 경찰들에게도 바램을 보냈습니다. 저 두 사람에게 합격이란 선물과 함께 민생을 돌보는 진짜 경찰로 키워줄 것을 마음으로 부탁한다고...많잖은 부탁이었으니 잘 되겠지요? 어때요? 힘을 보태주세요!
오늘도 무더워서 옷이 흠뻑 땀으로 젖었습니다.
이게 다 사는 보람 아니겠습니까?! 죽은 자가 어찌? 땀 흘리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ㅋㅋ
오늘은 모두 만사형통으로 마감되기를 성원할께요. 사랑합니다.
태화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