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6일 금요일
안녕하시지요!
오늘은 해가 중천에 있을 시간인데도 희꾸무리한 날씨 탓인지 방안이 어두워서 컴퓨터 자판 글씨가 잘보이지 않아 조명을 밝혔습니다. 그리곤 여유를 가지려고 지난 일을 돌아보네요.
어제는 어머님의 기일이라서 조용한 저녁을 보냈습니다.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머리 속에는 아직도 생생한 모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하고...
그저께 저녁에도 가까이 사는 자형 내외를 모시고 동네 식당에서 조촐하게 외식을 하면서 잠깐 화두에 올렸지만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자꾸 떠올리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더 이상의 긴 얘기는 감췄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베란다에 나가서 화초와 풍뎅이를 둘러보다가 죽은 풍뎅이 숫놈을 보니 생각이 또 나래를 폅니다. 참 이상한 것은 생각이란 것이 세상의 이치와는 관계없다는 것. 그저 감정의 골로 깊이 깊이 들어 가기만 한다는 것!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멈춰졌다가는 다시 이 계절은 감정이 복잡해지는 그런 계절인갑다 하고 수긍을 하는...ㅎㅎ
땡여름에는 찌는 듯한 더위를 이겨내느라 그런 깊은 생각이 일어나지 않다가 이제는 선선하고 살기가 편해지니까 온갖 생각들이 봇물 터지듯이 마음을 뚫고 밖으로 나오는 듯한...ㅎㅎ
갑자기 죽은 풍뎅이를 보다가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오르고 그러다가 아버지도 생각나고 이어서 산전 집도 생각나니 장독대 앞의 화단도 보이고, 그 화단에 봉숭아와 채송화 그리고, 빨간 볏을 꼿꼿하게 세운 맨드라미도 생각납니다. 그리고, 빠알갛게 변해가는 그들의 잎들도...
우리집은 여느 집과는 달라서 딸자식이 많아선지 장독대 앞과 옆으로 봉숭아가 많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이 가을이면 빨간 봉숭아 꽃잎을 양손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 넣고 짓무르게 해서 손톱에 올리고는 빨간 물이 손톱에 스며들기를 기다리던 누님들도 생각나네요. 그 시절엔 그것도 색조화장품으로 알았으니까! ㅎㅎ
아! 화단엔 또 뚜깔나무도 있었네요.
뚜깔이라고 쓰고 보니 어감이 사투리 같아서 다시 검색을 하다보니 내가 생각한 것은 꽈리나무였네요. 암튼 꽈리나무도 심어져 있어서 지금 쯤에는 열매가 주황색의 가을 색깔로 변하는 것이 눈에 선합니다. 창호지 같이 얇은 열매주머니를 살짝 벗기면 그 속엔 빨갛게 익은 공처럼 동그란 열매가 나오는데 그 속의 씨를 빼내고 입에 넣고는 씨를 빼낸 곳으로 공기를 채웠다가 아랫입술과 윗니로 지그시 누르면 꽈-ㄹ 하는 소리가 나서 놀이삼아 불곤 했는데 ...
아~ 그 시절이 그립네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라는 노랫가사가 생각납니다.
아무 이유도 없고, 받아야 할 대상도 없고, 또 요즘 세상에 편지가 뭔지도 모르는 SNS시대에...ㅎㅎ
그런데도 편지를 쓰는 것에 더해 편지를 하겠다는 저 충동적인 노랫가사가 그리운 것은 왜인지?
오늘은 쉬는 날이라서 몸은 편하건만 대신 생각이 더 바빠지는 날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네요! 바람도 선선하고 왠지 여유가 넘치듯이 풍성한 기분이랄까?
암튼 이 좋은 계절!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태화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