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9일 월요일
구름하나 없는 맨얼굴의 하늘이 수줍은 듯 불그스럼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동쪽 하늘은 아파트에 가려서 볼 수 없지만 남쪽 하늘의 변화를 보면 아마도 해가 오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기온은 영하1도지만 춥다는 느낌은 없고 길가에 펄럭이는 태극기도 소심하게 움직일뿐이니 오늘도 활동하기에는 딱이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어제는 컵라면을 하나 넣은 배낭을 매고 냅다 운문산으로 갔습니다.
그제 자형과 점심을 먹으면서 영남알프스 산군들이 후지산 처럼 머리에 눈을 이고 있는 것을 봤더니 너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별다른 약속도 없는 날이고 날씨도 미세먼지가 있긴했지만 눈이 녹기 전에 "당장 떠나자"는 생각만으로 집을 나섰지요!
운문산은 영남알프스 산군 중에서도 나에게는 가장 등산하기 어려운 산입니다.
많게는 서너코스가 있지만 나는 거의 상운암 코스를 이용하는데, 어제도 역시나 상운암 코스를 택하여 오르기로 하고 차를 석골사 주차장으로 몰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늦어서 그런지 석골사 아래에 있는 두개의 주차장이 이미 만차상태였고 주차장 길목부터 갓길에도 빼곡하게 차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 중 전봇대 옆이 주차하기 까다로웠던지 비어있어서 그 틈에 주차를 시키고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역시나 시작부터 길은 군데군데 얼은데다 등산로 정비를 하려고 하는지 바닥의 돌들이 파헤쳐져서 발목의 근육을 시험하는 듯 울퉁불퉁 자세를 흐트러지게 만듭니다. 그럭저럭 너덜길을 벗어나 비로폭포 아래 계곡으로 접어드니 이제는 길이 얼어서 미끄러지지 않는 새로운 미션을 받은 듯 했습니다. 그나마 정구지 바위나 낭떠러지가 있는 곳에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서 큰 어려움이 없이 지나갈 수 있었지만 상운사 가까이는 길이 가팔라서 서너군데의 계단이 설치돼 있었지만 첫 번 째 계단부터 잔설이 보이더니 갈수록 눈이 녹지 않아서 미끄러웠습니다. 아이젠을 신지 않고서는 전진이 어려워서 할 수 없이 아이젠을 꺼내 신었더니 햐~아! 아이젠의 뾰족한 발이 쌓인 눈에 박히면서 나는 소리가 "뾰드득 뽀드득" 제법 정취가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힘껏 내리꽂은 나무지팡이(자작)가 앞으로 기울때 마다 눈이 압축되면서 지팡이로 전해지는 소리는?
나도 태어나서 난생 처음 들었는데 "까르륵 끼르륵" 슬픈 갈매기 소리가 어찌나 신기 하던지?
찰기있는 눈은 상운사를 지나 운문산 정상까지 녹지 않아서 몇 년만에 눈길을 실컷 만끽했네요!
정상에 올라서니 수많은 사람들이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는데 나도 맨 나중 사람 뒤에 서서 숨을 가다듬으며 지나온 길을 차근차근 복기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고생 끝에 환희가 몰려오고 ...ㅎㅎ
기껏 등산코스는 석골사에서 정상까지 4.1키로 정도였지만 몸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웠지요.
그리고, 내내 오르막 길만 있어서 그런지 다른 높은 산 보다 오르기가 더 힘들어서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산이 운문산입니다. 오르는 도중에도 도중하차를 여러번 고민하는 산이 운문산입니다. 중도에 포기를 안하려고 양사언(楊士彦(1517~1584)의 시조를 얼마나 수없이 외웠던지? ㅎㅎㅎ
오늘은 또 새로운 날입니다.
어제의 좋았던 생각이 계속 기분 좋게 이어졌으면 싶은데 1월도 이제 한 3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네요!
그러니까 오늘이 마지막 월요일이지요?!
세상일이 매번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라서 자칫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디다. 어제가 그랬거든요!
그렇다고 사람이 못할 일은 없다고 봅니다.
정말 오늘이 힘드시면 이 시조를 다시금 떠올리며 열정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 양사언(호: 봉달, 조선의 4대 명필가)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화이팅!
태화동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