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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뉴스

사회전체가 비정규직 바다

by 올곧이 2008. 7. 15.
[한국인 절반 이렇게 산다]“사회 전체가 비정규직 바다”
입력: 2008년 07월 14일 18:24:17
 
ㆍ시리즈를 시작하며

회사원 김영진씨(27·가명)는 비정규직 6년차다. 대학졸업 후 세 번 직장을 옮겼다. 모두
비정규직이다. 지금은 제조업체의 임원 비서실에서 일한다. 김씨는 “제가 하루에 만나는
비정규직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라고 묻고는 “사회 전체가 비정규직 바다예요”라고
자답했다.

14일 저녁 서울 종로3가 전철역에서 시민들이 퇴근길을 재촉하고 있다. 한국인의 절반가량
은 비정규직과 그 가족이라는 통계가 나올 만큼 비정규직이 늘었지만 대부분 고용불안과
차별, 저임금 등 3중고를 겪고 있다. <박민규기자>

지난 11일 오전 7시. 집을 나선 그가 가장 먼저 만난 아파트 경비원은 3교대로 24시간 근무
하는 파견직이다. 환갑을 넘긴 그는 며칠 전 고교생이 아파트 옥상 계단에서 담배 피우는
걸 보고 나무랐다가 학생 부모에게 “관리소에 얘기해 잘라버리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수심
에 차 있다.

곳곳에 차별의 ‘주홍글씨’
김씨는 회사 앞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음료수를 산 뒤 회사에 들어와 경비원
(2년 기간제 고용)과 목례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50대 청소원 아주머니(파견직)가
마른 걸레로 바닥을 정리하고 있었다. 곧이어 출근한 동료 직원 2명은 김씨와 같은 파견
업체 소속이다. 그중 한 명은 한 달 전 출산휴가를 간 정규직 대신 3개월간 근무하는 중
이다. 입사와 동시에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 시리즈 4·5면

화장실에서 만난 고객서비스팀 동료는 고객 불만을 접수하고, 신제품을 안내하는 파견직
이다. 그는 “회사가 인력파견업체를 재조정한다는 얘기가 있어 어수선하다”고 전했다.

점심시간 단골식당에서 만난 40대 아줌마와 커피전문점 직원은 일용직과 파트타임 근무자.
 김씨는 회사 비품을 사러 백화점에 들렀다. 안내데스크 직원과 판매사원은 파견직이고 택
배서비스 직원은 특수고용직이다. 임원의 개인업무차 은행에 간 김씨는 직원들과 손인사를
 하고 VIP룸으로 직행한다. 2년째 이 은행을 들르는 김씨는 소수의 정규직과 다수의 비정규
직 텔러를 한눈에 구분할 수 있다.

오후 7시 운전기사(파견직)에게 임원 퇴근을 전하며 일과를 끝낸 김씨는 영어학원에 갈
참이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온 인텔리 영어강사는 특수고용직이다. 퇴근 전 잠시 인터넷
채용 사이트에서 살핀 구인공고는 역시나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다. 비서행정학을 전공한
그는 성적이 좋았지만 전문성을 인정해주는 정규직 일자리는 잡지 못했다. 김씨는 정규직
의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은 감수하겠지만 비정규직에게만 유니폼을 입혀 구별하고, 명절에
주는 선물세트까지 일일이 차별하는 데 모멸감을 느낀다고 했다.

재계약 한달전 “피 말라요”

이 회사에서 일한 지 만 2년이 돼가는 김씨는 다시 ‘시험’에 들 차례다. 파견업체 소속인
그는 현행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라 파견계약직으로는 더 이상 일할 수 없다. 길은 세가지다.
회사가 정규직으로 전환해주든지, 회사가 김씨와 직접고용계약을 맺고 2년 더 쓰든지, 퇴사
하는 경우다. 재계약을 한 달 앞둔 지금 그는 “피가 마른다”고 했다.

비정규직. 정규직과 구별짓는 앞 글자 ‘비(非)’는 한숨과 절망의 상징어가 됐다. 빠져나오기
 쉽지 않은 인력시장의 주홍글씨가 된 지 오래다. 작년 한 해 최저임금(시급 3480원)도 받지
 못한 노동자의 94.4%는 비정규직이다. 똑같이 주 45시간을 일하지만 평균 월급은 124만원
으로 정규직의 절반이다. 정규직이 십중팔구 가입한 국민연금·건강보험 가입률도 30%대다.
‘직업 계층’ 사다리의 끝에 매달린 그들의 위기는 스스로 꿈을 접어가는 현실이다.

한국의 근로자 54% 차지

비정규직 시대다. 고용 불안과 사회적 차별, 저임금의 3중고에 신음하는 그들은 사회의
다수파다. 지난 3월 기준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분석한 비정규직 숫자는 858만명. 여기에
지난해 평균 가구원수(2.87명)를 대입하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비정규직 생활권’에 있다.
741만명인 정규직 규모를 훌쩍 넘어섰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30% 선이지만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율은 53~54%”라며 “한국처럼 비정규직화가 야만적으로 진행된 나라는 없다”고 말했다. 외환
위기 후 10년간 우리 사회 변화상의 정점에 비정규직이 매김되는 셈이다.

숫자는 많지만 그들의 존재감은 미약하다.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대)는 “비정규직은
 촛불집회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주변인)로 본다. 노동시간 결정권이 약하고
주말과 밤 시간대에 일이 더 몰리는 파트타임 인생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제정된 비정규
직법은 고용의 질이 낮은 파견·용역·파트타임직을 양산하며 이달부터 100~299인 기업까지
확대 적용된다. 정작 비정규직의 애환이 함축된 산업재해·하도급·외주화는 정부 통계에서도
 사각지대다. 최장기 농성 중인 기륭전자 비정규직 문제가 언론에 등장한 것은 ‘파업 1000일
’을 넘기고 서울시 축제에서 고공농성을 했을 때다.

“무능한 정치 탓” 난민 취급

비정규직은 이제 ‘민주주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정규직·회사·정부가 폭탄 돌리듯 방치
하는 사이 비정규직은 대물림되고 가족을 해체시키고 있다.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는 “정치는 외부의 충격이 있어도 내부의 약자를 보호할 수 있어

한다”며 “비정규직 문제를 보면 민주주의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짚는다.

그럼에도 비정규직의 노조조직률은 2.8%. 비정규직은 뭉치지도, 스스로를 대변하지도 못
한다. 대선·총선 때마다 대표적인 ‘계급 배반’ 투표층으로 분류될 정도다. 정치·사회적 음지
에 고립된 비정규직의 갈등이 위험수위까지 차올랐다는 뜻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대표는 “우리 사회는 비정규직이 다수이면서도 아직까지
 ‘예외적 상황’으로만 치부하고 있다. 무능한 정치 때문에 사회적 난민 취급을 받고 있다”
면서 “비정규직 문제는 단순히 일자리와 임금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본 의미를 되묻
게 한다”고 말했다.

<장은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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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비정규의 비교는 결국 돈과 직결된 것이다. 돈의 원천은 누구에게 있는가에 따라
잘잘못도 그 쪽에 편중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양심에 기대를 걸고 그
기대가 허물어 진다면 양심을 강제할 법을 손봐야 하고 법을 손봐야할 사람이 잘못되었
다면 그 사람을 손 볼 비정규직의 한표가 그 만큼 중요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