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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에 대한 생각

by 올곧이 2008. 3. 19.

졸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재벌이라는 내용에 공감을 보내면서 우리나라 재벌이 조금 더 좋은 쪽으로 변하길 바래본다.

출처 :
가시버시 (phshin) 02.29 00:04

http://hantoma.hani.co.kr/board/ht_economy:001010/189945

 

한국의 재벌은 일반적 의미의 “거대기업집단”과는 의미가 유사하면서도 그 특징은 다른 면이 있기 때문에 영어로 표현할 때 재벌 발음 그대로 “재벌”로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벌이 갖는 한국사회에서의 의미와 그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은 지난 IMF 때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IMF는 기본적으로 재벌들의 정경유착과 잘못된 기업 경영, 그리고 재벌들의 부도덕성으로 초래되어 한국에 엄청남 천문학적 경제손실, 약 500조 가 넘는 피해를 초래했다고 평가받는 것 외에도, 소수를 제외한 한국민 거의 대부분에게 심지어는 죽음을 초래하고 인생의 행로를 전혀 틀리게 가도록 할만큼 큰 충격을 안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재벌의 문제가 정권이 교체된 요즈음 새삼스럽게 부각되고 있는바, 재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경영정신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 

현재 한국의 재벌들은 대체로 군사정권의 저돌성과 결합한 정경유착을 기반으로, 한국인의 급한 성격에 어울리게 급성장함으로써, 자신들이 속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일정정도 부당한 부담을 주면서 몸집을 키워 왔었다. 이런 연유로 정치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사회 지배 질서를 돈으로 후원하고 지원한 오명을 남기는 부정적 인식을 스스로 초래한 측면도 있다.  

이에 대해 재벌들은 보통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늘어놓기 일쑤고,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 비난을 부당하다고 반박하기도 했었다. 보다 심각한 것은 여전히 과거에 비난받던 관행인 부의 세습을 편법과 반칙적 수법으로 자행하고 있고, 무조건적으로 때론 무모하리 만큼 돈이 된다 싶은 사업 아이템을 흡수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 집단의 거식증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흔히 미국의 거대 기업주들의 사회활동과 한국의 재벌 회장들의 사회활동을 비교할 때, 단적으로 사회참여가 미국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데 비해 한국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라고 하면서 한국 재벌 회장의 사회참여와 그 기여도는 거의 없다 시피 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즉 자기를 성공할 수 있도록 안아준 사회에 부를 일정하게 꼭 돌려주겠다는 의지로 사회활동을 하는 재벌 오너는 없는 것 같다. 부의 사회환원은 오너의 사회에 대한 적선 정도에 불과하지 자기 몸집에 어울리는 본격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활동하는 재벌은 없다는 것이다. 

부의 사회환원 측면에서 설립된 문화재단들은 오히려 부의 편법적인 세습을 위한 피난처로 악용되고 있다거나 아니면 원래의 취지와는 다른 문화사업 전문회사로 키우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무슨 사고때 자신들의 이름을 커다랗게 신문지면에 내서 기부하는 “성금” 식의 자선행위를 부의 사회환원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무슨 사고가 발생하면 너나 없이 수십억의 성금을 내는 재벌들의 행위는 도저히 정상적 기업활동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 많은 성금들은 모두 이사회 결의를 받고 집행하는 것인지 아니면 재벌 오너의 사재를 쾌척하는 것인지 구별하지 않고 있다.  

기업의 성금은 분명 또 하나 사회에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공과 사를 구분치 않는 기업들은 대부분 커다란 비자금을 조성하여 썩은 정치꾼들에게 바치는 정치자금의 집행에서 그 부도덕성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소위 재벌의 봉건시대나 통할“황제식 경영”이라는 비난을 초래하는 일단이며, 그 이면에는 한국 재벌의 초기 성장기에 지녔던 거지근성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보여진다. 

재벌 1세 오너들의 유년기는 대부분 가난을 극복하고 성공한 일화를 가지고 한국 사회에 꿈을 주는 모형으로 때론 평가된다. 그런데 가난했던 시절 오직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을 타파하고 성공하고자 앞만 쳐다보고 뛰는 헝그리정신으로 사업을 일구어서 커다란 기업군을 거느리는 회장이 되었을 때, 비록 그 사업은 재벌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컸지만 그 회장의 경영 마인드는 여전히 가난에 찌들은 거지근성을 떼어내지 못하는 게 대부분인 것 같다.  

엄청난 부자를 왜 거지라고 부르냐 하겠지만 사실은 열심히 뛴 헝그리 정신이야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좋은 근성일 수 있으나, 받기만 하고, 먹기만 하고, 집어넣기만 하는 가난했던 시절 몸에 지녔던 그 거지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기업 경영을 여전히 거지같은 행태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쓴다”는 철학은 없고, 여전히 굶주림에 지친 거지처럼 베풀 모르고 오직 움켜쥐기만 하는 포악한 거지 욕심으로 사회에 비추어지고 있는 자신들에 대한 평가를 재벌들은 자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정말 존경받는 부자라면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꿈이 될 수 있는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그 성장배경엔 어찌 됐든 수많은 한국인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회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게 사실 아닌가. 그 큰 재벌의 수많은 기업들을 거지가 물건 주고받듯이, 구멍가게 주고받듯이 편법적으로 넘겨준다니 누구와도 나누어 먹지 않는, 먹이 찾아 헤메는 거지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마인드를 크게 갖고, 글로벌화하는 시대엔 과거에나 통했던 속 좁은 반도적인 폐쇄적 정신 자세를 버리고, 그리고 5년 후에는 틀림없이 보수 정권이 들어서겠지 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하지 말기 바란다. 그러고도 어찌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대우받겠는가. 그러고도 어찌 사회로부터 왜 재벌을 무조건 부정적 시각으로만 보느냐고 항변할 수 있겠는가. 그 미치도록 천박한 거지근성을 한국의 재벌들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오늘도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한국 사회를 휘졌고 있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우선 기업가의 경영정신부터 고쳐야 한다. 

자신이 비록 일으켜 세운 기업이라 할지라도 그 기업은 사회에 환원되어야 할 사회적 공적 자산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기의 일정한 사재와 기업은 절대적으로 구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며,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인식을 가지고 정정당당하게 기업의 부를 상속시키거나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의무라는 것을 마음속에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공공의 적이 될 수 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엄혹한 압제 시절, 민주화되지 않은 사회에서는 그 사회와 적이 되든 말든 법이 아니라 권력이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문제화되지 않았겠지만, 이제는 그것이 안 통하는 한국 사회로 전환되고 있음을 직시하고 근본 경영철학을 바꾸어야만 사회에 존속 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비단 이런 거지근성은 한국사회에서 오직 재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매우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커다란 사회적 병리현상 이다. “복부인”, “졸부” 등의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의 거의 대부분의 행태는 돈은 많은 부자일지 모르나 그 정신 수준은 거지근성을 버리지 못한 찢어지도록 천박한 가난한 거지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한국 최고의 지성 사회인 대학의 이사장들이 함부로 교수를 해직시키는 전횡도 알고 보면 다 거지근성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거지에겐 토론이 필요 없다. 무조건 잘 먹기만 하면 최고지 무슨 수준 높은 토론이 왜 필요하겠는가. 이것을 재벌이 닮고 있다. 재벌의 경영은 이젠 디지털 시대에 맞게 대단한 수준의 경영 정신으로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라질 공룡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것을 오너들은 직시해야 한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것은 많은 투자를 이끄는 데 중요 요소일 뿐더러 기업 경영의 과학성과 선진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본다. 누가 거지에게 투자하겠는가. 그렇다면 더욱더 재벌오너의 지적 수준에 따라 좌우되는 기업이 아니라, 체계화되고 씨스템화된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거지같은 속물적 사회활동이 아니라 훌륭한 사회의 인격체로서 사회활동을 하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한단계 높은 성숙을 의미한다고도 보여진다. 너무나 먼 외로운 기업 오너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와 호흡하는 아름다운 기업가가 되려면 그 근본 정신부터 개혁해야 할 것이다.  

나름의 품격있는 철학을 지닌 보수주의자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처럼, 나름대로 사회와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재벌도 아름다울 수 있다. 재벌은 이제 한국 사회의 큰 구성원으로 자리잡고 있고, 또 그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바 사회에 대한 그 책무도 크게 자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