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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뉴스

임금삭감으로 일자리 나눠질까?

by 올곧이 2009. 3. 9.
 요즘 심심찮게 접하는 뉴스가 "일자리 나누기", "임금삭감", "고용창출" 등의 내용이다.
그러나 근로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이 알맹이 없는 방안들일뿐이고 상세히 뜯어보면 또다른 노사간의 폭탄을 제조하는 것 같아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노동자 측에서 보면 87년이 민주화 열기가 분출되었다고 하겠지만 반대쪽의 사용자 측에서 보면 분명 노동자 폭거이며 그동안 쌓아뒀던 사용자란 기득권을 빼앗긴 해였다고도 할 것이다.
 왜 지금이 노사간의 폭탄을 제조하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노사 양측이 합일점을 찾지않고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문제를 풀려고 시나리오를 제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용자측에서는 일자리 부족을 무기로 삼아 87년도 이전의 좋았던(?) 때를 되찾고 싶다는 생각인지 모르지만 기존의 임금을 깎아내리려는 생각만을 갖고 있고 일자리를 더 늘리려는 구체적인 방침이 없다. 딱 꼬집자면 일자리를 늘리려고 해도 일이 없는데 자리가 나올리 만무하지만... 
 그런 반면 노동자들은 눈물로 참아왔던 억압과 굴종을 87년도에야 제자리로 돌려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98년 IMF가 터지자 또다시 눈물을 머금고 임금을 삭감 당하거나 일자리를 떠났는데, 막상 IMF를 무사히 넘기고 회사의 여건이 좋아졌음에도 그동안 잃었던 것을 되찾을 수 없으니 "속았다"는 후회로 가슴앓이 했던 것인데 또다시 기약없는 희생만을 요구받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되갚아주겠거나 이제는 안 속는다고 다짐을 쌓는 형국이다.
 두렵다. 이 형국을 풀지 못하고 각자 한 쪽으로만 계속 진전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다행히 87년 이후 많은 날들에 노사관계가 그나마 대화를 하고 왔음에 극단적인 행동은 나오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자칫 서로의 바램이 균형을 잃을 때 87년도와 같은 사태가 없으리란 장담은 못할 것 같다.
이럴 때 일수록 서로의 주장보다는 듣는 귀를 더 쫑긋 세우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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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kbs.co.kr/article/economic/200903/20090308/1735594.html

이상한 일자리 나누기

<앵커 멘트>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여파로 고용 창출은 고사하고 있는 일자리도 지키기 힘든 게 요즘 현실입니다. 이 때문에 정부와 재계가 고용 안정을 위해서 일자리 나누기를 제안했지만 효과는 의문입니다. 바로 정책의 실효성과 노사 간 신뢰의 문젠데요. 정부가 제2의 금 모으기 운동이라며 국민적인 동참을 요구하는 일자리 나누기의 문제점을 생각해봤습니다.

 

<리포트>

현대자동차 울산공장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맞은편 골목길로 들어서자 작은 사무실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98 노란봉투 복직 투쟁위원회, 1998년 외환위기의 와중에서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노란 봉투에 담긴 해고 통지서를 받았던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입니다. 이들이 이른바 ‘노란봉투’라는 단체를 만들어 복직투쟁에 나서게 된 것은 2004년, 외환위기를 넘긴 현대자동차가 처음으로 신규채용을 하게 되면서 부터입니다.

 

2년내 경영이 정상화되면 자신들을 우선 채용하겠다던 해고 당시 약속을 회사가 지키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단식 농성 등 모든 것을 걸고 회사측과 싸웠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회사 측의 우선 고용 약속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입니다.

 

<인터뷰>최남국 (노란봉투 복직투쟁위원회 의장):"법적으로는 회사는 2년 내 고용을 약속했지 2년이 벗어난 시점 아닙니까 그러다 보니까 지금도 저희들 도의적 책임을 져라 대기업이니까 당신네들이 약속했던 이왕 신규 채용하려고 하면 과거에 퇴사시켰던 사람 강퇴시켰던 사람들을 받아달라는 뜻에서 저희들이 결성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오게 됐던 거죠."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현대자동차에서 길게는 15년 넘게 정규직으로 일을 했던 직원들이었지만 복직이 안 되는 바람에 지금은 현대자동차 협력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상규 (노란봉투 회원):"지금은 만약에 회사에서 나가라 그러면 죽어도 안 나가죠 제가 비정규직 다니고 있지만 지금 사내에서도 비정규직 일부 정리 해고가 진행이 되고 있거든요 진행되고 있는데 지금 만약에 비정규직 정리 해고 대상자가 된다면 솔직히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위로금을 합해도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을 받으면서도 희망 퇴직서를 썼던 이유는 회사 사정이 좋아지면 우선 고용하겠다는 회사의 말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아 자동차까지 인수한 현대자동차의 구조조정은 결국 노동자에게 희생을 떠안긴 셈이 됐습니다.

한때 126명까지 불어났던 회원들도 배신감속에 하나 둘 복직을 포기하고 떠나면서 이제는 불과 11명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인터뷰>이명기 (노란봉투 회원):"가장 마음 아플 땐 첫 째 남자가 가장이 고정 수입이 없고 들쭉날쭉하고 어린 애들은 아침에 철도 모르니까 엄마 돈 줘 엄마 뭐 사야 돼 그럴 때 미어지죠 그리고 애들 학교 가고 나면 어디 갈 때가 없단 말입니다."

 

외환위기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2009년, 환율은 치솟고 주가는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기업의 경영 여건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치는 상황. 당연히 고용에도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올 한해 4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면서 고용문제는 연초부터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정부가 고용안정을 위해 꺼낸 대책은 바로 일자리 나누기 운동이었습니다.

 

<인터뷰>이용걸 (기획재정부 2차관):"공공기관 대졸 초임 인하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추진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공공기관 대졸 초임 현황을 말씀드리면 현재 저희들이 파악한 116개 평균 보수는 2,928만 원으로써 민간기업 평균 보수에 비해 약 1.2배 수준입니다. 이런 297개 공공기관 대졸 초임을 앞으로 저희들이 한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 수준으로 하향 조정할 계획에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남은 돈으로 인턴 사원의 채용을 늘리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대기업들도 이런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한다며 대졸 초임을 깎겠다고 나섰습니다. 그 근거로 우리나라의 대졸자 초임이 일본보다 높다는 근거가 명확하지도 않은 자료까지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정병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대졸 초임 수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자 합니다. 기업별로 대졸 초임이 2천6백만 원 이상일 경우 경영 여건에 따라 최대 28%까지 삭감하는 한편 2천6백만 원 미만인 기업도 전반적인 하향 조정을 유도할 예정이다."

 

하지만, 근로자들, 특히 신입사원들의 고통을 전제로 한 이런 일자리 나누기 대책에 당연히 포함돼 있어야 할 내용은 없었습니다. 신입사원들의 삭감된 초임을 통해 몇 개의 일자리를 지켜내고 더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회사가 고통을 어떤 식으로 나눠질지에 대해서도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가는 대목입니다. 외환위기 당시 대량해고와 비정규직 양산이라는 가혹한 대가를 치른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로서는 이번 일자리 나누기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인터뷰>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노동자들은 IMF 경제 위기 때 일방적으로 고통을 전담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 노사정 사이의 신뢰가 쌓이지 않게 되는 원인은 IMF 경제 위기를 잘못 넘어섰다고 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번에 정부와 기업 측에서 어떠한 제안을 하더라도 그 진정성을 노동자들이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현실이죠."

 

지난해 11월 미국 CNN에 소개된 일본항공, 잘의 니시마츠 사장의 솔선수범하는 경영 철학은 그래서 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경영 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사장인 자신의 월급부터 깎고, 버스로 출퇴근하며 식사는 사원식당에서 해결합니다. 니시마츠 사장의 말이 아닌 이런 행동은 조기 퇴직자의 고통을 함께 느낄 필요가 있다는 그의 소신에서 비롯됐습니다. 대졸 사원의 초임부터 깎자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인터뷰>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지금 정부와 재계가 추진하고 있는 건 임금 삭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본래의 고용 창출과 일자리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자는 그런 취지에서 벗어나고 도리어 일자리 나누기의 올바른 취지를 악용하고 있는 그런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부와 대기업의 일자리 나누기를 바라보는 대학생들의 입장은 어떨까? 취업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니 만큼 임금을 깎아서라도 일자리를 더 만들자는 데는 공감하지만 한편으로는 불만도 적지 않은 눈칩니다.

 

<인터뷰>오승범 (대학교 3년):"일자리 나눈다는 취지는 참 좋은 거 같은데 너무 신입사원들에 대해서는 신입사원에 대한 역차별이라고도 생각됩니다."

 

<인터뷰>한상윤 (대학교 3년):"근본적으로 찬성하는 쪽은 아닌데 내가 취업하는 입장이라면 임금 내려간다는 것보다는 일자리 구해야한다는 생각이 더 강할 거 같아요."

 

임금 삭감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퇴직 등을 실시하면서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인턴제에 매달리고 있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20대의 가혹한 고용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 책을 낸 우석훈 박사는 정규직을 함부로 줄이는 것은 오히려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라고 말합니다.

 

<인터뷰>우석훈 (박사):"IMF는 V자형 커브라고 하는데 금방 내려갔다 금방 올라오는 경우였거든요 그럴 때에는 해고를 하더라도 금방 다시 좋아질 것이니까 금방 다시 고용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얘기를 많이 했었는데 지금의 경제 위기는 L자형이라고 보통 부르는데 이게 5년이 갈지 10년이 갈지 모르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일단 고용이나 이런 것들은 너무 급하게 서두를 게 아니고 좀 정규직 위주로 임금을 줄이더라도 노동시간 같은 것들과 일정한 연관 지으면서 사회 내의 숙련도를 높이는 형태로 가야 효과가 있거든요."

위생용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4조2교대의 근무형태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3조3교대로 일했지만 정리해고 대신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택하면서 교대 근무조가 하나 더 만들어진 것입니다.

당시는 경기침체와 과잉경쟁으로 기업 실적이 악화되면서 인력 감축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인터뷰>최남렬 (98년 당시 노조위원장/군포공장 생산설비지원부장):"20~30%만 가동이 되고 기계가 섰었어요 우리 회사도 구조조정이 시작되지 않겠는가 불안감이 올 때 우리 식구 중 일부는 떨어져 나가야 되지 않는가 그런 불안감 때문에 임금이 줄더라도 우리가 조를 하나 늘려서 일을 나누어 함으로써 우리 회사를 떠나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특근근무가 사라지면서 사실상 8%의 임금 하락이 있었지만 이를 감수했고 회사는 꾸준한 현장교육으로 생산성을 높였습니다.

성과는 놀라웠습니다.

2001년 재해율이 0%를 기록할 만큼 산업 안전도가 높아졌고 1인당 업무제안건수도 6건에서 11건으로 늘었습니다. 자연스레 시간당 노동생산성도두 배로 증가했고 매출 순이익은 125억 원에서 1168억으로 늘었습니다.

 

<인터뷰>송명식 (유한킴벌리 군포공장장):"제도를 만들고 그걸 리더들이 껴안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만 그걸 해 줘야만 그게 이제 커서 어떤 자생적인 조직으로 현장에서 아이디어도 내고 성과도 만들어내면서 세계 최고의 생산성, 회사는 존경 받는 기업으로 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일자리 나누기의 핵심은 노사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노동시간의 단축인데, 이를 감안하지 않은 채 불쑥 내놓은 대졸 사원 초임 삭감. 우선 일자리를 만들고 보자는 생각이 양질의 일자리 대신 비정규직 인턴사원만 늘어나고 소비 위축을 불러와 오히려 경기 회복에 독이 될지도 모르는 현실.

 

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고용정책이 실효성은 커녕, 신뢰마저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땝니다.

입력시간 : 2009.03.08 (22:32)

KBS [경제] 유승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