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일 월요일
아침 기온이 13도?
왜 이렇게 기온이 높은가 하고 시계를 봤더니 10시가 다 되어 간다.
'어쩐 일이래? 늦잠을 다 자고?' 혼잣말을 하면서 지난 밤 부터 무슨 일을 했나 복기를 해보니 늦잠의 원인은 영화를 본다고 잠을 늦게 자서 그랬는가 싶고, 습관적으로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잠이 좀 부족하여 두번째 잠을 잔 것 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8시에 깼으면서 또 잔 것은? 아무래도 피곤이 누적되었나 싶기도 하고...
암튼, 오늘 근무는 오후니까 자율신경이 알아서 늦잠을 자도록 했구나 싶다.
집에서 쉬는 날이면 일정도 계획을 세워서 변화를 주겠지만 일을 하면서는 그런 것이 많이 달라졌다.
주어진 시간에서 일터에서 소실되는 시간을 빼버리면 내가 설계하고 실행하는 일정이 그만큼 줄어들고 또, 나에게 보장된 시간도 일을 대입하면서는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는 것도 (크진 않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다. 가령 오후에 근무라고 하면 오전에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일은 삼가게 되는 것이 그런 것이다.
오늘도 한정된 범위에서 루틴한 일과를 시작한다.
고기밥을 챙겨주고, 베란다 화분상태를 점검하고 났더니 아내의 주문(?)이 들어 온다.
"오늘은 오랜만에 쌀국수 먹으러 갈까요?" ㅎㅎ
무슨 이벤트가 감춰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돈쓰는 외식주문이 있을 때면 으례 입맛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그마한 이유라도 숨겨져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이유를 묻기도 그렇고 항상 말없이 수긍의 자세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좋아!" 라고 짤막하게 대답을 한다. 오늘도 그런 식의 "좋아!"라는 말로 승낙을 하고는 씻기가 바쁘게 피부약을 바르고 집을 나섰다. 시간은 열한시를 지나고 있었다.
쌀국수 집은 우리집에서 걸으면 20여분 거리에 있는 베트남 부부가 운영하는 곳이다.
내가 쌀국수를 좋아하다 보니 아내가 찾아낸 맛집이기도 하지만, 서너번 같이 가서 먹어 보니 베트남 현지에서 먹어 본 정도는 아니지만 맛집으로 여겨도 좋은 가게임은 틀림없었다. 오랜만에 갔지만 서빙하는 젊은 여주인이 눈썰미가 탁월한지 우리를 기억하고는 조용한 자리를 내줬다. 우리는 주문을 넣었다. 쌀국수 2개, 분짜1개, 쌀국수 면 추가 1개. ㅎㅎ
역시 쌀국수는 부드러웠고 분짜는 소스가 맛깔나서 맛있게 먹었는데 추가로 시킨 면까지 들이키고 나니 배가 빵빵했다. '잘먹었다'는 인사를 건네고 계산을 하려니 오늘은 아내가 계산을 하겠단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가깝지만 배가 빵빵하고 출근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다.
'삼호다리를 건너가서 십리대밭을 끼고 걷다가 이예교를 건너와서 집으로 가자'고 얘기를 하고 걸으면서 아내에게 이벤트의 이유를 물었다. "오늘 왜 점심을 샀는데?" 하고 물으니 "화, 목요일 부려 먹으려면 이 정도는 대접해야죠" 라고 혼잣말 처럼 당당하게 얘기한다. ㅎㅎ
"내 그럴 줄 알았지! 뭔 일이 있는데?" 하고 추가 질문을 날렸다. 그랬더니 "화요일은 농수산물에 가서 김장거리를 사야하고, 목요일엔 김장을 담으려고..." 라며 말꼬리를 흐리면서 한마디 더한다. "미안해요. 일도 피곤할 텐데..."
그 소리를 듣고 나니 내가 더 미안했다.
'자기 혼자 먹을 것도 아니고 가족이 다 같이 먹을 반찬을 하려는데 뭐가 미안한지? 원!'
나를 동고동락하는 가족으로 생각을 안하고 손님으로 생각하나 싶기도 해서 섭섭한 생각도 들었지만 매사에 이러니 '이건 집안 풍습인가 보다' 하고 넘어간다. '러브스토리' 였던가? 어느 영화의 대사에서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야!" 라고...
내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이라고 하면 너무 범위가 좁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운 친구나 이웃이나 그런 친한 사람들에겐 미안함도, 고마움도 모두 품앗이 정도로 여기면서 당연한 것으로 알고 특별히 표현을 안하는데 반해 아내는 좀 다르다. 에전 부터도... 그래서, 하지마라거나 하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이해했다는 식으로 넘기고 있는데 나도 나의 응대가 바른지 틀리는지 모르겠다. 어쨌던 그랬다. ㅋㅋ
이예교를 건너오다 달력을 손에 쥐고 건너가는 한 아주머니가 보였다. (내년도 달력이겠지?)
"벌써 올 해도 다 갔구나! 이제 올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구나!" 라는 생각이 미치자 마음이 탁 내려 앉는다. "아~! "
그렇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신년은 지금 우리 곁에 살그머니 다가와서 어떤 희망찬 계획을 준비하고 있는지 빼곰히 고개를 디밀고 우리를 보고 있을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데 나는 어떤 스스로의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 볼 시기가 온 것 같다.
그리고, 그 전에 내려 놓아야 할 욕심들은 없는지도 살펴보고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오늘은 바닷갈매기 까지 올라와서 시끄러눈데도 태화강은 언제나 변함없이 유유하게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