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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쉬는 날? 241129

by 올곧이 2024. 11. 29.

11월29일 금요일

 

 쉬는 날이라 작정하고 이불에 붙어 있으려고 했는데...

그건 내 생각일 뿐! 몸은 스스로 움직이려고 안달이 나고 거기다가 아내는 일주일 먹거리를 사러 가자며 재촉을 한다. 시계를 보니 일곱시를 넘기고 있으니 6시간은 잔 것 같다. 건강에 필요한 잠은 일곱시는 자야 한다던데 어느 의사가 말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으니 정보라고도 말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래 그만 일어나자!"

 

 밖을 내다보니 바람이 쌩쌩분다.

주차장 위로 낙엽들이 술레잡기를 하다가는 갑자기 공중제비도 돌고 하루 종일 이것만 보고 있어도 심심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가야 한다는 의무감 (?) 때문에 고기 밥을 주고는 내 꼬라지가 어떤지 보고 싶어서 화장하러 들어가야겠다! 수십년을 한 아파트에만 살다보니 이젠 눈을 감고서도 스위치를 켤 수 있고 문을 여는 것도 한 손으로도 가능하다. ㅎㅎ

 

 기껏 5와트짜리 전구지만 내가 들어가면 희한하게 밝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도 모르는 후광이 나오는 것인가 하고 착각을 하면서도 그다지 나쁜 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게 다 너무 오래 산 탓에 생긴 뻔뻔증세의 일종이기도 하고 나 스스로 나를 위로하지 않으면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이 또 있겠나 싶어서 스스로를 치켜세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후광이 나온다면 그 빛 때문에 거울은 역광을 맞게 되어 내 얼굴은 안보여야 정상 아니겠나? 나이가 들면 이렇게 변해가는가 싶어서 혼자 웃어 본다. ㅋㅋ

 

 떡진 머리도 감고 얼굴에 보드라운 비누칠도 했더니 이제 지대로다.

그렇다고 원본이 괜찮으면야 설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봐도 씻었다는 것 밖에는 차이가 안나서 굳이 설명을 할 필요도 없고, 이 또한 나의 복이 아닐까 생각하니 세상이 다 내편인 것 같아 오늘도 즐겁기 시작한다.

 

 아내를 조수석에 앉히고 차를 출발시키려니 아내가 놀란 듯이 제안을 한다.

"참! 마트를 가기 전에 피부과 부터 가 봅시다?"

일터에서 예초작업을 하고 난 뒤부터 피부에 생겼던 벌레 물린 자국 같은 것이 벌써 한 달도 넘었지만 좋아지기는 커녕 이곳 저곳에 뾰루지가 더 생겨서 "병원에 가 볼까?" 라고 말을 했었는데 그게 기억이 났나보다. 사실은 나도 잊고 있었는데 말이 나온 김에 그러지고 하고 차를 피부과전문의원으로 돌렸다.

 

 내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는지 의사선생님은 오히려 태연한 분위기다.

밝은 후레쉬를 켜고 피부의 환부를 살피시더니 "일단은 피부에 자국이 가서 생긴 것은 맞는데 가렵다고 끍어서 다른 부위를 만지니 확산되는 것으로 보인다" 는 진단과 "빨리 좋아 져셔야지요!" 라면서 주사와 연고 그리고 3일치 경구약을 처방해 주신다. 결과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전혀 원인을 모르고 있을 때 보다는 훨씬 속시원한 기분이다.

 

 좋은 기분으로 마트에 가서 아내의 짐꾼으로 따라 다니다가 어판장에서 내 맘에 드는 것을 주문했다.

오늘 아침에 공수된 것이라는데 생대구를 부위별로 구성한  탕거리로 오늘 점심을 한번 더 속시원히 하고 싶어서였다. 현역 시절에 화봉동 인근에 있는 '생대구탕' 집을 자주 찾았었는데 그 이후 그런 맛집을 만날 수는 없어서 오늘은 아내의 솜씨를 한 번 빌려볼까 싶은 생각이다.

 

 역시! 생대구탕의 속시원한 맛이란? (물론 아내자랑으로 팔불출 소리는 듣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 그런걸...ㅋㅋ)

"바로 이 맛이야!" 를 외치기 바쁘게 오후의 임무가 하달되었다. "저 번에 하다가 덜 끝낸 그~ 모~ 뭐라노? 창문에 그~..."  

나는 단번에 알아 차렸다. "아! 모헤어 말이가?" 내가 빨리 알아차린 것은 절대 내 기억력 덕이 아니고 일을 하면서 마무리를 하지 못한 것에 그동안 미안함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임무는 저녁이 넘어가고 조명등을 켜고 후레쉬를 비추면서야 끝을 냈다.

그것도 딸래미 방 창문은 금기지역이라는 핑계를 대면서 끝내자고 합의를 봤다. 창틀을 올라갔다 내려서기도 하고, 이 연장으로 안되면 저 연장도 쓰고, 아래로 내려다 보면서 수그려(숙이다) 작업도 하고 치켜올려 보면서도 작업을 했더니 몸도 뻐근했지만 기존 모헤어에서 떨어지는 묵은 털과 먼지들도 장난이 아니었다. "언제 또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내가 못하겠다"고 선언을 해버릴 정도였다.

 

 그런데, 큰 일을 시켰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늘그막에 고생하는 모습이 가여웠는지 저녁(밥)은 특별했다.

점심으로 둘이 나눠 먹고 남았던 생대구탕과 내가 샤워를 하는 중에 주문을 했는지 중국집에서 배달된 팔보채에 군만두가 먹음직하게 차려져 있었다. "오늘은 피부약 때문에 술은 드시지 마세요!" 라는 경고가 붙긴 했지만 이게 어디냐? ㅎㅎ

 

 그래도, 한 잔 하고 싶어서 "딱 한 잔만" 하려다가 대범한 것 처럼 묵묵하게 술(숟가락)만 떴다.

그러면서 오늘을 복기해 보니 오늘은 쉬는 날이었는데 더 바빴네?! ㅎㅎㅎ

이것이 나의 인생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