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3일 수요일
사라질 뻔한 가을이 돌아왔다.
어디쯤 갔다가 온 지는 알 수 없지만 암튼 편안하고 순조롭지는 않았나 보다.
뜨기 싫은 눈을 비비며 베란다로 가서 밖을 내다 보니 젖었던 주차장 바닥에 가을이 하이에나 처럼 얼룩덜룩 펼처져 있다. 아마도 며칠 동안의 차가운 비바람에 밀려 아프리카 사파리까지 갔다온 모양이다. ㅎㅎ
하늘도 높고 새파랗다.
멀리 남암산과 문수산도 선명하고 강건너 남산은 나무줄기까지 보인다. "그래! 이게 가을이지!"
며칠 동안 비가 내리고 기온이 내려가서 가을이 실종된 것이 아닌가 걱정아닌 걱정을 한 것이 머쓱하고 마치 내가 제일 잘 아는 것 처럼 지인들에게 안부글 까지 보냈으니 참으로 민망할 뿐이다. 이렇게 내가 호들갑을 떨었던가 싶어서...ㅋㅋ
오늘은 아침 근무라서 얼굴을 씻고, 간식을 먹기가 바쁘게 일 터로 올라왔다.
9시부터 근무지만 9시 부터 운동장을 사용하겠다는 예약이 잡혀 있어서 주인된 입장으로써 손님들이 오기 전에 운동장 청소를 깨끗이 해 놓고 손님을 맞는 것이 작은 양심이 아닐까 싶어서...
다행히 어젯밤까지 비가 내려서인지 운동장은 비교적 깨끗했다.
그렇지만 어젯밤 10시 퇴근시간에도 학생 몇몇이 사용하고 있었으니 음료수 병과 과장봉지는 여지없이 흩어져 있었다. 일단 그것들을 정리한 뒤 화장실 청결상태를 둘러 보려고 가고 있는데 벌써 성안동 마을에서는 학생들의 조잘거림이 점점 시끄럽게 들린다. 호르라기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인솔자(선생님)가 학생들을 모으고 있는 듯 하고 오늘의 손님은 학생들이구나 하는 짐작이 간다. "빨리 정리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압박한다.
평소의 동작은 느리지만 한정된 시간이 주어졌을 경우는 번개같은 나의 특성을 발휘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빗자루와 세제를 풀어 놓은 바케쓰, 그리고, 쓰레받기, 타올(걸레), 실리콘 유리창 딲기를 정위치에 놓고는 쓰레기 통을 비우고 바닥 빗질부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대형거울의 물때까지 제거하고 나니 바쁜 듯이 애들이 운동장으로 몰려 든다. 하지만 아무 걱정없다. 역시나 나의 특성으로 임무는 제 때 완성했기 때문에...ㅋㅋ
이마엔 땀방울이 떨어질 듯 맺혔고 등줄기로는 땀이 줄줄 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허리를 펴고 이마에 땀을 훔치는데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하는 학생 몇몇이 화장실에 들어 왔다. "오냐! 인사 잘하네! 너는 어느학교 몇 학년이고?" 하고 물었더니 애들은 공부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는지 서로 경쟁하듯 대답을 한다. "우리는 성안초등학교 4학년" 이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묻지도 않는 말도 단어를 토해내듯 뿜고는 도망가듯 뛰쳐 나간다. 역시 애는 애다. 들어 올 땐 인사를 하더니 헤어질 때는 인사하는 것을 까먹었나 보다. ㅎㅎ
사무실로 돌아와 뜨거운 물에 믹스 커피를 타서 바깥으로 나왔다.
시원한 공기에 커피향이 묻어서 코가 호강을 하고 입맛이 돌았지만 커피를 한 모금 하기 전에 하늘을 봤다.
아침에는 새하얀 구름이 높게 깔려 있었지만 지금은 구름은 한 점도 보이지 않고 새파란 하늘만 밍밍하게 보인다. 그렇지만초록색 운동장에는 형형색색의 어린이들이 뛰어 놀고 있으니 하늘의 구름보다 더 아름답다. 꽃보다 단풍이 더 아름답듯이...
설탕이 거의 녹았을 것 같아 커피를 한 모금을 마셔 본다.
달콤한 커피 맛도 좋았지만 사그러질 뻔했던 내 희망도 커피향 처럼 폴폴 다시 피어 오른다.
올 가을에도 멀리는 가지 못하지만 배냇골을 타고 밀양댐으로 한바퀴 단풍구경은 할 수 있을 것 같은...
아마도 아내도 같은 희망을 품고 있을 듯 한 오늘은 기분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