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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감동시작 241001

by 올곧이 2024. 10. 1.

10월1일 화요일

 

찬란한 아침 해가 떴다.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던 안개가 햇빛에 놀란듯 움직이지 않고 멈칫해 있다.

까치가 날아 간 하늘을 배경으로 전깃줄도 햇빛을 받아 비단실 처럼  반짝이고 있다.

라디오에선 이문세씨의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않으리..."
이런 날에 가사를 썼었나 할 정도로 내가 보는 세상과 정말 맞아 떨어진다.

오늘은 좋은 날임엔 틀림없다.

 

 간단한 먹을거리로 건강을 채우고 일터로 향한다.

벌써 마니아들은 각자의 장소를 찾아서 운동 삼매경에 빠져있다.

운동장 한켠의 여러 기구들에는 메달리고, 돌리고, 휘젓고, 거꾸로 메달리고, 윗몸을 뉘였다 세웠다 하고 트랙을 도는 사람들은 뛰거나 걷거나 한다. 곁눈질로 인원수를 하나, 둘, 셋, 네... 세어보니 40명에 조금 모자란다.

열심인 모습이 너무 좋다.

 

 나도 청소부터 시작하려고 의관(ㅋㅋ)을 갖춘다.

투명비닐 장화를 신고, 하얀 실장갑을 끼고 그 위에 다시 하얀 고무장갑에 손가락을 하나씩 우겨 넣는다.

조끼 까지 걸치고 나면 비로소 기간제 일꾼이 되어 이 때부터는 공식업무에 돌입하는 것이다.

우선 트랙이나 구장 안에 버려져 있는 페트병, 빈깡통, 과장봉지 등...운동에 방해되는 것들 부터 치워야 하므로 한 손엔 커다란 옥외용 다목적 쓰레받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옥외청소용 집게를 들고 출발이다.

 

 시야를 조금씩 넓혀가며 화장실 앞 분리수거대를 향하던 중 조금은 먼거리인 주차장옆 소공원쪽에서 움직이는 어르신 한 분을 발견했는데 나와 같이 쓰레받기와 집게를 든 모습이다.

"오잉?!"

평소에 이런 모습을 보지 못했던 터라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지켜보기로 했다.

멀리서 봐도 쓰레받기는 주황색이 선명하고 광이 났으며 집게도 눈에 익은 새 것인 듯 한데 오늘 처음 나오셨나?

궁금증을 가지고 조금씩 가까이 다가 가면서 내 눈은 CCTV가 된 것 처럼 어르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

 

 점점 서로가 가까이 갈 수 밖에 없는 목적이라서 대화가 가능한 거리로 까지 좁혀졌다.

연세는 적게 잡아도 팔순은 훨씬 넘긴 것 같지만 옷차림이 살아을 적 우리 엄마 처럼 깨끗해서 한번 더 놀랐다.

연세 때문인지 쓰레기를 줍고 나서는 가끔은 주변의 나무나 벤치를 잡긴 했지만 안면이 밝았고 건강상태도 좋아 보였다. 그러면서 재활용 쓰레기 수집장에서 쓰레받기를 비우신다.

 

나는 이끌리듯 그 분에게 다가가서 존경의 인사를 했다.

"어르신 참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시는 분은 제가 처음  봅니다" 라고...

귀가 밝으신지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는데 그 대답이 어찌나 멋이 있던지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내가 공짜로 이용하는 곳인데, 다른 것은 못해도 이거 정도는 해야 안되겠나?!"

 

와! 감동이다!

이 어르신이 이 곳을 얼마나 찾고 또 몇 번 아니 몇 분동안이나 이용을 하신다고 이런 말씀을?

머리를 한 방 얻어 맞은 것 같은 생각에 올바른 해석을 하기 위해 우뇌를 움직여 본다.

 

 요즘 세상에 쓰레기를 버리고도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자기가 버린 쓰레기도 아니건만 마치 남이 버린 쓰레기마저도 자기가 버린 것 처럼 정리를 하면서도 저렇게 처연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남의 허물까지도 자기가 다 포용해 주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는 듯한 포용력? 희생정신?

"아! 역시나 존경스럽다!"

 

 그런데, 이걸 어째?

감동으로 생각이 들떠서 청소를 했는지 안했는지 조차 느끼지 못한 가운데 청소는 끝이 났다.

그런데, 사무실로 와서 비닐장화와 장갑들을  세탁하면서야 아차! 어르신의 존함과 연세가 어찌되는지 궁금했는데...

또, 언제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분은 사회에 귀감이고 후세들이 본 받아야할 말씀과 정신을 지녔기에 지자체에 표창이라도 상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내가 상신한다고 상을 주리란 것도 주제넘은 생각일 뿐이고 또, 저 어르신의 행동과 정신에는 표창따위란 오히려 자신과는 맞지 않다고 거절이나 오히려 불쾌해 하실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오늘 부터 시월이 시작되는데다 오늘은 국군의 날이라 뜻깊은 날이다.

일어나기 바쁘게 태극기를 창 밖에 내다 걸고 가슴에 손을 얹고 뭔가를 염원했는데 그 덕택 때문일까?

오늘은 시작부터 기분이 좋다.

 

남은 시간도 활기찬 일들로 보람이  많은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옮긴다.

 

태화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