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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상에 똑 같은 것은 없다 240925

by 올곧이 2024. 9. 25.

9월25일 수요일

 

 이제 긴팔을 입은 사람들이 늘어 간다. 

낮에는 조금 더운 것 같았는데 저녁에 나가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긴소매 옷을 걸치고 있다.

하긴 이제 입동도 한달 열흘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올 해 가을은 너무 짧다고 생각된다.

아직 가을이 가시지 않았는데 이런 글을 남기는게 좀 그렇지만 왠지 가을을 도둑맞는 그런 기분이 들려고 한다.

 

 오늘은 쉬는 날이어서 집에 일을 좀 해보려고 했지만 망설여지더라니...ㅎㅎ

어제 일이 생각났다.

아침 근무를 나가기 전에 수족관을 청소하려고 시작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저녁 식사시간에 짬을 내어 다시 마감하려고 하는데 먼저 아내가 부탁을 했다. "여보! 에어컨 전원 플러그가 안빠져요!"

그러고 보니 이제 날씨가 선선하여 에어컨을 더이상 켤 필요가 없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왜 플러그가 안빠졌는지는 자초지종을 들어야만 했다. 그저 당기면 뽑히는 플러근데...

 

역시나 아내의 말도 "그냥 당기면 뽑힐줄 알았는데 콘센트가 흔들거릴 정도로 힘을 줘도 뽑히지 않는다"고...

아내의 힘으로는 버거웠나 하는 생각으로 "까지꺼" 하면서 분리를 시도했지만 너무 뻑뻑해서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 억지로 비틀어 가면서 분리를 시키려고 힘을 주는데 결국은 플러그가 부러지면서 "퍽!" 하고 불꽃이 튀면서 차단기도 내려갔다. 나보다도 아내가 더 놀랐지만 정신을 차리고서 전원선을 분리한 뒤 차단기를 올리고 응급조치만 해두었다.

 

 그래서, 오늘은 수족관 청소도 해야 하고 전원 콘센트도 연결해 줘야한다.

우선 청소기를 충전하려면 수족관 청소 보다는 콘센트 복구가 급하다고 생각해서 자전거를 타고 전기재료상을 찾기로 했다. 동네에 인테리어 가게도 있고 철물점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정품을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어 다운동 까지 훑으며 갔지만 전문점이 안보이다가 끝머리 쯤 가니까 조명 기구와 전기공사 재료를 파는 가게가 나왔다.

다행히 찾는 물건이 있어서 매립형 2구 콘센트 하나와 플러그 2개를 6천원에 구입하여 태화강을 따라 내려 왔다.

 

 삼호다리를 지나서 내려오니 강변이 깨끗하게 예초기로 다듬어진 것이 보였다. 

여러 종류의 잡초들이 섞여서 키가 들쭉 날쭉하고 보기가 좀 지저분 까지는 안되었지만 좀 말끔하진 않았는데 깔끔하게 다듬어 진 것을 보니 조지훈님의 승무에 나오는 싯구절이 생각났다.

 

승무  /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시의 내용과는 거리가 멀지만 너무나 깔끔한 풍경! 참 질서정연하고 보기가 좋았다.

그런데, 그 중에 볼그스럼한 것이 쏘옥 올라온 것이 있어서 뭔가 다가가 봤더니 소리쟁이가 다시 키를 키우려고 올라 온 것이었다. 깔끔한 풍경에 흠집이 생긴 것 처럼 그렇지는 않았고 오히려 신기해서 다가가 볼 정도였지만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땅에 똑같이 정리를 했지만 결국 같을 수는 없는 것이구나! 풀 이름도 다르고 또는 같은 풀이어도 먼저 자라는 놈도 있고 늦게 자라거나 아예 못 올라오는 놈도 있으니 세상에 똑 같은 것은 없구나!" 하는 생각...

 

 그에 반해 인간은 항상 내가 모자란다거나 내가 더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거만해 지거나 불만을 가지고 사는데?

이 세상에 인간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동물과 식물 등 수 많은 것들이 존재를 하는데 왜? 인간만이 평등과 차별을 따지며 불편하게 살아가는지? 나 또한 왜 그런 존재에 섞여 있는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내내 그런 질문을 해댔다.

하물며 내 조그만 머리에 난 잔털 조차도 같은 크기가 아니고 굵거나 얇고 또 길거나 짧으며 또 하얗게 센 놈도 있지만 아직 까맣게 변하지 않은 놈이 있는데? 하면서...

 

 어쨋거나 집에 와서 전기 고치는 일에 몰두하면서 제대로 모르는 것이 있는 것은 전화로 전기를 업으로 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했는데 어느 새 저녁시간이 되었다. 물론 나도 전직 보전을 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졌지만 우리 아파트는 전기배선 도면이 없어서 전문가들 마저 시행착오를 종종 일으키는 것을 감안하면 평균점수는 받을만 했다. ㅎㅎ

 

 별 것 아니었는데도 아내는 특식을 준비해서 내 놓았다.

실력은 없지만 노력하는 것이 기특(?)해 보였는지 낙지가 들어간 해물찜을 시켜줬다.ㅎㅎ 

맛있게 저녁을 먹으면서도 머리에 떠오른 것은 아내의 특식도 아니고 골치아픈 전기공사도 아닌 『세상에 모든 것은 같은 것이 없으니 비교하면서 불만을 갖거나, 비교하면서 자만에 빠지지는 말자』는 생각이었다.

어쨋거나 하루가 보람으로 끝났다. 모두 굿밤이기를...

 

태화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