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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석의 기억 240916

by 올곧이 2024. 9. 16.

9월16일 월요일

비가 나린다.
잠시 잠시 흩뿌리나 싶었던 새벽비는 이젠 제법 빗줄기를 세우면서 내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내일이 추석이라서 그런지 운동장은 한적할 정도로 운도ㅇ마니아들만 트랙을 돌거나 운동기구에 올라 몸을 다듬고 있다. 이 사람들은 내리는 비를 오히려 즐기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열대야가 있을 정도로 대기 온도가 높아서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이 시간이면 땡볕과 싸워야 할 것인데 비가 내리고 있으니 운동을 하면서도 시원한 샤워를 상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제사 아침 청소를 끝내고 사무실(나의 쉼터)로 들어와서 에어컨을 켜고 땀을 식히면서 아내가 준비해 준 오미자 청을 물에 타서 마시며 컴퓨터를 켰다. 안부를 쓰기 전에 휴대폰을 보니 추석인사를 보낸 몇몇이 보인다. 안부문자는 어제가 피크여서 그런지 오늘은 열손가락을 다 펴지 않아도 될 만큼 숫자가 미미하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나도 까먹을 법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지금에야 느끼고 늦어서 죄송하지만 지금 문자를 보냈다.

 어제 동료에게 들은 얘긴데 이 번 추석에도 근무를 할 뻔 했는데 계약이 끝난 사람과 지금 같이 근무하는 동료가 지난 명절에 근무를 할 수 있겠냐는 공단의 권유에 단호하게 쉬어야겠다고 강변하는 바람에 그 때부터 명절 당일 날은 휴무로 결정했다고 한다. 어찌보면 명절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추석을 같이할 사정이 못되는 나에게 물었다면 아마 근무를 원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명절(名節)이란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해마다 일정하게 지키어 즐기거나 기념하는 축일을 일컫는 말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우리나라엔 양력 명절과 음력 명절이 있는데 예로 부터는 농경민족의 전통으로 거의 매달 명절이 있었지만 을미개혁,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과 그 기간 사이의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명절들이 이름만 남거나 사라져 버리고, 오늘날에는 해가 바뀌는 양력 새해와 음력 설날과 추석만이 국가지정 공휴일로 쉬는 전통적인 명절로 남아있고 북한에는 설과 추석 외에 정월 대보름과 청명도 아직 휴일로 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나라 사정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허례허식을 없애자며 해가 바뀌는 양력 새해와 음력 설날 중 새해를 명절로 하고 설날은 전통적인 것이라서 없애지는 못하고 쉬는 날짜를 줄이자는 정부지침이 있었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내수경기가 어렵게 되자 경기를 살리자는 취지로 설날도 명절로 다시 부활시키자는 정부지침이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솔직히 명절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는 듯이 생각되기도 하지만 "뭣이 중헌디?" 
무식한 내가 생각할 때는 정부지침도 무시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정작 이 나라를 구성하는 민초들이 중하게 여긴다면 3.1절이면 어떻고 광복절이면 명절이 못 될 것은 아니지 않는가 싶다. ㅎㅎ

 뭐니뭐니 해도 기억에 남는 일은 어릴 때 겪었던 추억이다.

지금은 도시계획에 따라 옮겨지고 없지만 이 맘 때 쯤이면 동해남부선이 동천강을 가로지르는 철교의 우리동네(산전쪽) 철로변에는 병영(지금의 남외동) 애들과 우리동네 애들이 거의 다 모인다. 어르신들께 받은 추석 선물을 자랑하기도 하고 새로 산 옷 또는 때때옷을 입고 맘껏 뽐내기도 하고, 새로 산 장난감 품평회도 하고...

 요즘이야 아이쇼핑을 백화점에서 하지만 그 때는 그런 곳이 없었기에 명절이면 이곳이 백화점이 아니었었나 싶기도 하다. 잘 사는 집 애들은 패션쇼를 하려고 나오고 나와 처지가 비슷한 집 애들은 패션쇼를 보려고, 또는 신 문물을 보려고 나왔으니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다 모였지 않았을까?

헌데, 지난 시절을 가만히 돌아보면 분명 조금은 챙피했기도 했을 것도 같은데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고 즐거웠기만 했으니 나도 참! 그 때 부터 뻔뻔함을 배우지 않았나 싶어 웃음이 나온다. 이제 그럴 일도 없겠지만...

 그래도 하나는 분명하게 기억난다.
뽐낼게 하나도 없었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용기는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어쩌면 죽거나 크게 다칠 수 있는 행동을 연출했다.

상방쯤에 달려오는 기차가 무섭다고 다들 피하는 와중에 나는 저 철교를 건너 보이겠다며 기차가 오는 방향으로 냅다 뛰어 건너는데 기차가 빨랐는지 내 달음박질이 늦었는지는 모르지만 진장쪽에 기차의 앞머리가 보이자 나는 철교를 건너는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동천강 모래바닥으로 뛰어 내렸다. 착지하는 순간 무릎으로 가슴을 쳐서 숨도 쉬지 못하고 한참동안 꼼짝을 못하고 앉아 있었던 생각이 떠오르니 지금도 숨이 콱 멈춰진 듯 답답하고 심한 통증이 느껴 진다. 참 바보같은 짓을 그 때도 했고 지금도 가끔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하고는 있지만 그 때 이후 달라진 것도 없잖아 있다. 나이 많은 형들도 함부로 나를 건드리지 않았으니... ㅎㅎ 


 명절을 한 두번도 아니고 근 70여번을 겪었지만 왜 아름다운 기억이 이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지? ㅎ
세상을 잘 살아서 그런지? 아니면 그럴 수 밖에 없는 내 인생살이가 화려(?)한 것인지? 참?!

암튼 오늘은 추석 전날이라 친지들이 다 모이는 그런 기억을 떠올리면 좋았겠는데 두뇌회전이 부족한지 아직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직도 비는 끊김없이 내려오는 추석 전날에 근무를 서면서 내일은 풍성한 달이라도 볼 수 있게 해 주십사고 빌어 본다.


모두가 행복한 추석명절이 되기를 ...
 
태화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