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월요일
월요일 아침 오늘은 기온이 어제보다 약간 올라서 3도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늘은 아직 엷은 흰구름으로 가려져 있고, 햇살이 완전하지 않아서 추울 것만 같습니다.
바람은 불지 않지만 아파트를 빠져나가는 출근족들의 모습은 빈틈없이 꽁꽁 싼 style 입니다.
오늘은 12월의 첫 월요일인데 늦잠을 자고 말았네요.
피곤하여 잠이 왔지만 16강 생각에 폴란드와 프랑스전을 보느라 진을 뺐나 봅니다.
온전한 머리는 아니지만 아직도 꿈속에 있는 듯이 꿈에 본 잔상들로 가득합니다.
열린 창을 통해 보이는 넓은 밭 끝에는 푸른 물이 가득한 호수가 보이고, 그 호수 위로는 머리에 닿을 듯 말 듯한 높이의 하얀 경계의 짙은 파란구름이 같은 크기로 수평으로 늘어져 촐랑거리고 있었습니다.
반쯤 꿈이 깨었다고 생각되었지만 그 풍경이? 그 하늘이 너무 특이해서 다시 잠을 다시 청해 봤지만 불발에 그쳤네요. ㅎㅎ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진파랑에 하얀색 에나멜을 사용해야 할 듯 하지만 그 제어된 출렁거림은 재현이 안될 것 같네요!
참! 특이한 장면이었는고 재현할 방법은 없는 이 때 '일장춘몽'이란 단어가 생각나서 유래를 찾아 봤습니다.
일장춘몽 (한 일一, 마당 장場, 봄 춘春, 꿈 몽夢)
즉, '한 낱 봄에 꾼 꿈 같다'는 것으로 부질없다는 뜻일 것 같은데 해석 또한 여러가지가 있네요.
박찬욱 감독은 영화로도 만들었을 정도로 예사롭지 않음에 공감하고 오늘은 '신동열의 고사성어'를 빌릴까 합니다.
『소동파(蘇東坡)는 송나라 최고의 문장가다.
“독서가 만 권에 달해도 율(律·왕안석의 신법을 지칭)은 읽지 않는다”고 해 초유의 필화사건을 일으킨 타고난 자유인이다. 그의 《적벽부(赤壁賦)》는 중국 문학 불후의 명작이다.
자신은 문장의 최고봉이면서 “인생은 글자를 알 때부터 우환이 시작된다(人生識字憂患始)”는 그의 말 또한 아이러니다.
하기야 그 스스로가 문자로 인해 큰 우환을 겪었으니 ‘식자우환(識字憂患)’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가 해남 창화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큰 표주박 하나 메고 콧노래 부르며 산책을 하다 70대 노파를 만났다.
노파는 소동파의 초췌한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문장으로 당대 천하를 놀라게 한 그가 초라한 몰골로 시골길을 걷는 것을 보면서 인생무상이 느껴졌다.
노파가 말했다. “지난날의 부귀영화는 그저 한바탕 꿈에 지나지 않는구려(一場春夢).” 소동파가 태연히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참으로 맞습니다.” 북송의 조령치가 지은 《후청록》에 전해오는 이야기다.
일장춘몽(一場春夢)은 여름이 오기 전에 사그라지는 ‘한바탕의 봄 꿈’이다.
덧없이 왔다 덧없이 가는 봄 한철의 아지랑이 같은 꿈이다.
당나라 한단에서 노씨 성을 가진 서생이 도사 여옹의 베개를 빌려 잠깐 눈을 붙인 사이에 부귀영화 꿈을 꾸었다는 한단지몽(邯鄲之夢), 노생지몽(盧生之夢)도 뜻이 같다.
부귀영화라는 게 부질없고 덧없는 것이니 애타게 매달리지 말라는 거다.
허무주의자는 모든 게 덧없다고 생각한다.
비관주의자는 안 될 거라고 염려하고, 낙관주의자는 잘될 거라 믿는다.
세상은 믿음대로, 생각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믿음의 방향, 생각의 방향으로는 펼쳐진다.
삶을 일장춘몽으로 생각하면 당신의 꿈은 여름까지도 가지 못한다.
일장춘몽을 ‘한바탕 꿈’이 아닌 ‘인생의 꿈’으로 바꿔봐라.
그럼 그 꿈은 끝이 아닌 시작이 되고, 속이 영근 꿈이 된다.』
출처: https://sgsg.hankyung.com/article/2019062861681
역시 그렇네요.
지나가 버린 좋은 것! 다시 이뤄지지 않는 것! 그렇지만 이루고픈 것! 햐~ 방법이 없네요!
이런 아쉬움은 아마도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많아 질 것 같고, 부질없는 일이란 것은 분명할 텐지만...
힘찬 월요일 아침에 보내는 안부로는 조금 나약한 기분이 들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낙관주의자로 삽시다.
그러니, '한바탕 꿈이 아닌 인생의 꿈'으로 승화 시킬 그 무엇을 찾으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 ㅎㅎㅎ
자~ 출발해 봅시다. 힘차게....'화이팅!' 을 외치고...
태화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