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신도시 폐가 / 홍성철
무너진 지붕 한쪽 황톳빛 처연하다
셈평 펴인 주인은 도시 생활 흔전대고
쫓겨난 길고양이가 새끼 낳고 사는 곳
잡초 마당 한구석 널브러진 경운기는
식구들 건사하다 삭아버린 가장이다
내 건너 아파트 숲을 미워하다 누웠고
신도시가 마뜩잖은 늙은 감나무는
올해도 주렁주렁 옛날 얘기하는데
울 밖의 두꺼비들이 새집 달라 보챈다
차상
미생은 어느날 /김미영
사직을 권하는 척, 형체 없는 날 선 톱에
피 한 방울 없이 자리 하나가 잘려졌다
던져진 그녀의 이름표만 쓸쓸히 웃는데
정리된 사물함엔 빛바랜 유니폼
얼룩진 손거울이 동그마니 마주하고
마지막 ‘수고하세요’만 종일토록 붉은데
모퉁이에 밀려난 텅 빈 책상을 보며
내게도 올 불안에 내게는 안 온 다행에
내 쉬는 한숨의 정체, 밥벌이의 이 무게
차하
김장 /윤영화
절임이란, 잊고 산 걸 한 통 꺼내 간 보는 것
흙에 묻힌 엄니 생각 뽑아 들고 헹구다가
눈물 그, 노란 속잎에 그리움을 칠하는 것
초대시조
오늘은 처음이니까 /김보람
오늘을 늘어놓고 오늘을 기다린다
오늘을 쓰는 내겐 오늘이 처음이니까
이름은 잘 있습니까? 이런 질문 이런 밤
어떤 손이 나타나 얼굴을 더듬는다
무엇이 되는지 알 수가 없다
하루를 앞질러 걸어와 기울어지는 첫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