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5일 화요일
어제는 서당에 다녀오는 차안에서 방송을 들었는데 초콜릿을 받는 "발렌타인데이"라고 하더군요.
현역 때만 하더라도 적잖은 초콜릿이 책상위에 쌓였었는데 이제는 책상도 없지만 줄 사람도 없네요.
그래서 추억은 즐겁고도 아쉬운가 봅니다.
오늘은 혹시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아마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당연히 아실 것 같은 "정월 대보름" 날이네요.
단순히 보름이라면 매월 한번씩 달이 차는 만월(滿月)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대보름은 큰명절입니다.
그래서, 정월대보름과 팔월대보름에는 조상님께 "잘 보살펴주이소" 라거나 감사하다는 제사까지 지내지요.
어릴 적 추억을 더듬어 보면 정월대보름엔 제삿밥 먹기가 바쁘게 사리채반을 들고 오곡밥을 얻으러 나갑니다.
(이집 저집 얻어 온 밥에는 그집의 속사정이 묻어 있어서 어르신끼리 전하는 안부의 기초자료가 되기도 했지요)
그런 다음엔 저녁에 있을 쥐불놀이를 준비하느라 깡통을 구해다가 구멍을 뚫고 화력좋은 나무를 구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내고향이라서 그렇겠지만 산전(동네이름)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네 인심도 좋았지만 동천강이 동네 앞에 있어서 강둑에 나가면 불낼 염려도 없이 실컷 쥐불놀이를 할 수 있었고,
동해남부선 철로가 가까이 있어서 기름묻은 침목 부스러기로 쥐불을 붙이면 그야말로 화력 하나는 끝내줬지요.
삐삐선(전화선)에 묶인 깡통을 휙휙 돌릴 때마다 쥐불은 사자처럼 점점 커지면서 확확 소리를 내지르고...
냅다! 하늘을 향해 불붙은 깡통을 던지면 로켓처럼 불이 오르다가 수많은 불씨들이 별처럼 쏟아지는...
아! 할 수만 있다면 지금도 해보고 싶은데...
그리고, 대보름답게 먹을거리도 고급졌고 풍류도 대단했다고 생각됩니다.
아침 오곡밥은 기본이고, 이런 저런 고급진 나물에다 귀밝이 술, 피부 보호한다며 부럼도 먹었는가 하면,
해가 저만치 중천에 오를라치면 동네 저 끝머리 부터 시작하여 점점 다가오는 징소리, 장구소리, 북소리...
허리춤엔 꿩 두어마리를 차고 나무 꿩총을 어깨에 올린 어르신을 필두로 지신을 밟는다며 집집마다 돌면서,
심지어 하늘에 가까운 만당집인 우리집 까지 올라와서 "캥작캥작" 잘도 놀아 주셨던....
아! 그 분들은 지금, 어느 동네에서 노실런지 지금도 아련합니다. 네~ㅎㅎ
오늘은 정월대보름을 맞아서 하나 둘 추억의 책장을 넘겨보니 아침이 매우 즐겁네요.
이 기분 종일토록 가져 갔으면 싶은데 이의 없지요? 남은 시간도 재밌게 보내시기를...
태화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