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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두려움에 대하여(펌)

by 올곧이 2008. 6. 9.

우리는 항상 뭔가를 두려워합니다. 두려운 감정은 여러 가지 원인들로 생겨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두려움이 있고, 개인에 따라 두려워 하는 것이 다르기도 합니다.

누구나 느끼는 두려움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 죽음직전에 어쩌면 맞게 될 고통과 괴로움, 사랑하는 많은 것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 등으로 인해 죽음은 두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죽음을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신이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죽음이란 떠올려 봤자 괜히 기분만 상할 뿐이고 괜한 두려움만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친한 친구가 아니면 부모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게 되면, 자신이 그동안 숨겨왔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고개를 쳐듭니다. 그때 자신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갑작스럽게 공포감은 밀려오고, 자신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없어져 버린다는 소멸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어떤 이는 이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건강염려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갑작스럽게 여기 저기 아픈 것 같고, 자신이 중병에 걸린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종합병원을 돌아다니면서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한 군데서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더라도, 그 결과를 믿지 않고 다른 병원에서 또 검진을 받습니다.

한동안 여기 저기 아픈 증세는 없어졌다가도 새로운 증세가 또 생겨나기도 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직면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병원을 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흔히 겪는 두려움에는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나 친하지 않은 사람과 대면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마음 편한 일은 아닙니다.

특히 대인관계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은 친하지 않은 사람과 식사라도 하게 되면 그 두려움은 상당히 높아집니다. 식사를 하면서도 손을 떨기도 하고, 가슴은 두근거립니다. 또한 괜히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고, 혹시 낯선 사람 앞에서 글씨라도 쓰는 일이 생기면 손이 떨려 글씨조차 제대로 써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것을 기피하게 되고,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이는 남들 앞에서 자신이 실수하지 않을까, 혹시 자신이 긴장하는 걸 상대방이 알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대개 이런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과거에 남들 앞에서 실수를 했던 기억이 그대로 남아있어, 그 기억효과로 인해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흔히 겪게 되는 두려움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나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을 한 경우, 새로운 분야로 직업을 바꾼 경우 등입니다. 또한 고등학생들의 경우는 대학입시가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그들을 고등학교 3년 내내 괴롭힙니다. 대학이나 고등학교를 졸업해서는 직장을 얻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또 있습니다.

내가 제대로 사회생활을 할 수 나 있는 것일까? 내가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서 업무를 제대로 해나갈 수 있을까? 등등입니다.

 

이런 보편적인 두려움이 있는 반면에 개인마다 약간씩 다른 두려움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높은 곳에 올라가지 못하고, 어떤 이는 폐쇄공포증으로 인해 엘리베이터 타기도 겁을 냅니다. 어떤 이는 강박증으로 인해 자신에게 더러운 것이 묻지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외출하는 걸 꺼리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런데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그것이 지나칠 때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쉽게 지쳐버리고, 포기하게 만드는 것은 두려운 감정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 수험생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많은 수험생들은 사실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정신적인 에너지를 낭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상에는 앉아 있지만 항상 머릿속에는 대학입시에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으로 인해 좀체 공부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산란하기만 하고, 성적은 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더욱 더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더욱 공부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되고, 그 두려움에 대한 피로감으로 나중에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집니다. 그냥 입시고 뭐고 빨리 시험이나 치르고 이런 고통스런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라게 됩니다.

 

다른 예로는 암으로 투병하는 환자입니다.

일단 암 선고를 받게 되면 누구나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임박해 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때 자신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심한 환자의 경우 투병생활은 하루 하루가 지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검사수치가 나빠져도, 유난히 피로감이 많이 와도, 몸에 조그만 이상이 생기기만 해도 덜컥 겁이 납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제 죽었구나 하고 단정해 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게 되면 잃게 될 모든 것들이 떠오릅니다. 자신이 죽기직전 어떤 고통을 받을까 겁부터 납니다. 이런 두려움이 투병의지를 꺽어 버립니다.

이런 마음고생이 싫어 빨리 죽음이 다가왔으면 하고 바라기도 합니다.

 그 두려운 감정이 바로 피를 말리게 하는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두려운 감정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런 감정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도 두려운 감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두려움 감정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요?

이는 내가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거나,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을 해야 할 때, 내게 힘든 상황이 임박했을 때 두려운 감정은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 두려움 감정이 없었다면, 우리는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원시인류는 이 두려운 감정으로 세대를 이어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이 당할 수 없는 맹수 앞에서, 또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을 당해서, 아니면 같은 인류의 공격에 임박해서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두려움이 없었다면 인류는 무모하게 자신의 목숨을 걸다가 멸종했을 지도 모릅니다.

이 두려움이 바로 우리 인류에게 사방이 지뢰밭처럼 널려있는 위험에서 인류를 구한 감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자신에게 닥칠 위험이나 어려움에서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지시를 내려서 미리 대비하거나 도주 함으로서 생존할 수 있게 만든 겁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인류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어떤 것에 익숙해질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자동차 학원에 가서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아 보게 되면 일단 겁부터 납니다. 그래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고, 앞으로 나가는 것도 힘이 듭니다. 그리고 꼭 부딪칠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운전면허를 땄다고 하더라도 시내주행을 나가면 두려움은 더 커집니다. 일단 차를 끌고 도로에 나가면 다른 차들은 내 운전 실력에 아랑곳 하지 않고  옆으로 씽씽 달리고 좀체 양보도 해주지 않습니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다른 차를 추돌할 것만 같고, 차선 변경하나 하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러다가 몇 달 지나고 나면 이제 운전은 내 수족을 움직이는 것처럼 쉬운 일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처음에는 두려웠던 일들이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 두려웠던 것이 즐거움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제 느긋하게 운전대를 잡고 교외의 한적한 도로를 달리며 드라이브를 만끽하게 되니 말입니다.

 

이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자꾸 그 상황에 몰입해서 그 상황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두려움이 너무 심해서 운전을 배우다가 그만두었다면, 그 사람은 평생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 있게 됐을 겁니다.

여기서 두려움은 이 초보운전자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만약 두려움이 없었다면 운전실력도 없는 사람이 과속으로 도로를 달리다가 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두려움이란 두려운 상황에 자신이 직면할 수 있어야 해결된다는 것이며 두려움은 자신을

보호해주기도 한다는 겁니다. 

 

두려움이 느껴질 때 대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크게 2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타입은 자신의 두려움이 없어질 때까지 기다려 보겠다고 마음을 먹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대인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작정 이 두려움이 없어질 때 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그냥 언젠가 두려움이 없어지면 그때 직업을 구하거나, 친구를 사귄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타입은 그냥 두려움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두려움을 느낀다고 해서 내가 이상할 것도 없으며, 내가 남들보다 약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두려움은 생리반응처럼 인간에게 일어나는 자연스런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려워 하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해 봅니다. 물론 두렵지만 말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심지어 두려움을 즐기기도 합니다. 그런 긴장된 순간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하고 승부근성을 자극한다고 까지 합니다.

이런 타입은 자신이 성장을 계속하는 한 두려움은 계속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꾸 두려움 속에 뛰어 들다 보니, 어느덧 자신이 두려워했던 분야는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리게 되는 삶의 영역은 점점 넓어지게 마련입니다.

물론 첫 번째 타입의 경우 가만히 있는 한 두려움은 절대 없어지지 않을겁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운전을 하는 사람이 두려운 것은 운전 자체보다 두려운 감정으로 인해 야기되는 불안, 초조, 긴장감이 그 사람을 더욱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래 그럼 다른 두려움은 다 극복할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할건데?“ 이렇게 물어보는 이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부러 죽음에 뛰어들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해법은 티벳 불교에서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명상을 평생 합니다.

자신이 죽음에 임박했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부터 내일 당장 내가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합니다.

그들은 죽음을 의식 밖으로 밀어내지 않고 죽음을 품 안에 품고 삽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죽음은 아주 친숙해 집니다.

그렇게 매일 죽음을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역설적으로 그들은 유한한 인생을 떠올리면서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전에 이런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자전거로 세계를 일주하는 한 외국 젊은이의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죽는 날은 겨우 하루에 불과하다 그러니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걸 하면서 살아라”  

출처 : 좋은 인연을 맺어봅시다-이경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