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가족이 암벽등반을 하다 위험에 처한다. 위태로운 외줄 위에서 가족은 중대한 결정을 한다. 살 수 있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다른이를 희생하기로 한 것. 물론 영화속의 한장면이다. 김재우 기업혁신 연구소장은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한때 구조조정의 전도사로 불렸던 김 소장은 "기업 역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언제든 이러한 선택의 순간을 요구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김재우 소장은 1998년 IMF경제위기 당시 매출 1100억원에 경상손실 294억원으로 부채비율 300%에 달했던 (주)벽산의 대표이사를 맡아, 4년 후 매출 1800억원에 경상이익 115억원 부채비율 100% 미만의 우량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장본인.
11일 휴넷이 주최하고 아시아경제신문이 후원하는 CEO Insight 월례 조찬회 강사로 나선 김 소장은 ‘혁신을 통한 창조경영’이라는 주제로 전례 없는 변화에 직면한 오늘날의 CEO들에게 지난날 자신이 경험했던 기업 구조조정과정에서의 교훈들을 설파했다.
김 소장은 위기에 처한 기업이라면 그 위기를 전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벽산의 대표이사로 새로이 취임하면서 직원들을 불러놓고 “우리는 금년 종반을 넘기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라며 위기 상황을 알렸다. 이는 곧 전직원 회사 재건 의지를 고취시키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김 소장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 과정에서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벽산의 인력감축 대상들에게 자사 제품을 지원해주는 방식으로 총판 등을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총판을 창업한 이들은 이후 벽산에 우호적인 외곽환경 역할을 맡았다.
또한 김 소장은 자신이 경험했던 구조조정의 경험 속에서 "위기의 순간이 오히려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벽산 대표로 재직하며 그는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사업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의 핵심역량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이 질문들은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과 비전을 정립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고객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기업의 핵심역량을 집중시킬 수 있는 기반을 찾아낸 것이 좋은 예이다. 1998년 당시 벽산의 4000개에 달하던 거래처는 고객 분석 과정을 통해 우량고객 중심으로 재편된 후 400개로 줄었다. 400여개의 '정예' 거래처는 고질적으로 안고 있던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됐다.
김 소장은 ‘사람들은 같은 일을, 같은 방법으로 하면서 그 결과가 좋아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는 미친짓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연공서열과 구태는 기업 혁신에 도움을 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나주석 기자 gongg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