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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하! 그렇구나!

by 올곧이 2026. 1. 4.

1월4일 일요일

 

 오늘은 며칠간 기세를 떨치던 한파가 조금 물러갔는지, 다행히 살갗을 스치는 공기에서 날카로운 추위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겨울의 참맛은 추위라고 하지만 이제는 추위도 견디기 버겁다는 나이가 되니 따뜻한 것이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는 정식 출근 시간도 전인데 불쑥 찾아온 손님들 때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저의 일터에는 새해를 맞아 한 달간의 대장정을 시작한 귀한 손님들이 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멀리 전라도 땅에서 찾아온, 한때 고교야구의 맹주로 이름을 날렸던 명문 야구팀입니다.

 흔히 한 해의 농사를 결정짓는 것은 좋은 씨앗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아무리 좋은 씨앗도 건강한 모판(못자리)이 없으면 제대로 싹을 틔울 수 없습니다. 야구팀에 있어 전지훈련장은 바로 그 '모판'과 같습니다. 이들이 여기서 흘린 땀방울이 올 시즌의 성적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하니, 관리자인 저의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완벽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저를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게 합니다.

 일터에 도착해 시계를 보니 이제 막 8시를 넘겼습니다. 어제처럼 선수들이 일찍 들이닥칠까 봐 마음이 급해집니다. 서둘러 야구장비가 가득한 덕아웃 창고를 열고, 기록실과 시설물들을 점검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8시 14분이 되자 선발대 선수들을 태운 차량이 정문을 통해 들어 왔습니다. 어제와 거의 같은 시각입니다. 시설을 완벽히 둘러보기도 전에 도착한 그들을 보며, 매일 이 시각이면 8시 30분 출근 시간을 8시로 앞당겨야겠다는 들었습니다. 그래서, 차에서 내리는 젊은 코치에게 다가가 정중히 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보통 몇 시쯤 훈련을 시작하시나요?"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무심하게, 혹은 약간 귀찮다는 듯 툭 던져진 한마디가 "문만 열어 주면 됩니다"

 순간 마음속에서 '요동'이 일었습니다. 공손한 질문에 돌아온 예의 없는 대답에 당혹감이 밀려왔습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죠. 입에서 스프링 처럼 튀어 나오려는 말을 억지로 삼켰습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려 할 때, 얼마 전 서예 선생님께 받은 체본의 글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체본에는 '아!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는 글이...

 이 순간, 그 짧은 문장을 가슴속으로 되새겨 보았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으로 복잡합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수만 명의 사람이 섞여 살기에, 모두의 마음이 내 마음 같기를 바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바닥에 쓰인 숫자를 두고 한 사람은 9라고 읽고, 반대편에 선 사람은 6이라고 읽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서로가 옳다고 우길게 아니라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자세입니다. '아하! 그렇구나'를 인지하며...

 그 젊은 코치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침 일찍 감독님께 꾸중을 들어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라면 팀의 전술 보안을 위해 훈련 스케줄을 함구해야 하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저 아침 잠을 설쳐 예민해진 상태였을 수도 있겠지요.

 그의 무례함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받아들이는 순간 제 마음의 파도는 잔잔해졌습니다. 굳이 그와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또, 나이 든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 공간을 책임지는 주인으로서 그저 오늘 하루 그들의 훈련이 무사히 끝나기를 빌어주는 것이 더 큰 어른의 자세일 것입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은 빨리 털어버렷습니다.

대신 어제 저녁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신년 인사를 하러 찾아온 사위와 딸아이와 함께 맛집에서 나누었던 따뜻한 저녁 식사와 도란도란 나누었던 대화들... 그 온기가 아직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다만 불빛에 언듯 보이는 아내의 귀밑 머리칼이 좀 안타까웠지만...ㅎㅎ

 오늘 날씨도 어제보다는 포근해진다고 합니다.

운동장 위의 선수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그럴 수도 있지"라는 넉넉한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