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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떤 죽음 앞에서 250511

by 올곧이 2025. 5. 11.

5월11일 일요일

 

 휴일 아침 조금 늦게 부엌에서 나는 달그락 소리에 일어 났는데 시계를 보니 아홉시 늦은 시각이다.

어제는 뒷산을 돌아 온 가벼운 하루였는데도 힘에 버거웠을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아! 그랬구나! 

별 무리한 일은 없었고 저녁 늦은 시간에 그저께 며느리가 들고 온 수박을 먹어야 된다며 수박을 먹고 잤는데 그게 원인이었나 보다. 새벽이랄 수는 없지만 여섯시에 일어나 소변을 봤다는 기억이 그걸 짐작케 한다.  활동하기는 이른 시간이라 판단하고 다시 잠을 청했는데 그게 그만 아홉시가 될 때까지 잡 꿈으로 고민할 시간만 연장한 결과였을 뿐...

 

 평소에도 이렇게 다시 잠을 청할 땐 꼭 이런 잡다한 꿈을 꾼다.

꿈이 좀 달콤했으면 좋겠건만 요즘은 그런 것은 전혀없고 회사에 다닐 때 겪은 억울함이 꿈에서도 재현이 되는가 하면 그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그 일을 해결하려고 고민을 하다가 일어나는게 다반사다. 의학적으로는 어떤 표현을 쓰는지 몰라도 현실이 아니고 꿈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트라우마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퇴직을 한지가 10년이 다 돼 가는데 참 끈질기게 따라 붙는 이 일은 앞으로도 얼마나 이어질지?  어쨋거나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도 있는데 늦잠을 잔 것이 미안할 뿐이다.

 

 바깥 날씨가 궁금해서 베란다 창을 열고 밖을 내다 봤다.

내가 느끼기도 전에 아내가 "미세먼지인지? 송홧가루인지? 어제보다는 흐리지요?" 라고 미세한 정답으로 동의하라는 듯한 질문이 내 귀에 들어 온다. 대답을 하기 위해 돌아서며 "송홧가루는 어젯밤 거센 바람에 다 날려 갔을 것 같은데 ..." 하면서 거실로 들어오다가 물고기 먹이를 주려고 어항앞에 섰다. 먹이통 뚜껑을 열고 핀셋으로 먹이를 집어 어항에 뿌리려다 못 보던 장면을 봤다.

 

 보통 때면 먹이를 주면 물고기들이 먼저 차지하려고 구삐는 상부에서 와글거리고, 네온은 중간층에서 와글거렸다.

그래서, 먹이를 줄 시각이면 바닥에는 고기들이 없었는데, 오늘은 그림이 조금 달랐다. 네온 한마리가 천천히 바닥에서 움직이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바닥에 있는 것도 이상한데다가 행동마저 느렸다. 네온의 행동은 앞으로 진행할 때도, 방향을 바꿀 때도, 매번 놀란듯이 빨랐는데 오늘은 왜 이럴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네온보다 빠르게 방에 가서 안경을 끼고 다시 살펴 보았다.

"허걱!" 두 마리의 새우가 네온 꼬리를 물고 늘어져 있고, 네온은 죽은 것 처럼 가만있고 여과기에서 나오는 물에 의해 움직이는 것 처럼 보였다. 더 자세히 볼 수가 없으니 애꿎은 안경 탓인가 하여 촛점을 맞추기 위해 안경을 다시 고쳐쓰고 보았지만 네온이 새우를 떨치려고 간헐적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는 듯 했다. 급한 김에 우선 핀셋을 들고 새우를 밀쳐 냈더니 그제서야 네온은 바닥에 제 몸을 두어 바퀴 뒹굴리며 가쁜 숨을 몰아 쉬는 것 처럼 보였다.

 

 내가 어항에서 오래 서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던지 아내가 내 옆으로 왔다.

"아이구 죽었어요! 물 오염되기 전에 건져요!"

"아니야 아직은 살아 있어. 움직이잖아?!"

"곧 죽겠구먼"

"... ..."

아내는 내 뜻을 알았다기 보다는 굽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했다는  듯 "그럼 격리시켜 보세요" 하면서 자리를 떴다.

 

 '그래! 아직은 살아 있다. 잘만 하면 치료되지 않겠는가?!'

내 생각엔 격리를 시켜 정신을 차리게 하면 다시 살아 날 것 같아서 우선 격리시킬 방법을 생각하다가 지퍼빽이 생각났다. 지퍼빽은 얇아서 같은 수온을 지킬 수 있고, 철사를 이용해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부엌에 있는 지퍼빽을 찾아서 물순환이 되면서도 다른 고기들이 들어가지 않게 작은 구멍을 뚫어서 물에 담근 뒤 네온을 옮겨 담았다. 그동안 새우에게 잡혀 있느라고 밥도 못 먹었을 테니 맘껏 먹을 수 있도록 먹이도 넣어 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너의 의지'라는 무언의 명령도 내린 뒤 한참동안 지켜보다가 자리를 떴다.

 

 다른 할 일들을 생각하기 전에 머리에는 온통 어항 속의 네온만 생각될 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어항에 가 봤더니  '아~!' 하는 탄식이 나올 뻔한 광경이 눈에 들어 왔다. 죽어가는 네온은 그렇게 맛나게 찾았을, 그것도 새우에게 붙들려서 아무것도 못 먹었을 빈 속인데도, 맘 껏 먹으라고 넣어 준 먹이를 먹었는지 말았는지 가만히 누워 있을 뿐이고, 비닐 밖에 있는 팔팔한 고기들은 같이 생사를 같이 하자고 했을 친구인지 동료인지의 죽음에도 단 1도 관심이 없는 것 같이 오로지 그 비닐 속 먹이만을 둘러싸고 제 배를 채우려고 입질을 해대고 있었다.

 

 세상의 죽음이란 인간이나 짐승이나 물고기나 별 다르지 않구나 싶다. 

죽음은 오롯이 죽은 자의 몫일 뿐이고, 산 자들은 오직 자기의 삶,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고군분투를 넘어 치열한 삶의 전투를 이어 간다는 것. 도대체 삶이 무엇이며 죽음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하루 아침에 적을 만난 듯 관계를 끊어버리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할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혼란스럽다.

 

 며칠 전에도 친구의 모친이 돌아가시고 친구의 초상도 있었다.

요즘은 예전과 좀 다른 것은 부모의 초상은 적어지고 본인상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벌써 나이가 이렇게 되었으니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집안의 장남이거나 부모님이 장수하시는 경우겠지만 대부분은 죽음을 친구같이 여기고 붙어 산다. 결국 나도 오늘 네온테트라의 죽음처럼 그렇게 마딱뜨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죽음이라는게 참 그렇다. 물론 각자의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할 것이지만 대부분이 비슷할 것이기에 제한적이지만 좋다고는 말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마딱뜨릴 일이고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기에 서글픔은 두고 두고 되살아 날 것 같다.

 

 오늘 같은 날은 비라도 내렸으면 싶은데 하늘이 구리지만 비는 내릴 것 같지 않다.

이 기분을 떨쳐 낼 다른 기쁜 일을 만나기를 기대하며 찾아 나서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