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6일 수요일
오늘은 쉬는 날이다.
하늘을 쳐다봐도 구름한 점 없는 쾌청한 날이라서 평소 집에만 있는 아내를 위해 드라이브라도 같이 했으면 싶지만 이미 친구와 선약이 있어서 부득이 다음으로 미뤘다.
점심을 먹자고 약속한 시간이 12시여서 11시 50분까지 가면 되겠거니 하고 약속 장소를 확인하니 18분 거리의 호계쪽이다. 시계를 보니 이제 10시가 넘어가고 있어서 최대한 여유롭게 설치다가 11시가 넘어서야 머리를 감고 치장을 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내가 외출 준비를 하는데는 세면기에 물을 받아 머리를 적시고 샴푸로 한 번, 린스로 한 번 씻고 수건으로 딲고, 얼굴에는 스킨과 로션으로 스치듯 바르면 불과 10여분 정도면 충분하다. 하긴 옷걸이에 입을 적당한 옷이 없을 때는 2~3분, 옷걸이에 옷이 걸렸을 때는 30초? 느긋하게 움직여도 남는게 시간이다. ㅋㅋ (참 성의없다. 나라는 놈은...)
약속장소에 주차를 하고 시계를 보니 11시 43분.
조금 일르다 싶어서 혹시나 시간이 맞으면 같이 들어 가려고 전화를 했다. 안 받는다.
혼자 앉아 기다리는 것을 싫어해서 "어지간 하면 같이 들어가려고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뭐!" 하면서 출입문을 들어서니 제일 앞쪽 테이블에서 손을 치켜드는 주인공! "먼저 왔구나!"로 환영 인사겸 나만 아는 고마움? ㅋㅋ
이 친구는 국민학교(초등학교구나) 동기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언제부터 친해졌는지도 모르는 사이면서도 불쑥 불쑥 안부를 전하는 그야말로 친구다. 친구라 하면 인생에서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의 인맥? (표현력이 없어서 이렇게 밖에 ...) 그래서 그런지 친구라는 제목으로 만든 시나 소설이나 영화나 그림이나 사진들이 무수히 많다. 그렇지만 친구에 관해서 정의를 내리라면 글쎄다? 백이면 백, 천이면 천이 다 다르게 정의할 정도로 개인차가 있지 싶다. 친구라는 명칭도 개인마다 그 생각하는 친밀도에 따라 다르게 표현하기도 하지 않는가? 친구, 동무, 지음, 도반, 벗, 붕, 붕우...그것을 다시 소꼽친구, 불알친구, 00친구, ??친구 등 역할에 따라 다른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심지어 나이가 어린 동생에게도 사랑을 담으면 친구라고 부르니 이 친구는 어디에 속할지? ㅎㅎ
암튼 이 친구는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도 아니고, 곽경택(감독)의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움이 없었던 친구'도 아니고 중국 춘추시대 '관중'과 '포숙'같은 '관포지교의 친구'도 아니다. 그냥 오래 전 읽다가 제쳐둔 책갈피 속의 마른 은행잎 처럼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내어 준 그런 사람인데 ... (아 ~ 참 ! 내가 생각해도 표현력이 없는지? 글을 못쓰는지? 아님 둘다 안되는 것인지? 답다~압 하다!)
이 대목에서 문정희 시인의 '친구'를 한 번 감상해 본다.
친구 / 문정희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누가 몰랐으랴
아무리 사랑하던 사람끼리도
끝까지 함께 갈 순 없다는 것을
진실로 슬픈 것은 그게 아니었지
언젠가 이 손이 낙엽이 되고
산이 된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언젠가가
너무 빨리 온다는 사실이지
미처 숨돌릴 틈도 없이
온몸으로 사랑할 겨를도 없이
어느 하루
잠시 잊었던 친구처럼
홀연 다가와
투욱 어깨를 친다는 사실이지
'홀연히 다가와 어깨를 투욱 치는 사이' 맞네! 이거네! ㅎㅎ
어쨋거나 우리는 점심을 맛나게 먹고 가까이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밟히는 낙엽 밑에다 살았던 얘기들과 사는 얘기를 꼭꼭 숨겨 밟아 놓았다. 그리고,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쇼파같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앞으로 살아 갈 얘기들도 커피향에 타서 마시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먼 산을 바라보는 듯 하면서 슬쩍 친구의 얼굴을 훔쳐봤다. 친구도 나를 그렇게 봤는지 오래 전에 봤던 그런 모습이 아니라며 위로를 한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이렇게 견뎌 낸 것 만 해도 대견하다며 서로를 격려하며 두어시간 만에 헤어졌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그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이제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한 번, 두 번, 아님 세 번?"
더 자주 만나자는 바램은 있지만 가는 세월이 허락하겠냐는 물음 같았는데 허락 못받는 것은 누구를 염두에 뒀을까?
묻는 친구나 대답을 못하는 나나 세월 앞에서는 초라해 질 수 밖에 없는 똑같은 심정은 안타까움만 남겼다.
어쨋거나 오늘은 '
앤드루 코스텔로'의 말대로 편안한 우정을 나눴다.
"우정은 편안함이다. 생각을 가늠하거나 말을 판단할 필요가 없는 그런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안전함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편안함이다. 있는 그대로를 전부 드러내 보이며 농담하고 웃을 수 있는 사람, 충실하고 다정한 손을 내밀며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을 지켜주고 안도의 숨으로 나머지 것들을 날려 보낸다" 라는...
그러면서 예전에 친구들과 옥동에서 막걸리 잔을 맞추면서 한께 음미했던 벽보의 글을 다시 찾아 봤다.
친구야!
이쁜 자식도 어릴 때가 좋고
마누라도 즐거울 때가 부부 아니냐?
형제간도 어릴 때가 좋고
벗도 형편이 같을 때가 진정한 벗이 아니더냐.
돈만 알아 요망지게 세월은 가고
조금 모자란 듯 살아도 손해볼 것 없는 인생이라
속을 줄도 알고 질 줄도 알자.
내가 믿고 사는 세상을 살고 싶으면
남을 속이지 않으면 되고,
남이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면
나 또한 가까운 사람에게 가슴 아픈 말 한 적이 없나
주위를 돌아보며 살아가자.
친구야! 큰 집이 천칸이라도
누워 잠잘 때는 여덟 자 뿐이고
좋은 밭이 만평이 되어도 하루 보리쌀 두되면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는 세상이니
몸에 좋은 안주에 쐬주 한잔하며
묵은지에 우리네 인생을 노래하세.
멀리 있는 친구보다
지금 당신 앞에 이야기 들어줄 수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존날 되시게나...
오늘은 기쁜 날이면서도 짠한 것이 남는 날이다.
바람은 점점 쌀쌀해 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