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은

안녕하세요? 230216

by 올곧이 2023. 2. 16.

2월16일 목요일

 

창을 여니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새소리입니다.

어떤 새인지 내려다 보니 숨바꼭지를 하자는 듯 숨어버리는 작은새가 있던 자리에 봄이 앉았습니다.

간간히 내리는 비를 맞아 이미 촉촉해진 텃밭에는 흙을 밀쳐내는 새싹들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하늘이 파랗지 않은 것으로 보아 새싹들이 제 힘으로 일어서는지 지켜보려는가 봅니다.

오늘은 기온도 4도 가까이 되고 바람이 없으니 한층 더 봄기운이 납니다.

 

그런데, 오늘 카톡으로 들어오는 아침인사로는 눈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많이 보입니다.

지리산 쪽도 눈에 묻혔고 심지어 경주쪽에도 눈이 왔는가 보는데...

이러다가는 올 겨울엔 눈 한번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조바심이 납니다.

최근에 남부지방에는 비가 내렸다고는 하지만 틀림없이 영남 알프스 1,000고지 이상에는 눈이 왔을 텐데...

마음 같아서는 만사를 제쳐두고 강릉 열차표를 끊어서 기차여행이라도 가고 싶지만 그게 잘 안되네요.

아무래도 오후에는 차를 타고서라도 가지산 일대를 한번 돌아 봐야겠습니다.

다행히 오늘은 별다른 일정도 없으니까요!

 

눈을 생각하면 등산이 좋아서 혼자 산을 찾던 생각들이 납니다.

그 때는 사진이 귀한 시절이어서 그런지 사진도 없지만 기억에는 생생한 것이 소백산 산행이었습니다.

어떻게 갔는지도 가물가물한 이야기지만 아찔하고도 가슴이 뛰는(?) 기억이라서...

밤 열차를 타고 영주역에서 내려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희방사쪽으로 산을 올랐지요.

그 전에 한 두번은 소백산을 가봤지만 겨울산행은 그 때가 아마도 첫 산행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혹시나 길을 찾지 못할까 봐서 나보다 먼저 올라가는 단체팀을 따라서 천천히 올랐습니다.

이미 눈이 내려서 등산로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오르고 있었는데 8부 능선쯤 올랐겠다 싶을 때 떡눈이 퍼부었습니다.

시야는 막혔고 바로 앞서가던 산행팀이 시야에서 사라지더니 다급하던 대화들도 바람소리에 묻혀 버렸습니다.

내려 갈래야 시야가 막혔으니 어디쯤인지도 모르겠고 찍혔던 발자국도 눈으로 덮히고 있었지요.

앞선 팀을 찾지 못하면 낙오된다는 생각으로 등산로로 짐작되는 작은 나무 사이로 냅다 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작은 시멘트 건물을 발견하고 눈을 피하고 있는데 사람소리가 들렸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곳은 소백산 천문대 부속시설(김치저장소?)이었고 근무자였던가 봅디다.

다행이 눈은 잦아 들고 천문대 근무자의 말에 의하면 한산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 좀 기다려 보라고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줄줄이 내려오는 중이었고 나도 정상을 포기하고 그들을 따라 하산키로 하였습니다.

눈으로 이미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고 시간상 더 이상 산에 지체하기란 위험이 따를 것 같은 예감이 들었거든요!

 

아침 바쁜 시간에 소설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마는 그냥 쓴 김에 ...ㅎㅎ

하산하기가 바쁘게 등산로 인근 첫동네에 있는 민박집을 찾아 거금을 주고 방을 빌렸습니다.

지금은 어느 위치인지도 아련하지만 기억으로는 하늘로 쭉 뻗은 커다란 감나무가 뒷켠에 있는 집이었는데 ...

암튼 손발이나 씼었는지? 밥은 먹었는지도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뜨끈한 아랫목에 눕자마자 곯아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곯아 떨어진 덕분에 숙면을 취했고 쌀쌀한 새벽 냉기에 일찍 눈을 떴는데 이게 왠 일입니까?!

분명히 초저녁에 잘 때는 그 방에 나 혼자였는데 새벽에 눈을 뜨고 보니 웬 아가씨가 나를 안고 자고 있는 겁니다.

물론 나도 겉옷을 입은 채로 잤으니 그대로였고 그녀도 겉옷을 입은 채였으니 별일은 없었겠지요?!

지금 같았으면 자초지종도 알아보고 재밌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는 너무 놀래서 도망치듯 나왔습니다.ㅎㅎ

 

그런데, 지금까지도 아리숑한 것은 남자가 자는 방에  여자가? 그것도 혼자 들어와 잤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입니다. ㅎㅎ

산신령님의 선물이었는가? 주인장의 장난끼? 아니면, 갑자기 쏟아진 눈으로 민박이 귀했으니 어쩔 수 없이...?

수 십 년도 더 된 일인데 아직도 가슴이 요동치는 기분입니다. ㅎㅎㅎ

 

아침 바쁜 시간에 별 이야기를 다 들었지요?

그렇지만 이건 우리 아내에게도 안한 이야기니까 제법 값나가는 이야깁니다. ㅎㅎ
암튼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는 방법을 멀리서 찾을게 아니라 생각 속에서 더듬어 보시기를...

 

태화동에서...

친구 박윤식은 스키장도 갔구나.

https://youtu.be/OBCb9y2rR8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