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늘은

아침인사 221031

by 올곧이 2022. 10. 31.

10월31일 월요일

 

시월의 마지막 아침인가요?

여섯 시에 눈을 떠서 다시 잠을 청했지만 더 이상 잠은 오지않아 꾸물대다가 일어났습니다. 

아직 해가 뜨지는 않아서 드문드문 떠있는 구름은 검게 보이지만 하늘은 점점 밝아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시월의 마지막 날은 아름다운 가을 모습으로 기억될 듯 합니다만...?

 

전국이 10월29일 밤, 이태원에서 일어난 할로윈 축제와 관련된 사고로 초상집 분위기입니다.

2014년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304명 실종, 사망) 이후 최대의 인명사고(150여명)라니 그야말로 충격입니다.

아직은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지만 시야가 좁은 골목길에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다 보니 생긴 것이 아닌가 짐작됩니다.

골목길 양쪽 입구에서 들어오려고 밀다보니 골목길 중간에 있던 사람들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질식사를 당한 것이지요.

남을 배려하는 질서보다는 자신이 우선이라는 완력이 앞섰기에 일어난 원시적 사고라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정확한 진단이 있을 것이지만 우선 불의의 사고를 당한 고인들의 명복과 가족들에게 위로를 드려야 겠네요.

그리고,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나부터 질서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다듬으려 합니다.

 

오늘은 점심약속도 있고 연 이은 서예수업이 있기에 바로 뒷산 등산을 나가려고 합니다.

시월의 마지막 날이지만 다른 의미보다는 사고에 대한 충격이 더 커서 다른 어떤 말보다는 침묵이 나을 것 같습니다.

충격받은 마음을 잘 추스리시기 바라면서 이만...

 

태화동에서...

https://youtu.be/mvM1fIzdkeg

 

p.s 신문에 이태원 지명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링크를 걸고 본문을 옮겼습니다.

『이태원(梨泰院)이라는 이름에는 묘한 슬픔이 배어 있다. 지명 유래부터 그렇다. 배나무(梨)가 많은 곳이고 옛 관리들 숙소인 원(院)이 있던 자리였지만,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겁탈당한 여인들의 아이들 보육원 자리여서 이태원(異態園)이라고도 했다. 조선에 귀화한 왜군 등 이타인(異他人)이 살던 동네에서 비롯됐다는 설까지 있다.
오래전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는데, 그게 또 다른 비극을 초래했다. 고려 시대에는 몽골군의 병참기지가 이곳에 있었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 보급기지였고, 임오군란 땐 청나라군 주둔지였다. 이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의 군사기지가 들어섰고, 광복 후엔 주한미군기지로 변했다.
6·25 직후에는 피란민이 대거 몰려들었다. 이들이 세운 이태원 시장은 미군기지에서 나온 물자를 거래하며 상권을 형성했다. 외국인과 유흥시설이 몰린 번화가는 서울의 3대 클럽 지역으로 꼽혔다. 신중현과 윤복희 등 가수들은 미8군 무대와 이태원 클럽에서 밤새워 노래를 불렀다. 흑인 병사들은 박인수 노래의 ‘봄비’를 듣고 “고향 노래 같다”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한국 댄스 음악의 텃밭이 돼준 클럽 문나이트는 ‘K팝’의 성장 무대였다. 현진영과 구준엽, 강원래,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 등 댄스 가수들이 이곳에서 꿈을 키웠다. 서울시 관광특구 1호여서 방문객이 연간 250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한 뒤로는 상권이 쪼그라들었다.
2020년에는 웹툰 원작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로 화제를 모았다. 청춘들의 유쾌한 반란과 창업 신화를 그린 이 드라마가 국내외에서 인기를 끈 덕분에 시장이 되살아나는 듯했지만, 곧이어 터진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로 매출이 전년보다 65%나 곤두박질쳤다. ‘이태원 클나쓰’라는 자조적인 신조어도 생겼다.
이제 거리두기도 끝나고 한숨 돌리나 싶더니 한밤중 150여 명이 숨지는 압사 사고가 터졌다. 희생자들이 생때같은 젊은이여서 더욱 가슴이 미어진다. 수세기에 걸친 질곡의 역사도 견뎌왔는데 21세기 도심에서 이렇게 참담한 사고라니! 바로 옆 이태원 공동묘지 자리에 있는 유관순 추모비마저 할 말을 잃고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