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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좋은 글

달려라 도둑

by 올곧이 2021. 9. 21.

밥 숫가락 끝에서 방송을 듣다말고 메모를 한다.

<달려라 도둑>

유달리 빨리 지나가는 화면인데도 이것 만큼은 적을 수 있었다.

밥상을 거두기 바쁘게, 감사의 표현을 잊고서 인터넷을 찾았다.

이상국 시인이 지은 시의 제목이었다.

수필가가 쓴 감상문을 보면서 가슴에 멍울이 맺힌 것 같다. 비라도 내렸으면...

 

혹시나 페이지가 없어질지도 몰라 그대로 옮겨 적는다.

 

<詩境의 아침>달려라 도둑 / 이상국>

『도둑이 뛰어내렸다
추석 전날 밤 앞집을 털려다가 퉁기자
높다란 담벼락에서 우리 차 지붕으로 뛰어내렸다.

집집이 불을 환하게 켜놓고 이웃들은 골목에 모였다.

―글쎄 서울 작은 집, 강릉 큰애 네랑 거실에서 술을 마시며 고스톱을 치는데 거길 어디라고 들어오냔 말야.
앞집 아저씨는 아직 제 정신이 아니다.
―그러게, 그리고 요즘 현금 가지고 있는 집이 어딨어, 다 카드 쓰지. 거 돌대가리 아냐? 라고 거드는 피아노 집 주인 말끝에 명절 내가 난다.
한참 있다가 누군가 이랬다.
―여북 딱했으면 그랬을 라고……,

이웃들은 하나 둘 흩어졌다.
밤이슬 내린 차 지붕에 화석처럼 찍혀있는 도둑의 족적을 바라보던 나는 그때 허름한 추리닝 바람에//
낭떠러지 같은 세상에서 뛰어내린
한 사내가 열나흘 달빛 아래 골목길을 죽을 둥 살 둥 달려가는 걸 언뜻 본 것 같았다.』

<수필가가 본 시의 세상>
이상하게 서러운 시다. 말 한마디가 울음꼬리를 잡아당긴다. “여북 딱했으면 그랬을라고……,”
도둑은 추석 전 날 밤 시인의 앞집을 털려고 들어갔다가 그만 주인의 눈에 붙잡힌 것. 몸으로 잡힌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왜 들까. 명절 전 날에는 어느 집이건 사람들이 북적북적 거리는 것을 몰랐을까.
아니 알았을 거다. 그런데 왜? 그 질문의 답이 “여북 딱했으면 그랬을라고……,” 이다. 도둑은 어쩌면 엄마 없는 젖먹이가 있었을지 모르지. 굶길 수 없는 노모가 계셨는지도 모르겠어. 명절이 다가왔는데도 쫄쫄 배곯고 있는 올망졸망 아이들이 눈에 밟혀 그만 순간적 충동으로 뛰어든 것일 수도 있겠다~~생각하니 괜스레 가슴이 아려온 것이다. 나만 그런 생각에 젖어든 게 아니었던가 보다. 높다란 담벼락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이 그만 하필 시인의 차 지붕에 뛰어내릴 게 뭐람. 시인은 그 사내가 뛰어 내린 것부터 달려가는 것 까지를 지켜보았던 것 같다. 왜냐면 담벼락에서 뛰어 내린 모습이 마치 ‘낭떠러지 같은 세상에서 뛰어내린’ 것 같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때의 심정을 읽었던 게다. 얼마나 절박 했을까 라는…
‘골목길을 죽을 둥 살 둥 달려가는 걸’ 보기는 봤는데 ‘언뜻’--상세히 봤다면 허어, 안되거든. 법이 우선인 곳에서는 용서가 어렵겠지, 대가를 치러야 된다고 보니까. 훤한 밤에 뭘 가져가겠다고 들어 온 어리석기 짝이 없는 도둑이 초짜였을 거라는 추측.
법보다 용서가 우선인 살 맛 나는 세상을 펼쳐 보여 준 ‘달려라. 도둑’은 여북 딱해도 이제부터는 그런 낭떠러지에서 뛰어 내리는 일 대신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응원인 거를 아셨으면…
열심히 달려서 시련을 이겨 내라는 격려인 거를 아셨으면……좋겠다.<수필가 박모니카>
경상매일신문 기자 / gsm333@hanmail.net입력 : 2020년 12월 29일 

 

http://www.ksmnews.co.kr/default/index_view_page.php?idx=319340 

 

[경상매일신문] <詩境의 아침>달려라 도둑 / 이상국

도둑이 뛰어내렸다추석 전날 밤 앞집을 털려다가 퉁기자높다란 담벼락에서 우리 차 지붕으로 뛰어내렸다.집집이 불을 환하게 켜놓고 이웃들은 골목에 모였다.―글쎄 서울 작은 집, 강릉 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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