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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등산

양정 뒷산을 수색하다.

by 올곧이 2008. 6. 1.

매주 산에 올랐던 악동들이 요즘은 소식이 좀 뜸하고 같이 할 기회가 적다.
가족들 길.흉사를 챙긴다거나 각종 모임의 체육대회나 단합행사가 잦는 계절 탓이다.
오늘은 조용히 산 속을 헤메어 보자는 모험심이 발동하여 어느 정도 해가 달기를 기다렸다. 10시 쯤이면 되지 않을까?!
 마누라가 밥이며 반찬이며 물이며 현관입구에 가져다 놓았고 나는 며칠 전 이마트에서 구입한 새 배낭에 여벌 T-SHIRT 한장을 넣고 머리띠를 두르고 집을 나섰다.
 그래! 오늘은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내 다래농장으로 우선 가보자!
다래농장(?)은 양정동 뒷산인데 10여년 전에 당시 품관부장으로 지낸 이한영씨가 발견하여 생관부장인 김순영씨에게 소개하였으나 후일 두사람 모두 그 자리를 찾지 못한 산중의 밭이라고 할 만큼 다래가 많이 달리고 또 특이하게도 나무에 올라 간 다래가 아니고 너덜지대 돌위에 깔려서 달리므로 채취가 쉬워 매년 내가 찾아가는 곳이다.
 덤으로 머루도 같이 너덜에 깔려 달리므로 다래와 같이 채취가 쉽고 가을이면 큰 산초나무에 산초가 한 대박은 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기대가 크니 집에서 15키로 정도의 거리의 사격장까지 금방 도착했다.
배낭을 지고 돈문재로 가는 초입에 들어서니 계곡으로 부터 싱그런 기운이 확 덮친다.
작은 길 옆 울타리 너머로 채소밭이 일궈져 있고 이미 주인들이 몇 차례나 왔는지 잘 정돈되어 있다. 잠시 약수터 쯤(작년 여름 호우로 묻혀버림) 가니 벌써 수풀이 우거지고 물이 흐르는 작은 개울위로 넘어진 키 큰 아카시나무가 세월의 이끼를 덮어 쓰고는 자기가 태어 난 땅으로 산화해 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수풀로 길은 보이지 않아 기억으로 더듬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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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첫 번째 오르막 아래로는 작년까지만 해도 기도하는 사람과 텐트 한 동이 쳐저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고 작은 폭포 아래로는 줄 딸기가 벌써 조롱조롱 익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따 먹었을까 이가 시리고 혓바닥에 느껴지는 씨앗의 깔깔함도 별로 좋지 않아 가는 길을 재촉했다.
 군데군데 수해로 인해 길은 끊어져서 수풀이 더 우거지면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도 있어 보인다. 다음에 다래를 수확하러 올 때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전 같으면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빽빽하게 나무가 우거져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참나무 여기저기 노란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나무를 벤 흔적도 보인다.
 작년에는 비가 온 다음날 와서 그랬는지 모기가 살기를 느낄 정도로 덤벼들었었고 에프킬라를 뿌리는 것도 부족하여 모자로 쫓으면서 지나간 기억에 비해 이 번에는 나무가 별로 없어서인지 모기도 없으니 좋기는 하지만 내 농장이 노출되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조금 별로다.
 그래도 농장은 농장이다. 제일 먼저 맞아주는 것이 머루고 그 다음이 다래넝쿨인데 얼마나 열리려는지 꽃이 빽빽하게 피어있다. 그리고, 역시 큰 산초나무에는 열매가 알차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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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를 꺼내어 산초를 따기 시작했는데 손이 작아(?) 많이 흘리면서도 어느 새 반 봉지 정도를 채웠으니 나머지는 다른 누군가가 맛있게 드시도록 남겨두고 너덜길에 발이 빠지지 않게 조심하며 점심먹을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음식을 펴니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모기들이 하나 둘 날아아 귀찮게 하더니 폭주족 오토바이 소리를 내며 말벌도 가끔씩 위협을 가하고 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인기척이 나는 곳으로 수풀을 헤치며 능선을 찾아 오르는데 길은 가까운 곳에 있지 않았고 다 올라서 주변을 보니 정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이었다. 올 여름 다래를 채취할 때는 위쪽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방법으로 가면 수고를 덜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방향을 군사기지쪽으로 잡고 몇걸음 옮기는데 많이 본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정신없이 걸어오고 있다. 재상이 아빠다. "손들엇!" 하고  고함을 쳤더니 기겁을 한다. ㅎㅎ
 역시 내 장난기는 그칠줄 모르는 어린 애와 같다고나 할까?! ㅋ
친구는 내려오는 중이고 나는 군사기지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잠시 인사를 하고는 곧 헤어져 제 갈길을 갔다.
 임도를 따라 올라오고 내려가는 사람들은 삼삼오오의 가족들과 동호회원인 듯한데 모습들이 너무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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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장길 입구를 몇 발자국 앞에 두고 고관절 부위의 통증이 서서히 느껴진다.
오늘 계획은 군사기지를 돌아 성불사를 거쳐 감나무골로 내려와 사격장에 도착하는 것으로 잡았는데 지금 상태로는 약간 무리가 따를 것 같아서 코스를 단축키로 맘 먹고 좌측 큰골짜기로 방향을 잡았다.
 아직 수풀이 사람을 가로 막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막상 숲 속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온 지 채 5분도 안 된것 같은데 계곡에는 찔레며 다래며 각종 넝쿨이 어지럽게 얽혀있어 순조롭게 내려가기는 걸렀다는 생각이 든다.
 이리저리 헤매지만 계곡을 중심으로 벗어나지 않으려고 방향을 잡고 오는데 인적이라고는 발자국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길이 없으니 ...
 아래로 내려가는 것만 직감으로 느낄뿐 여기가 어디 쯤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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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만큼 아랫쪽에 계곡을 실가닥 처럼 흐르는 작은 물줄기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과 미끄러지는 내 발자국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 정적만이 감돌고 좌우상하 수풀과 나무에 덮여 컴컴한 주변은 꼭 신의 영역처럼 조금은 조심스럽다.
 비탈을 타고 계곡에 다다르니 계곡물은 짐승들이 가재를 잡아 먹으려고 돌들을 뒤졌는지 물은 흐렸고 군데군데 큼직한 짐승의 배설물들이 나 혼자라는게 긴장된다.  물푸레나무로 만든 지팡이로 괜히 나무들을 딱딱거리며 때려 본다. 심마니들 처럼...
심을 볼 것인지? 뱀이나 짐승을 쫓아 버리던지? 가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빽빽한 나무들과 그를 감고 올라간 덩쿨들로 하늘엔 해 빛이 들어오지 않고 정적만 감도는 계곡을 한 참을 헤맸던 것 같은데 수풀들 사이로 키가 덜자란 풀들이 예전의 길임을 직감하게 한다. 이제 등산로만 보이면 헤매는 것은 끝일텐데 아직도 이리저리 태풍에 넘어진 아카시, 참나무들이 정글계곡을 넘어 가라는 듯 다리(?)를 놓고 있다.
 저 만큼 수풀 사이로 제법 큼지막한 간판이 보인다.
이제 다 내려왔나보다 생각하며 가까이 가서보니 간판은 뒷면이라 앞쪽으로 돌아보니 "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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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나는 지뢰지역을 헤쳐 나온 불사신(?)이었던 것이었다.
 잠시 물을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등산로를 머리 속으로 그려보니 이 지뢰지역 표지판은 감나물골을 지나 성불사로 올라가는 등산로 중간쯤으로 생각되었다.
 이제 등산로를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데 마음의 평정을 찾으니 고관절쪽 통증이 다시 느껴지기 시작해 서둘러 등산로를 따라 좌측 아랫방향으로 내려오는데 또다시 지뢰지역 주의판이 나오고 몇구의 묘지너머로 감나무골 앞 뜰이 보인다.
 이제서야 지도가 완전히 그려진다.
옛 날부터 염포나 양정동에서 출발하여 성불사로 가는 길은 감나무골 집 뒷편의 등산로를 바로 치고 올랐고 방금 내려온 길은 감나무골 집 앞 뜰을 우회하는 것인데 꼭대기에 군사기지가 생기면서 군사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등산로를 폐쇄하며 지뢰를 묻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무튼 오늘은 개척 등반을 할 뻔 했는데 지뢰지역이 있다보니 오히려 폐쇄를 알려야 하는 그런 경험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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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감나무골 앞 뜰에는 보리가 한창 익고 있었고 농부들이 평화롭게 밭일을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본의 아닌 지뢰밭 통과하기로 평화를 깰 뻔한 것이 마냥 아찔했다.

초여름의 등반 기억으로 내내 남을 만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