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를 들으며 50614
6월14일 토요일
늦잠을 자고 일어 났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엊저녁에 있었던 반년만에 모이는 고등학교 동기들의 모임에서 적잖이 마셨는지 일어났더니 여덟시가 가깝다. 비몽사몽간에 눈을 떴더니 아내도 늦잠을 자고 있고, 커턴 너머로 비가 내리는지 평소에 들리는 소리와는 조금 다른 소리다.
귀를 쫑긋거리며 무슨 소리인지 짐작을 해 본다.
"또닥 또닥!" 우수관에서 나는 메트로놈 처럼 일정한 소리가 나는 것으로 봐서 비가 내리는게 확실한 것 같다. 살며시 일어나 베란다로 나가 블라인더를 걷어 보니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고, 이미 마당은 빗물로 흥건하다. 오늘도 출근을 하는지 우산을 들고 나가는 몇몇의 사람들을 보자니 안개가 낀 듯한 동네 풍경도 시선에 들어 온다.
모처럼 내리는 비가 좋아서 한참을 구경하다 방으로 들어와서 다시 누웠다.
아직 취기가 남았는지 몸이 나른하기도 하고, 비가 내리고 있으니 운동을 나갈 형편도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는지 그냥 쉬고 싶은 기분이 몸을 제어하는 것 같다. 눈을 감고 조금 더 수면을 취할까 싶었지만 잠은 이미 달아났는지 정신은 점점 맑아지고 있다. 눈을 감고 있으니 자연스레 귀로 신경이 몰려 들었다.
"또닥 또닥" 우수관 안에서 나는 소리에 이어, 비가 좀 더 세게 내리는지? 벽에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가 "쏴와~ 쏴아~" 하면서 이어질 듯, 멈출 듯 들리기도 한다. 그렇게 한동안 쏟아지던 비가 잦아 드는지 바깥에 설치해 둔 실외기 위에서 나는 듯한 소리도 아름답게 들린다. "쪼락! 쪼락" 하면서 간헐적으로 들리는 소리는 아마도 윗부분이 조금 휘어진 실외기케이스 위에 고인 얕은 물에 빗방울이 떨어지며 내는 소리 같고, "탁! 탁! 탁! 탁!" 하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소리는 실외기의 편평한 면으로 떨어지는 굵은 물방울이 내는 소리로 짐작이 된다.
이렇게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잠은 완전히 달아나고 지금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귀에서 나는 "찌이~" 하는 이명으로 신경이 서는 날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저런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세월이 흐르고 늙게 되면 자연스레 귀도, 눈도, 모든 감각이 무뎌질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 일어나자! 건강할 때 하나라도 더 해 둬야지" 하는 생각으로 일어났다.
누우면 생각없던 일들도 막상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 처럼 "나요! 나요!" 하고 선생님께 답할 자신이 있다는 학생들의 손처럼 일들이 내 앞에 손을 들고 나타 난다. ㅎㅎ
어쩌면 그 일들이 짜증나기도 하고 맘편히 쉬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는데 오늘은 아니다.
더 늙기 전에 하나라도 더 해둬야지 하는 생각이 지배하기 시작하니 말이다. 우선 이 기분을 적어 두는 것으로 부터 시작하여 지인들에게 안부겸 내 마음을 전하고, 신문도 읽고, 아직도 완성하지 못한 딸래미의 컴퓨터도 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건강은 영원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는 생각을 터전 삼아 "오늘도 열심히 살자"는 마음을 다지면서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