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가족 모임이 있는 날 250513

올곧이 2025. 5. 13. 20:41

5월13일 화요일

 

 오늘은 두 달 보름 만에 우리 피붙이 가족들(누님, 자형)들을 만나는 날이다.
"혈농어수(血濃於水) 피는 물보다 진하다" 는 말도 있듯이 보고 싶어서 가슴이 시리고, 만나면 다시 헤어질 것이 아쉬워서 만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다칠 것 같은 데도 더 끌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과학적으로는 밝힐 수 없는 생체자석이 각자의 몸에 심겨져 있는 것일까? ㅎㅎ

 하긴, 우리 오누이들 중 막내 여동생이 환갑을 넘긴지도 5년이 지났으니 이젠 전부 고령자 신세다.
부산에 사시는 큰누님이 올 해 구순을 넘기다 보니 하루하루가 귀하고, 내일은 또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모임도 어쩌면 한정된 듯한 강박감도 없지 않아서 나훈아 공연 티켓을 구하 듯 모임 날짜가 정해지면 만사를 제치고 오로지 모임에만 전투력을 발휘해야 할 시점이다. ㅎㅎ

 보통 모임은 점심 식사를 오늘 모임은 부산에 사시는 큰누님은 10시 40분에 태화강역에 도착을 하신다니 그에 맞춰 마중을 나가기 위해서는 산책도 이른 아침에 마쳐야 했다. 큰누님은 91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가족모임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고야 만다'는 말씀에 숙연해 지기까지 한다. 다리가 편치않아 걷기도 힘들고, 장이 좋지 않아 차 안에서 실례를 할 때도 있었지만 우리 아우들을 보기 위해 달려오시는 것을 생각하면 존경 외의 생각들은 모두 접어야만 할 수 밖에 없다.

 

 이른 새벽 6시에 집을 나가 뒷산을 돌았다.

산에는 아카시꽃이 졌는지 달콤한 향기는 사라졌다. 그 대신 어디선가 찔레꽃 향기가 장미향 처럼 순하게 나는 것을 보니 멀리 하얗게 보이는 꽃무더기가 아마도 찔레꽃인 듯 싶다. 그러고 보니 산책길에 하나 둘 떨어진 꽃을 보니 떼죽도 꽃을 피웠는가 싶어 위를 쳐다보니 역시나 아름답게 조롱조롱 달려 있다. 누가 그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떼죽 꽃은 점잖다고 했다. 다른 꽃들은 턱을 위로 올리고 있지만 떼죽나무 꽃은 하나같이 질서를 지키며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그렇게 표현했을거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청순한 모습으로 보인다. 마치 옛날 학창시절에 가슴을 뛰게 했던 깨끗한 하얀 카라의 여고생들의 모습이 저랬을까 싶도록...꽃 술은 갓 삶아 낸 계란의 노란색 같이...이런 얘기 끝에 왜 입맛이 돌까? ㅎㅎ

 

 매년? (아니구나! 작년에는 가물어서 그랬는지 떼죽나무 꽃은 아마도 보지 못한 것 같고) 떼죽나무 꽃이 피면 그걸 주워서 죽은 나무위에 올려 놓고 작품 아닌 작품사진을 찍곤 했지만 오늘은 이제 피기 시작해서 그런지 떨어진 꽃이 몇개 보이지 않아서 작품활동(?)은 하지 못할 것 같고, 또 가족모임을 생각하면 빨리 하산을 해야 하니 대충 흔적만 남기자는 생각으로 한두 컷만 하고 산을 내려왔다.

 

 바쁘게 설쳐거 그런지? 기온이 높아서 그런지 땀범벅이 된 몸을 샤워하고 나니 10시가 넘어 갔다.

차에 연료를 채우고 야음동으로 가서 누님과 자형을 동승시키고 태화강역으로 가서 부산 누님을 기다리니 아직 도착을 하지 않아서 전화를 했더니 약속된 시간을 놓치고 다음 차를 탔다는 대답이 왔다. 그런데, 그 사이 자형에게 문제가 생겼다. 배가 아프고 구토증세가 나타난다는 말씀이었다. 아마도 아침에 콩음료를 마시고 난 뒤 조금 이상했다는 자기진단이었다. 하는 수 없이 병원에 가자며 차를 운행하는 중 병원대신 일단 집에서 쉬어보고 결정하겠다고 하여 집에 모셔다 주고 역으로 갔더니 부산 누님은 도착해 계셨고 다들 자형을 걱정하고 있었다.

 

 오늘은 창녕 누님만 못오시고 다 참석을 하는 바람에 아랫동네 자형 차도 동원했야만 했다.

우리가 역에서 출발도 하기 전에 이미 자형 차는 예약한 장소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온다. 야음동 자형 때문에 시간에 차질이 왔다. 부랴부랴 엑셀을 밟으니 '그래봤자 5분 안팎이다'는 누님의 만류에 여유를 다시 찾고서 예약 장소에 도착하니 '오랜만이다'며 부둥켜 안고 난리 부루스다. ㅋㅋ

 

 그러고 보니 보통 한달이나 달포면 만나는데 이번에는 얼추 석달만에 만나는 것이라고 아내가 덧붙인다.

"그럼 그렇지! 보고파서 우찌 살았노?" 라며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인 듯, 걱정인 듯 다소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소란 스럽다. 다행히 점심치고는 이른 시각이라 다른 손님들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싸움이 났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ㅋㅋ

 

 이게 피붙이의 본능이고 의리가 아니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식당 사장님도 그동안 많이 기다렸다는 듯 평소에 먹던 생선회 보다 더 쫄깃하게 숙성을 시켰고 생선 가짓수도 몇 개 더 추가했다는 말씀을 하신다. 그냥 그대로 여서도 오랜만에 보는 즐거움으로 만끽이 되었을 터지만 사장님까지 같이 우리의 만남을 부럽다면서 축하를 보내 주시니 분위기는 상종가를 치고도 남았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근처에 있는 ''이란 카페로 갔다.

각자의 입맛에 맞는 차를 시켜 놓고 이런 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하면서 먼저 하늘나라로 간 누나와 자형얘기를 하면서 '이 자리에 같이 있었으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하고 이구동성으로 안타까움을 얘기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도 우리의 나이들이 경계선을 넘나드는 입장이라는 것을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마음에 그리고 있었을 거다. 그러길래 이런 만남이 더 고귀하고 아름다운게 아닐까?

 

 어떤 가정은 "형제불화 우환지근이라(兄弟不和 憂患之根) 고 형제가 화목하지 못해서 그것이 근심의 뿌리"라고 하는 집들도 많은데 우리는 그런 일이 발생할 조건조차도 없다는 것이 복 받은 집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집이 못살았기 때문에 뭉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 또한 복을 받은 것과 다름없는 조건이었던 것 같다.

 

 세시가 넘고 있어서 더 늦으면 큰누님이 귀가하시는데 불편이 있을까 봐서 아쉽지만 귀가를 서둘렀다.

태화강역에 내려 드리고 누님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야음동 누님을 내려 드리고 귀가를 한 뒤 자형에게 전화로 복통은 괜찮아졌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병원에 가지 않고도 괜찮아 졌다니 그것도 오늘의 보람 중 하나로 등록 되었다. 오늘은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 아니 앞으로도 살아있는한 이렇게 복받고 보람된 일들만 생길 것 같은 기분 좋은 날이었다.

 

  오늘, 남기고 싶은 말은 "삶의 가장 큰 선물은 우리가 가족으로 만났다는 것!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로, 언제나 밝은 웃음꽃 피우며 건강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매년 이렇게 떼죽 꽃으로 작품 아닌 에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