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변하지 말아줘 250417
4월17일 목요일
오늘은 세상이 무척 노랗게 보이는 아침을 맞이한 것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황사였던가?
그건 그렇고, 직장이라고 해봐야 기한이 정해진 기간제였지만 그런 대로 일과가 정해져 있으니 내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서 어쩌면 부담이 덜했는지도 몰랐다. 마치 자동차에 달린 네비게이션을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 처럼 내가 직접 신경쓰지 않아도 하루의 할 일들이 정해져 있었으니 고민할 부분이 그만큼 적었던 거였지!?
그러던 것이 실업자가 되고 보니 하루가 온고히 내 몫이 되었다.
맘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커져서 좋은 면도 있지만 오늘은 뭐하지 하고 고민을 할 때도 많다. 심지어 남들로 하여금 실업자니까 시간은 남아 도는 것이니 언제든지 약속을 잡아도 되는 것이라는 오해를 주기도 해서 스케쥴이 꼬일 때도 적지 않다. 누가 '백수(실업자)가 바빠서 죽는다'고 말을 했는지 참 적절한 비유 같기도 하다. 어쨋거나 하루가 다 지난 밤이 되니 하루 스케쥴 정도는 짜고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이 미친다.
오늘은 오전에는 유튜브를 들으면서 컴퓨터와 놀았고 오후에는 뒷산을 한바퀴 돌았다.
뒷산도 하도 많이 다녀서 눈을 감고도 상황을 다 알 것 같았지만 너무 오랜만에 가는 것이라서 호기심도 생기고 또, 어떤 사람들이 다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초입부터 느낀 것이 연초록 잎들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침 안부를 전하는 바탕그림으로 쓸 장면들을 몇장 찍기도 했다. 요 며칠 전 내린 비로 태화(연)저수지에는 물이 조금 불었고, 도랑으로 내려가는 물소리가 정겹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pop song을 들으며 갔지만 물소리가 제법 크고 정겨워서 조금만 부지런을 떨었다면 비발디의 봄이라도 들을 뻔 했지만 저수지를 벗어나는 바람에 그냥 그대로 듣던 음악을 고수했다.
가끔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쳤지만 생면부지의 관계여서 인사는 생략하고 좁은 길만 비켜주는 기본만 지키며 올라갔다.
어떤 사람은 맨발로 걷는 마니아도 보였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랜만에 가는 길이 마치 청소를 한 것 처럼 깨끗해 보였다. 그리고, 이제 막 새순을 내어 놓는 단풍나무도 보였고 간간이 납작 엎드린 자세로 연분홍의 꽃잎을 내어 놓은 철쭉들도 보였다. 역시 그동안 가물어서 그런지 예전 처럼 많은 꽃들은 없었고 군데군데 하나씩 보이는 정도라서 '와아!'하는 감탄사는 정상에 올라서는 순간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혼자서 오르는 산이라서 많은 생각들이 일어났다가는 곧 사라졌다.
그 중 여태껏 살아온 내 인생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 좀 길었던 것 같았는데, 특히 가난으로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과 아파서 고생했던 기억들을 더듬어 가면서 참 우여곡절이 많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삶의 고비고비에서 인생이 끝날 만한 순간들이 많았음에도 지금까지 살고 있었던 것은 그 순간 순간마다 이겨내야지 하는 오기와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다시 삶을 이어가면서 '이제 부터의 삶은 덤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얘기는 먼 훗날 또, 정리할 시간이 허락하면 다시 한번 더 회상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정상에서 몇 발자국 내려오다가 이 가뭄에도 올라오는 고사리를 보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살아 온 만큼이나 산에 사는 무수히 많은 풀, 나무, 덩쿨, 곤충...들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하고 있지나 않는지 생각도 해 봤다. 그런 생각을 하니 세월이 흐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되지만 거부만 할 수 있으면 거부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 이 상태에서 그대로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상한 생각도 해 본다. 아무래도 내가 요즘 좀 제정신이 아닌듯도 하고... ㅋㅋㅋ
절골을 빠져나올 때 즈음엔 밥시간이 다됐으니 얼른 내려오라는 아내의 카톡문자가 들어왔다. 하필이면 감정이 격(?)한 이 때!
나는 들을리 만무한 아내를 향해 혼이 나간 듯 혼자 중얼 거렸다.
그대
이젠 변하지 마오
내가 무슨 일이 생겨
오랫동안 보지 못하다가
다시 보는 그 때에도
그대를 알아 볼 수 있도록
더 이상 변하지 마오' 라고...
왜그런지 요즘은 이상하게도 자꾸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졌다.
아무래도 좋은 꿈을 꾸기 위해서겠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