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행복 버무린 날 241205

올곧이 2024. 12. 5. 17:43

12월5일 목요일

 

 아침 나절엔 기온이 2도로 찍힐 정도로 추웠지만 바람이 없어서 햇살은 온전히 따스하다.

오늘은 쉬는 날이지만 이미 김장을 하기로 계획이 되어 있어서 마음에 일어나는 잡생각들은 지워야 했다. 대신 아내와 함께  '농협 하나로마트'로 미리 주문한 절임 배추 4박스를 찾으러 갔다. 몇 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차를 타고 가면서 "오늘 배추가 도착하지 않았으면 어쩌나?" 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배추는 도착해 있었고 많은 박스들 가운데서 우리 것만 찾으면 되었다.

 

 마트 앞에는 산더미 같이 쌓인 배추들이 주차장 일부까지 점령할 정도로 김장철이 우리에겐 일거리지만 축제(이벤트)임에 틀림없다. 우리집은 몇 해 전부터 전남 해남에서 올라오는 것을 썼지만 그 외에도 여러 곳에서 절임배추가 올라오는 것을 보면 주부들도 어느 지역의 것을 선택할까를 놓고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왜냐하면 배추의 생장조건이 토양, 기후에 따라 성질에 차이가 있어서 그 전에는 언양 소호산을 썼다가 육질이 조금 물러서 해남산으로 바꾼지 2, 3년 정도 됐다고...

 

 한 박스 무게가 20키로 정도라고 하여 한 번에 두 박스씩, 두 번만 나르면 되겠다 싶었는데  막상 집으로 올리려고 들어보니 30키로가 넘는지 두 박스를 들기엔 너무 무거웠다. 이제는 나이를 생각해서 너무 무리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네번을 오르락 내리락 했는데 숨이 찼다. 물을 한잔 들이키고 조금 숨을 돌리려는데 쉴 틈도 없이 "방에 있는 큰 판을 펼쳐달라!" "그 위에 비닐을 깔아달라!" "양념이 튈지 모르니 주변에 신문지를 깔아달라!" ... 주문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럭저럭 준비를 해 줬으니 내 임무는 이제 끝이 났나 싶어서 내 일을 벌이려는데 '어라!' 또 주문이 들어 왔다. 

"뒷베란다에 있는 산데미를 가져다 달라!" "절임배추를 옮겨달라!" "빈 김치통을 가져다 달라!" "꽉 찬 김지통은 김치냉장고에 넣어달라!" ㅎㅎㅎ

앉을만 하면 불러대는 통에 내 일을 벌이기는 걸렀고, 아예 음악을 틀어놓고 옆에서 말 벗이나 하자고 생각을 바꾸고는 김장하는 것을 구경했다.

 

 우선 절임배추의 염수를 빼는 동시에

1. 고춧가루를 물에 풀고 - 간을 맞춰가며 소를 만들어 썪고 - 밥풀을 쑨 숭늉같은 것을 혼합하여 잘 섞어서 양념을 만든다.

2. 기호에 따른 특별한 소 (예 : 청각, 굴, 청갓 등)를 준비해 둔다.

3. 절인 배추닢을 겉장만 펼치고 나머지는 전부 젖혔다가 겉에서 부터 한장씩 펼치며 사이사이에 양념소를 넣어 완성한다.

4. 완성된 것은 김치통에 담고, 곰팡이가 쓸지 않도록 맨 위에는 비닐로 덮어서 김치통 뚜껑을 닫고 김치냉장고에 넣는다.

 

대충 내가 본 그림을 글로 옮겨 봤는데 좀 더 디테일 한 것은 양념의 간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김장을 담그는 일은 행복을 버무리는 일과 같다.

김장은 적어도 내년 한 해를 염두에 두고 담그지만 두 해, 세 해, 내지는 묵은지가 될 때 까지를 염두에 두기도 한다. 그 만큼 공을 들여야 하고 또, 내가 맛있는 소재를 택하여 두고두고 꺼내 먹을 수 있는 먹을 거리로 만든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것보다 더 행복한 것도 흔치는 않을 것 같다.

양념을 만들 때 부터 설렘이 생기고 기대가 생긴다. "잘 만들어 졌으면, 잘 익어 줬으면..."하는 바램이 양념을 버무린 뒤에도 한 잎 한 잎 사이마다 양념과 소를 넣으면서 계속 염원으로 치대야 하니까! ㅎㅎ

 

 김장은 해가 떨어질 때 쯤 끝이 났다.

아내는 "양념이 김장포기와 딱 맞춰서 끝을 냈다"며 환호성을 지르며 아픈 허리를 펴고 있다. 내가 한 것이라곤 아내의 한 일에 비하면 십분의 일도 안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마디 했다. "이제 수육과 막걸리?" ㅋㅋ

점심 때도 간짜장과 짬뽕과 뽂은 밥으로 성찬을 받았지만 점심은 점심이고, 김장을 끝내면 이제까지는 의례처럼 돼지 수육에 막걸리로 피날레를 치뤘으니 ...ㅋㅋ

역시 아내는 조금만 기다리라더니 준비된 한 상을 내어 놓는다. 때마침 딸래미도 퇴근을 해서 귀가를 했다.

은은한 노을이 지나가는 그림이 옆 동의 유리창에 비치고, "바로 이 맛이라니까!"라는 소리가 잔에 부딪힌다.